영화의 장르를 다루는 책은 많지만, 개별 작품을 세세하게 언급하는 책은 드물다. 구재진, 김경욱, 김병재, 박우성, 서곡숙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영화이론가 10명이 소개하는 공동저서 <영화의 장르 장르의 영화>는 한마디로 ‘상호작용으로서의 장르영화’에 대해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이론 서적이다. 관객이자 비평가로서 저자들은 전체 12개의 장르를 선정해, 각 장르를 소비하는 관객을 대상으로 ‘장르의 관점에서 영화읽기’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이 선정한 대중적 영화의 장르들은 다음과 같다. 판타지영화, SF영화, 코미디영화, 갱스터영화, 스릴러영화, 공포영화, 로드무비, 뮤지컬영화, 예술(가)영화, 멜로드라마, 역사영화, 전쟁영화가 바로 그 분야들이다. 개별 장르의 내러티브 관습과 스타일을 분석하기 위해 10명의 필자들은 자신이 담당한 장르의 고전영화부터 최신 흥행작에 이르기까지 영화사 전체의 목록을 상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50여편에 달하는 흥미로운 리스트가 완성된다. 그중에는 빅터 플레밍의 <오즈의 마법사>(1939)나 <신세계>(2012),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과 같은, 고전영화에서 출발해 최근의 한국영화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책이 말하는 장르에 대한 공통적인 의견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 ‘상호텍스트’로서 장르에 접근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일반적인 장르 연구가 텍스트의 내적 구조 형식과 의미, 통일된 컨벤션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이 저작은 다양한 영화 예시를 분석하며 (텍스트와 상호텍스트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상호텍스트성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때문에 시네필뿐만 아니라 영화 전공자들에게도 상당한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대표적으로 ‘예술(가)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9장의 내용을 살필 수 있다. 문학과 예술, 예술가 일반을 다루는 드라마를 분석한 이 부분의 내용은 전체의 내용과 다소 이질적으로 구분되지만, 동시에 책의 존재 이유와 연관된다. 모름지기 장르란 유형별 체계를 전제한 분류의 방식이다. 하지만 ‘관객 수용’에 대한 내용을 포함할 경우, 장르 연구는 포스트모던한 융합이나 해체에 이르는 발전적 내용을 수용하는 자세로 돌아서게 된다. 때문에 저자들은 SF영화를 ‘재조합형 장르’라고 규정 짓고, 뮤지컬영화를 ‘판타지’와 근접해 비교하며, 갱스터영화에서 드러나는 ‘비확정’의 가능성을 중요시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영화의 ‘진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한다.
“삶은 책을 넘어선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목소리는 결말에 이르러 “영화 자체는 장르를 넘어선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장르를 지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필자들의 음성으로 바뀐다. 빠르게 급변하는 현대영화 부류에서 장르의 유동성은 무엇보다 급박하게 자신의 형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대중영화에 다가가기 위해 영화 팬들은 모두들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열린 결말에 대한 포괄적인 의견, 많은 이와 소통하려는 자세, 책의 내용을 포괄하는 영화에 대한 상념을 바라보며 생각하게 된다. 조르조 아감벤의 말처럼 ‘인간이 영화관에 가는 동물’이라면, 우리는 ‘영화를 생각하는 동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