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한국영화의 정치적 경계와 비평 담론을 연구 중인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는 현재 워크숍, 포럼, 국제 학술 심포지엄 등을 통해 지속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이번에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영화사 총서 3권 역시 그 꾸준한 연구의 결과물 중 하나다. 한국, 나아가 아시아영화의 경계와 시네-미디어의 변화를 정리한 이번 영화사 총서는 트랜스/내셔널 프레임 속에서 한국영화사를 탐색한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한국영화, 세계와 마주치다: 한국과 세계의 극단적 협상, 위협적 미래>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영화인들의 네트워크를 발견하고 기술한 <동아시아 지식인의 대화: 영화 이론/비평의 감정 어린 시간>, 1920, 30년 경성과 도쿄의 관객을 비교한 정충실의 미시 연구까지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영화, 영화인, 영화공간, 관객성 등 다양한 요소들의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영화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국제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심도 깊은 연구서들이다.
대체로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영역에 속한 글들이지만 그렇다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다양한 필자들의 견해를 묶어 담았기에 나름의 리듬감이 있고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체적이다. 국제학술대회와 포럼 등을 통해 생산된 논의들을 정리한 <한국영화, 세계와 마주치다…>는 <설국열차>(2013), <박쥐>(2009), <곡성>(2016) 등 동시대 한국영화의 정치적 경계를 탐색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등 트랜스 아시아 비교연구로 논의를 확장시킨다. 김기영 영화를 뒤엉킴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한 글이나 오시마 나기사의 연구가 나란히 한권의 책에 묶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시적이고 공시적인) 상상을 자극한다. 2권 <동아시아 지식인의 대화…>에서는 일제강점기의 10월혁명(1917)과 3·1만세운동(1919)을 축으로 하여 조선영화사의 범주를 가늠해보는 작업이 이어진다. 책의 부제인 ‘영화 이론/비평의 감정 어린 시간’에서 알 수 있듯 동아시아 영화 비평사, 식민지 시기 조선의 영화 비평이 어떤 담론을 형성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일본의 이와사키 아키라, 중국의 루쉰, 조선의 서광제로 이어지는 대화와 교류는 당대의 지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조망한다.
마지막으로 시리즈의 3권, 1920~30년 도쿄와 경성의 영화관을 비교한 <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관객성 연구로 본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사>의 경우 극장이라는 체험의 공간, 관람 문화를 대상으로 삼은 만큼 한결 친숙하다. 상업 목적의 영화 상영과 동원 목적의 영화 상영이라는 두축으로 진행되는 당대의 영화 관람 체험은 이른바 ‘노는 영화’와 ‘주시하는 방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도쿄의 노동자, 서민, 중산층과 경성의 조선인, 이주 일본인의 관람 형태는 각자 도시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고유성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영화라는 공통의 체험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이채롭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봤고, 지식을 나누고,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의 우리가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과거를 제대로 응시하려는 시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 연구서들은 과거라는 뭉툭한 덩어리를 해체하여 오늘의 시간으로 되돌린다. 쉽지 않지만 필요한 작업이다.
<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관객성 연구로 본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사> 정충실 지음 / 현실문화연구 펴냄
<한국영화, 세계와 마주치다: 한국과 세계의 극단적 협상, 위협적 미래> 김소영 엮음 / 현실문화연구 펴냄
<동아시아 지식인의 대화: 영화 이론/비평의 감정 어린 시간> 김소영 엮음 / 현실문화연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