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⑪] <산주>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 "모순된 반응, 뭄바이의 현실까지 담아내고자 했다"
2018-10-17
글 : 송경원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세 얼간이>(2009)의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신작 <산주>를 들고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데뷔작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2003)부터 지금까지 5편의 연출작 모두 인도영화 흥행사를 새로 쓴 화제작들이다. 올해 부산에서는 부산클래식 섹션에서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도 함께 선보였는데 신작 <산주>가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인도 배우 산자이 더트(이하 산자이)의 일생을 다룬 전기영화라서 의미가 더 각별했다. 인도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아래 지혜로운 조언을 건네는 그의 눈에 오랜 동료이자 친구의 일생은 어떻게 비쳤을까.

-<세 얼간이> 덕분에 한국에서도 잘 알려졌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도영화 감독 중 한명일 것이다.

=한국 관객이 <세 얼간이>를 좋아해주셨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한국은 처음 방문했는데 음식도 맛있고 거리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늘 미소 짓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열정과 행복으로 가득 차 보인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가족을 데리고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

-신작 <산주>는 배우 산자이의 일생을 다룬 전기영화다. 아직 살아 있는 인물을 다룬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심지어 산자이는 방탕한 생활, 범죄 전력 등 논란을 빚고 있는 인물이다.

=산자이는 나의 데뷔작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에 출연하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그게 이 영화를 찍은 이유는 아니다. 산자이는 1992년 뭄바이테러사건 이후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후 2016년까지 보석 석방과 재수감을 반복했다.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의 인생이야말로 진한 굴곡의 드라마라고 느꼈다. 감독은 결국 흥미로운 이야기에 끌리기 마련이고 그게 이 영화를 찍은 이유의 전부다.

-인도 개봉 당시 호평이 많았지만 문제적 인물을 미화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그런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내가 믿고 있는 사실들만 영화로 찍었다. 산자이가 체포된 후 증명된 범죄 사실은 그가 총을 소지했다는 것 하나뿐이다. 그의 집에서 폭발물을 발견했다는 거나 범죄단체에 연루됐다는 사실 모두 언론이 만들어낸 가짜뉴스였다. 실제 경찰은 그런 사건을 수사한 적도 없다. 그런 진실을 알리는 한편으론 의심과 증오를 부추기는 언론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기존 영화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인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데 반해 <산주>는 최대한 거리를 두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건 픽션이 아니니까. 있는 그대로 사건을 다뤄야 한다는 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강점이자 어려운 점인 것 같다. 솔직히 이제 다시는 전기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보고 느낀 바를 가능한 한 건조하게 다루고자 했다. 만약 이 영화가 산자이에 대한 미화라면 그의 문란한 성생활과 난잡한 여성 편력, 마약하는 장면 등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할 이유가 없지 않나.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과 바람을 피운 것도 가감 없이 집어넣었다. 흥미로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자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모순된 반응, 뭄바이의 현실까지 담아내는 게 이 영화의 몫이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산자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편집할 때 와서 보라고 권했는데 개봉하고 보겠다고 했다. 공식 개봉 3일 전에 극장에서 같이 봤는데 나는 산자이가 그렇게 우는 걸 처음 봤다. 그는 2시간 반의 필름 안에 자신의 인생이 전부 담겨 있다며 나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산자이는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평범한 우리 중 하나다. 극영화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영웅적인 인물을 주로 다뤄왔기 때문에 이런 결함 있는 인물을 다룰 수 있었던 이번 작업이 특히 흥미로웠다.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에서는 의료 체계, <세 얼간이>에서는 교육,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2014)에서는 종교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사회 비판과 풍자가 영화의 목적은 아니다. 내가 이끌리는 건 언제나 캐릭터다. 거기서 출발한 탄탄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생소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오랜 공부가 필요하다. 대개 한 작품을 준비하는데 최소 2, 3년은 걸린다. 작품을 많이 만들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하던 걸 멈추고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끌려가곤 하기 때문이다. <산주> 역시 다른 각본을 쓰다가 우연히 산자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마음이 끌려 시작했다. 소재가 나에게 찾아오고 이야기가 떠오르면 그걸 할 수밖에 없다. 데뷔작인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도 거의 완성된 3가지 시나리오 중에 고른 거였다.

-산자이 더트 역을 맡은 배우 란비르 카푸르의 연기는 기념비적이다. 실존 인물과 그다지 닮지 않은 외모라 표현이 쉽지 않았을 텐데 분장이나 특수효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인물의 분위기를 재현해낸다.

=외모를 흉내내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실존 인물이 여전히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젊은 시절부터 50대까지를 모두 소화했는데 이미 죽은 인물을 기록으로 보고 되살려낸다는 각오로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란비르 카푸르는 열성이 대단한 배우다. 50대를 먼저 찍고 한달씩 살을 빼나가면서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 <당갈>(2016)에서 아미르 칸이 했던 방식인데 배우들의 헌신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다. 내 영화가 사랑받는다면 그런 배우들 덕분이다. 항상 감사하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이번엔 좀더 빨리 만날 수 있나.

=나도 부디 그러길 바란다. (웃음)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세 얼간이> 속편도 그중 하나다. 올해 부산에서 데뷔작과 신작이 함께 상영되는 고마운 경험을 통해 적지 않은 영감을 얻었다. 흥행을 위해 급하게 결과물을 내고 싶진 않다. 충분히 숙성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지만 나를 위해서라도 부디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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