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작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가 될 것 같다.” 전작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창재 감독은 깜짝 선언을 했다. <길 위에서>(2012), <목숨>(2014), <노무현입니다>(2017) 등 다큐멘터리를 줄곧 작업해오던 그가 새로운 길을 가겠다니. 막연한 바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말을 입 밖에 낸 지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정말 자신의 첫 장편 상업영화인 <모범시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언이 현실이 된 셈이다. <모범시민>은 사학 비리에 맞서기 위해 교육의원 선거에 나서게 되는 평범한 교사를 그린 이야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제작사로부터 시나리오 초고를 받았을 때 어땠나.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던 이야기인데 코믹하게 풀어놓았더라. 사흘 동안 네번 정도 읽었는데 이야기가 잘 붙지 않았다. 제작자와 협의해 이야기를 새로 썼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만큼 사건 당사자를 만나 5, 6개월 동안 따라다녔다. 주체를 못할 만큼 인터뷰를 많이 했다. 안에서 어느 정도 차오르니 사건도 인물도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서사와 인물 배치 모두 바꾸었다. 초고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고, 70, 80% 만족한다. 현재 연출용 시나리오를 다시 쓰며 한번 더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실화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모범시민’이라는 지금 제목 그대로 갈지 모르지만 실제 인물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높은 윤리의식을 가진 교사다. 월급쟁이로 평범한 삶을 살다가 학생을 통해 학교와 교육 비리에 부딪힌다. 자신이 가진 최소한의 윤리의식이 작동했고 그걸 넘어서려고 하다보니 더 큰 피해가 닥치고, 그 장애물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보다 더 큰 자아가 작동하게 된다. 전형적인 신화 구조에 맞는 인물이다. 소시민이 승리하는 층위들을 현실에서 많이 볼 수 없지 않나. 다큐멘터리로 다루면 설명적일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극으로 재현하면 대단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보았다. 처음 초고를 받았을 때 이 영화가 과연 내 영화인가, 내가 잘 풀어갈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다. 내 스타일로 바꾸는 과정에서 코믹한 부분은 살려두되 내가 원하는 엣지를 좀더 드러내고 싶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서사라는 점에서 전작 <노무현입니다>와 닮은 구석이 있다.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감독임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 속 주인공인 영규는 노무현이라는 거목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기 반영적 인물로 읽을 수도 있겠다. 극에서 영규가 목표로 했던 시민의식이 노무현의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다만 영규와 노무현 두 사람간에는 간극이 분명 존재한다.
-사학법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최근의 ‘박용진 3법’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사학법과 박용진 3법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는 문제다. 일부 사립 재단은 재단과 교사가 학교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사고가 오랫동안 단단하게 작동됐던 탓에 그 사고를 쉽게 바꿀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사립 재단과 얽혀 있는 국회의원들이 많아 법안 개정도 쉽지 않다. 영화가 꼭 계몽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재미있었다, 이제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라는 질문을 품을 수 있다면 좋겠다. <도가니>(2011)가 그랬던 것처럼 사실을 기반으로 작은 변화의 단초가 된 사례를 우리 마음속에 심어둘 사례가 될 수 있지 않겠나.
-곧 배우들에게 캐스팅고를 돌릴 거라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많이 남았다는 시대정신과 이 영화가 던지는 사학법과 관련된 담론이 매칭될 때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운이 따라주지 않을까. 뜻있는 배우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작 <노무현입니다>는 주연, 감독 모두 노 전 대통령이 했고, 나는 조감독 역할에 머물렀던 것 같다. 노 전 대통령과 잘 호흡한 덕에 그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 영화도 6개월 동안 자료 조사를 했기 때문에 영화 속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됐고, 그러면서 서사를 가공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이 인물을 어떻게 구현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단계로 접어드니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다.
<모범시민>
감독 이창재 / 출연 미정 / 제작 영화사 람, 다이스필름 / 배급 미정 / 개봉 2019년
● 시놉시스_ 사립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영규는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비리를 목격한다. 공익 제보를 해서 학교의 비리를 내부 고발하지만 오히려 학교로부터 파면당한다. 자신의 파면에 항의하기 위해 1인 시위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교육의원 선거에 나가게 된다. 2010년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 불가능을 뒤집은 기호 7번의 선거_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경선이 그랬듯이 이 영화 또한 선거를 통해 올바름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 영규가 뛰어드는 전국 교육의원 선거는 노무현의 국민경선만큼 당선 가능성이 없었다. 교육감이나 교수 출신들이 주로 뛰어드는 교육의원 선거에서 평교사가 후보 번호 7번을 달고 출마해 당선된 사례는 전국에서 전무후무했다. 이창재 감독은 “실존 인물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잡으면 선거에서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것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