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19년 한국영화⑳] <증인> 이한 감독 -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2019-01-16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이한 감독에 따르면 <증인>은 광화문에서 시작해 광화문에서 마무리되는 영화다. “시민들의 의견이 가장 활발하게 교류되는 장소”인 광화문이 그에게는 소통을 바라는 한국인의 갈증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소로 다가왔나 보다. 그의 신작 <증인>은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남녀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며 불가능해 보이던 소통을 이뤄내고자 하는 이야기다. 타인의 삶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깊이 개입하려 하지도 않는 최근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교집합이 없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의 기적을 조명하는 <증인>은 <완득이>(2011), <우아한 거짓말>(2013), <오빠생각>(2015) 등의 작품에서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사려 깊은 필치로 그려온 이한 감독다운 선택이다.

-<증인>은 제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었는데.

=맞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다양한 작품을 보던 중 <증인>을 발견했다. 기본적으로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서로 소통하는 지점에 끌렸다. 도무지 소통하기 어려울 것 같은 두 사람이 결국 마음을 나누게 되는 지점이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 지점을 잘 살려서 관객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연유로 시나리오의 각색 과정부터 참여하게 됐다.

-각색 과정에서는 어떤 고민을 했나.

=문지원 작가의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상업영화로 제작해야 하니 서사의 의미를 넓히고 다양한 사람이 공감할 법한 에피소드를 좀더 넣었다. 젊은 관객부터 연세가 높은 분들까지 이 영화를 보며 감정을 느낄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원칙이었다.

-살인 용의자의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아 소녀 지우(김향기)를 만나며 <증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순호와 지우는 어떤 인물인가.

=순호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아주 선한 사람도, 아주 악한 사람도 아니며, 본인이 처한 상황에 이끌려가는 변호사다. 한때는 민변 활동도 할 만큼 사회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였다가 나이 들며 사회에 순응하게 되는 평범한 인물이다. 우리 사회 보통의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순호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지우는 자폐아다. 자폐라는 건 자기 세계가 아주 공고하다는 얘기다.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순호로 인해 벽을 약간 부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묘사와 배우 정우성은 잘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다. 정우성이야말로 평범함과 거리가 먼 톱스타의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정)우성씨는 외모나 비치는 모습에서는 굉장히 빛나는 사람이지만, 평소 모습을 보면 보통 사람의 심성을 잃지 않은, 흔치 않은 배우인 것 같다. <증인>의 캐스팅을 준비하며 우성씨의 인터뷰를 많이 읽었다. 그 글들을 보면서 자기를 꾸미려 하지 않고 가식없이 즉흥적으로 답변하는 우성씨의 모습이 <증인>의 순호와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향기와는 <우아한 거짓말> <오빠생각>에 이어 세 번째다.

=처음에는 지우 역에 신인배우를 고려했었다. 그런데 오디션을 몇명 보고 나니 문득 ‘이 역할은 향기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현장에서 향기의 연기를 보는데 캐스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무척 만족해하고.

-자폐아 소녀가 주인공이니 자폐에 대해 많이 조사하고 준비했을 법하다.

=<증인> 촬영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 자폐증 치료에 가장 권위 있다는 의사를 찾아갔다. 자폐를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답변하더라. 모든 사람이 다른 것처럼, 자폐의 증상도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단 한 가지 공통점은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향기와 함께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쳤다. 향기와 함께한 세 작품 중 테이크를 가장 많이 간 영화가 <증인>일 거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어떤 방향이 가장 적절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길었다. 향기는 ‘드림 위드 앙상블’이라는, 자폐인으로 구성된 클라리넷 앙상블의 단원들을 직접 만나고 다양한 자폐인의 특성을 지우라는 인물의 것으로 체화하며 준비했다. 평소에는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데, 촬영이 끝나는 날 향기가 눈물을 흘리더라. 많은 작품을 함께했지만 이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는지, 준비하면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증인>은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점점 풀어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다. 사건의 실체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어떤 고민을 했나.

=사실은 각색할 때, 내가 아무리 머리를 써도 관객은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영화가 추리물은 아니니까.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미스터리가 미리 풀리더라도 상관없는 시나리오를 쓰자는 게 원칙이었다. 대신 두 주인공 순호와 지우가 맞닥뜨리는 장면을 많이 넣어서 두 사람이 점점 소통하게 되는 과정을 잘 그려보고 싶었다. 우성씨가 향기를 바라볼 때의 눈빛이 너무 좋다. 그 눈빛만 보아도 순호가 어떤 사람인지 아마 단번에 알 수 있을 거다. 최근 영화 편집본을 보며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나조차도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며 감정이 막 움직이는 걸 느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두 배우가 표현하는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이라고 생각한다.

<증인>

감독 이한 / 출연 정우성, 김향기, 이규형, 박근형, 염혜란 / 제작 무비락, 도서관옆스튜디오 /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개봉 2019년 2월

● 시놉시스_ 변호사 순호(정우성)는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는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가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점 타성에 젖어가던 변호사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던 소녀는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보이기 시작한다.

● 법정 장면에 주목하라_ 이한 감독은 <증인>을 ’휴먼 법정 드라마’라는 말로 정의한다.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에 법정 장면이 40분 가까이 되는 이 작품은, 법정에서 오고 가는 말의 향연과 그 가운데에서 엿볼 수 있는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라고 한다. “법정 신만큼은 여느 영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이한 감독은 스포일러라서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면 강렬한 인상을 남길, 김향기와 정우성의 법정 스피치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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