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묘하다.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는 정재광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웃는 모습과 무표정한 모습과 팔을 턱에 괸 모습과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제각각 다르다. 오래 볼수록 또렷한 이미지로 수렴되는 배우가 있는 반면, 정재광은 보고 있어도 아직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는 갈증을 유발하는 배우다. “어떤 앵글이든 자신쪽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전계수 감독의 코멘트는 신인배우 정재광에 대한 적확한 표현이다. <러브픽션> <삼거리 극장> 등을 연출한 전계수 감독의 신작 <버티고>는 정재광의 첫 상업영화다. 그는 이 영화에서 천우희가 연기하는 30대 초반의 그래픽 디자이너, 서영의 상대역으로 출연한다. 서영이 근무하는 42층 빌딩의 외벽을 청소하는 로프공 관우가 바로 그다. 스파이더맨처럼 도시의 빌딩 숲을 외줄에 의지한 채 유영하는 관우는 이명증과 어지럼증, 불안 증세를 겪는 서영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인물이다. 널빤지에 몸을 의지한 채 오랜 시간 허공에 머무르는 남자를 연기하기 위해 소방대원들이 받는 로프 인명구조 자격증을 따는 등 물리적인 노력도 했지만, <버티고>의 관우를 연기하며 가장 오랫동안 했던 고민은 남녀간의 사랑을 넘어서는 ‘힐러’로서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고 정재광은 말한다. “힐링을 테마로 한 영화는 다 찾아봤다. <패치 아담스> <러스트 앤 본>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등의 영화가 도움이 됐다.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힐링이란 ‘삶의 의지를 담은 포용’이라는 거다.”
정재광은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50여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독립영화계에서 먼저 인지도를 쌓은 배우다.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일베가 된 고등학생을 연기한 2016년작 <수난이대>는 그에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을 안겨주었으며 지금의 소속사(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를 만나게 해준, “배우로서의 출발점”과 같은 영화다. 2017년 OCN 드라마 <구해줘>에서 사이비 집단에 맞서는 주인공 4인방의 조력자를 연기하고, 2019년에는 첫 상업영화 주연작 <버티고>를 선보이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나가는 중인 정재광은 “배우 이전에 건강한 몸과 마음, 넓고 깊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속깊은 청년이다. 배우로서 고유한 패턴이나 스타일을 확립하기보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역할을 채워 넣는 과정이 더 즐겁고 자신 있다는 정재광은, 미래를 가늠할 수 없기에 그 미래가 더 궁금해지는 배우다.
“어떤 앵글이든 자신쪽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배우다.” _전계수 감독
연민과 동경, 슬픔과 분노, 외로움과 호기심 등 <버티고>의 관우에게 요구됐던 다양한 감정을 탁월한 감수성으로 표현하는 정재광의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며. 전계수 감독은 정재광이 “앞으로 많은 한국영화의 맨 앞에 서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 내 인생의 영화_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1997). 고등학생 때 이 영화를 보고 ‘한번뿐인 인생인데 스크린 속에서는 여러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연극영화과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_ “박찬욱 감독님. <올드보이>(2003)는 한국영화 중에서 <대부>와 맞먹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롤모델_ “대니얼 데이 루이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영화 속 인물이 되려는 그처럼, 나 역시 주어진 역할 속에 깊이 빠져들고 싶다.”
● 연기 외 취미나 관심사_ “그림 그리기.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모든 잡념과 의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 좋다. 내면을 표출할 수도 있고.”
영화 2018 <버티고> 2017 <복덕방>(단편) 2016 <수난이대>(단편) 2016 <여름밤>(단편) 드라마 2017 <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