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 코미디영화 총정리①] <극한직업> 흥행 돌풍, 그 이유와 비결 분석
2019-03-06
글 : 김성훈
지금까지 이런 코미디영화는 없었다

“마약반 형사들이 위장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차리는 설정이 재미있으면서도 애잔해 공감이 많이 갔다.” 지난 2월 24일 토요일 오후 CGV신촌아트레온,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사는 한미영(41)씨는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극한직업>을 두 번째 관람한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 부암동에 사는 대학생 이경진(25)씨는 어머니와 함께 <극한직업>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이씨는 “마약 범죄를 소재로 한 이야기지만 불편한 장면 하나 없어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극장에 나왔다”며 “한국 코미디영화는 이야기 후반부에 갈수록 눈물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고, 덕분에 실컷 웃었다”고 말했다. 이현경 CGV영등포 CM(Culture Mediator)은 “개봉 전 500여석 규모의 영등포 스타리움관에서 배우들을 모시고 라이브톡을 진행한 적 있다. 그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이 큰소리로 웃으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을 보고 흥행을 직감했다”며 “설 연휴 때 아이과 어르신까지 대가족이 함께 이 영화를 보러 오는 풍경이 오랜만에 펼쳐졌고, 그 덕분에 BBQ 직화구이 치킨을 포함한 매점 판매량이 덩달아 늘었다”고 극장 분위기를 전했다.

<극한직업>의 흥행 바람이 꺼질 줄 모른다. 지난 1월 23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한 지 한달이 넘었는데도 박스오피스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지난 주말인 2월 23, 24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는 2월 20일 개봉한 <사바하>다.-편집자). 주말 동안 객석점유율 38.5%(CJ CGV 집계, 2월 23일)와 35.6%(2월 24일)를 각각 기록하며, 같은 날 평균 객석점유율인 37.4%와 34.6%를 웃돌 만큼 뒷심을 발휘했다. 2월 26일 현재 <극한직업>은 1548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모으며 역대 최다 관객수 2위에 올랐다. 역대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오른 영화 중 코미디 장르는 <7번방의 선물>과 함께 단 두편에 불과하다. <극한직업>의 흥행은 <7번방의 선물>(2013, 1281만명), <검사외전>(2016, 9710만명), <수상한 그녀>(2014, 865만명), <조선명탐정> 시리즈(<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479만명),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2015, 387만명),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2018, 244만명))에 이어 ‘설에는 역시 코미디’라는 공식을 다시금 입증한 셈이다.

<극한직업>이 코미디영화로 1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웃겼다는 얘기다. 이 많은 관객이 <극한직업>에 응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무겁고 어두운 역사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로 피로도가 높은 최근 극장가에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정통 코미디영화가 오랜만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경찰 마약반이 마약 범죄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운영한다는 아이러니한 설정이 재미있고, 이 설정에서 나온 에피소드들은 반전을 거듭하며 웃음을 자아내고 <스물>(2015), <바람 바람 바람>(2018) 등 코미디영화를 연출해온 이병헌 감독 특유의 차진 대사들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될 만큼 관객 사이에 소문이 났다.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복잡한 현실을 다 잊고 그저 웃고 싶다는 대중의 바람이 이 영화에서 폭발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극한직업>은 웃기는 건 물론 감동을 주고 울리기까지 하려 한 한국의 기존 코미디영화와는 다소 다르다. <굿바이 싱글>(2016), <임금님의 사건수첩>(2016)을 제작한 최아람 영화사 람 대표는 “신파로 흐르거나 감동을 함께 주기보다는 오로지 관객을 웃기겠다는 목표 하나로 밀어붙이는 영화”라며 “경찰서장(김의성)에게 깨지는 상황에서 배달 전화를 받고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멘트를 하는 고 반장(류승룡)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영화 속 유머의 의외성이 큰 게 관객을 웃기는 비결인 것 같다”고 전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형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극한직업> 또한 전통적인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을 따른다. 하지만 <베테랑>(2015)의 서도철(황정민) 같은 사명감과 정의감이 투철한 형사와 달리 허당 기질이 다분한 이 영화 속 형사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특히 <극한직업> 속 형사들은 관객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거나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쿨하고 시크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많은 관객이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경찰이 위장 수사를 위해 영업하는 치킨집이 맛집으로 소문난다는 설정이 사람들의 꿈과 판타지를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심재명 대표는 “<극한직업>의 후반부 액션 시퀀스는 단순히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허당’ 같은 형사들의 전사(全史)와 그들의 숨겨진 능력을 드러내 많은 관객이 이 액션 장면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현재 한국의 소상공인이 얼마나 절박한지 단적으로 상징하는 지점”이라며 “그 점에서 <극한직업>은 코미디라는 장르적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현실적 공감대를 이끌어낸 작품”이라고 분석했다. 원동연 대표 또한 심 대표와 같은 이유로 “형사들이 위장으로 차린 수원왕갈비통닭집이 맛집으로 소문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시퀀스를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영화를 제작한 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는 “영화의 마약반 형사들이 열심히 살지 않나. 범인을 잡기 위해 연 치킨집이 맛집으로 인정받는 장면을 통해 사람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게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마약 범죄 수사와 치킨집을 엮은 신선한 소재와 누구나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요소 덕분에 <극한직업>은 어린이 관객과 중·장년 관객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마약 범죄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데도 개봉 2주차이던 설 연휴 기간 동안 부모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청소년 관객이 많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김홍민 CJ CGV 편성전략팀장은 “<극한직업>의 흥행 페이스를 살펴보면 설 연휴 전에 입소문이 났고, 연휴를 관통하면서 관객이 폭발적으로 몰렸다”며 “흥미로운 통계는 설 연휴 기간에 <극한직업>을 본 청소년 관객은 전체의 12%(CJ CGV 집계)를 차지했고, 3매 이상 티켓을 발권한 관객 비중이 전체의 41.4%에 달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참고로 <검사외전>을 본 청소년 관객은 전체의 8%를 기록했다.-편집자). 3매 이상 티켓을 발권한 관객은 청소년을 동반한 가족 관객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가족 관객이 <극한직업>의 흥행을 견인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허수영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이사는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려면 전 연령층의 관객이 웬만큼 다 봐야 하는데 <극한직업>은 폭넓은 관객층이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영화”라며 “특히 지난 연말 기대작이 모두 흥행에 실패하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지 못한 관객이 상대적으로 <극한직업>에 더 큰 호응과 지지를 보낸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극한직업>이 일으킨 흥행 돌풍은 지난해 추석과 연말 시즌에 한국영화가 참패하며 다소 침체된 영화 투자 시장에 단비를 내렸다. 평균 제작비가 200억원이 넘고 스타 캐스팅을 전면에 내세우고도 흥행에 실패한 지난해 개봉한 많은 한국영화와 달리 <극한직업>은 순제작비 약 65억원으로 중간 규모의 예산이 투입됐고, 티켓 파워가 증명된 스타를 내세우지 않으며, 형사 캐릭터 5명의 조화만으로 관객의 니즈를 충족했다. 영화 투자자들은 그 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송효정 쏠레어파트너스 수석 심사역은 <극한직업>의 흥행이 “예스 콘텐츠 파워를 실현했다”며 “영화 같은 고위험 산업에서 투자가 활성화되려면 ‘초대박’ 흥행 사례가 필요한데 최근 한국영화 위기설이 나오는 현재 상황에서 <극한직업>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코미디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이 바람이 당장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럭키>(2015), <수상한 그녀>, <써니>(2011) 등 지난 10년간 코미디영화가 흥행한 사례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코미디는 의외로 흥행하기 쉽지 않은 장르다. 허수영 이사는 “<극한직업>은 투자 검토 단계에서 소재가 신선하고 시나리오의 완성도도 높다고 생각했지만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미디는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장르인데 <극한직업>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을 만큼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작품”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 <극한직업>의 흥행 성공이 향후 투자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고 본다. CJ, 롯데, 쇼박스, NEW 같은 메인 투자사들이 코미디영화를 열심히 찾는다고 해도 <극한직업>만큼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시나리오와 그걸 연출할 수 있는 감독을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대박’ 영화가 나오면서 이런저런 말이 쏟아지는 가운데, 옥에 티라면 <극한직업> 또한 스크린 독과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극한직업>은 개봉 첫날인 1월 23일 1553개 스크린에서 시작해 개봉 첫주 주말인 1월 26일 토요일에는 스크린 수가 1910개까지 늘어났다. 흥행에 박차를 가하던 설 연휴인 2월 4일에는 무려 2003개까지 늘었으며, 그 이후에도 1500~1700개의 스크린을 독차지했다. 심재명 대표는 “스크린 독과점도 <극한직업>의 빠른 흥행에 일조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개봉작 수가 늘었고, 입소문이 빨라진 현재 배급 환경에서 스크린 독과점이라기보다는 잘되는 영화에 스크린이 쏠린 현상에 더 가깝다”고 진단했다. <극한직업>이 어마어마한 수의 스크린을 확보한 까닭에 좀더 많은 영화가 개봉할 기회를 갖지 못한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극한직업>의 스크린 독과점을 지적하는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쨌거나 <극한직업>은 역대 박스오피스 1위인 <명량>(2014)의 1761만명까지 260만명만을 남겨두고 있다. <극한직업>이라는 한국 코미디 광풍이 어디까지 불지, 기존의 산업 환경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좀더 지켜볼 일이다. 지금까지 이런 코미디영화가 없었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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