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천만 영화의 축포를 터뜨린 건 코미디영화 제작에서 조금씩 장르의 외연을 넓혀가던 JK필름이었다. <괴물> 이후 3년 만에 <해운대>(2009)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2009년, 전년도에 개봉한 강형철 감독의 <과속스캔들>(2008)이 8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장르 불문 흥행 코드인 ‘가족을 울리고 웃기는’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성공한 가족 코미디는 많았지만 점점 흥행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는 코미디영화에서 대통령을 볼 수 있는 시절이기도 했는데, 250만 관객을 동원한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는 대통령을 권력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이순재)이자 연인(장동건)이자 배우자(고두심)의 눈높이에서 재해석하는 재미를 안겨준 작품이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김영탁 감독의 <헬로우 고스트>(2010)가 300만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장르는 다르지만 거칠게 비교하자면 <헬로우 고스트>는 <신과 함께-죄와 벌>(2017)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과 유사한 전략을 구사한 영화라고도 할 수도 있다. 배우 차태현을 세상 풍파에 찌든 철없는 아들로 활용한 점이나 부모의 내리사랑을 밑거름 삼아 강력한 최루성 눈물 폭탄을 터뜨리는 후반부의 전개 등이 묘하게 닮었다. 또한 흥행에 성공하는 가족 코미디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스틸러의 활약도 두드러졌는데 배우 차태현뿐 아니라 강예원, 고창석, 장영남, 이문수 등 탄탄한 조연배우들이 보여준 코믹한 귀신 연기가 관객을 두 시간 내내 정신없이 울고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3년 설 연휴 극장가를 강타한 <7번방의 선물>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이전의 천만 영화들과 장르 면에서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결을 달리한다. 어쩌면 이제 코미디 차례가 온 것을 알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설 연휴에 가족끼리 볼만한 코미디영화가 제대로 흥행했다는 타이밍 면에서는 최근 <극한직업>(2019)이 설 연휴 하루 관객수 100만명을 넘기는 기염을 토하면서 한국영화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사례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밖에 여러 흥행 요인이 있겠지만, 한 가지 다시 짚어보고 싶은 것은 조폭 사용 방법에서 이전의 한국형 조폭 코미디 영화들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배경이 교도소라 자연스럽게 온갖 범죄자들이 아빠 용구(류승룡)와 딸 예승(갈소원) 사이를 서포트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김정태, 정만식, 오달수, 김기천, 박원상 등의 배우들이 수위를 적당히 조절했다. 그 ‘조폭’의 자리를 때에 따라서는 검사나 경찰이 차지하면서 흥행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흥행
2010년대 초반, 한해 동안 개봉한 영화의 전체 흥행 순위 20위권 안에서 종종 눈에 띄는 코미디 장르물이 있었으니, 바로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은 대부분 정통 코미디를 추구하기보다 다른 장르의 요소를 끌어들여 융합하는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2010년 가을에 개봉해 270만 관객을 동원한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은 누군가의 연애를 조작한다는, 일종의 케이퍼무비를 표방하는 요소가 재미를 안기며 눈을 사로잡았다. 연말 특수를 노려 200만 관객을 동원한 이선균, 최강희 콤비의 <쩨쩨한 로맨스>는 19금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며, <방자전>(2010) 최고의 신스틸러로 주목받은 배우 송새벽과 이시영이 본격 코미디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고 할 수 있는 <위험한 상견례>(2011)가 250만 관객을 동원했다. 로맨스에 호러 감성을 토핑해 때때로 주객이 전도되는 오싹함을 안겨준 손예진, 이민기 주연의 <오싹한 연애>(2011)도 독특한 소재와 감성에 270만 관객이 화답했다. 이 영화들보다 흥행 성적은 조금 뒤지지만 TV드라마 등에서 흔히 봐온 생활밀착형 로맨스를 다룬 한예슬, 송중기 주연의 <티끌모아 로맨스>(2011), 임창정, 김규리 주연의 <사랑이 무서워>(2011)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하정우, 공효진 주연의 <러브픽션>(2011)과 임수정, 이선균, 류승룡 주연의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두 작품은 여타 장르영화에서 출중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연기파 배우들이 능청스럽게 코미디에 젖어들 때 벌어지는 케미스트리를 강력한 무기로 내세운 코미디였다. <러브픽션>이 170만, <내 아내의 모든 것>이 무려 450만 관객을 동원하던 시기의 이야기다.
코미디영화의 다양화
최근 몇년 사이에는 잘 볼 수 없는 스타일의 코미디영화가 쏟아지듯 등장하던 때가 있었다. 액션과 코미디를 결합한 <7급 공무원>이 400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 신태라 감독이 배우 강지환과 다시 한번 작업한 <차형사>(2012)로 돌아와 전작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기까지 그사이 1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코미디영화는 임창정식 코미디의 연장선상에 있는 <청담보살>(2009), 강효진 감독의 <육혈포 강도단>(2010), 이준익 감독의 걸쭉한 사투리 코미디 <평양성>(2011), 류승범에게서 짐 캐리의 모습이 언뜻 보인 영화 <수상한 고객들>(2011), <간기남>(2012) 등이다. 그 뒤를 이어 만들어진 영화의 면면을 보면 실로 다양하다. 육상효, 김인권 콤비의 등장을 알린 <방가? 방가!>(2010),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스릴러 코미디를 보는 듯한 손재곤 감독의 <이층의 악당>(2010), 김상진 감독의 조감독 출신 김동욱 감독이 만든 <반가운 살인자>(2010), 독보적인 코미디 색깔을 지닌 신정원 감독의 <점쟁이들>(2012), 이른바 시골 코미디의 달인 장규성 감독의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고현정, 유해진, 성동일, 고창석 등 중견배우들이 만들어낸 코미디 <미쓰GO>(2012), 송새벽 사용설명서 영화 중 한편인 <아부의 왕>(2012) 등이 당시 거대 자본을 들이지 않고 만든 코미디영화들이다.
사극과 슬랩스틱 코미디의 만남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2012년, 2주 간격으로 개봉한 김주호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코미디 장르 영화로서 48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여름 극장가를 점령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흥행 요인 역시 여러 가지로 단지 <도둑들>의 낙수효과만을 누린 영화는 아니었다. 사극과 코미디의 안정적인 조합이라는 장르적 힘이 인정받은 사례고, 이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47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미 대표적인 코미디 흥행 시리즈의 탄생을 알리기도 했다. 설 연휴 흥행 공식을 이어가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나 차태현의 첫 사극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모두 슬랩스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작품이다. 설 연휴 안방극장에 연일 소환되던 성룡이 등장하는 유의 영화가 주는 재미와 연결짓는다면 과장일까. 사실 두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이 반응한 지점은 주인공들이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맞서는 진지한 모습보다는 온갖 고초를 몸으로 겪어내는 슬랩스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충분히 흥행 요인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코미디 흥행사를 훑어보면 차태현이라는 배우의 흥행성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2000년대 초반, 국민 남친이자 모두의 견우로 살던 그가 이경규의 복면(<복면달호>(2007))과 강풀의 스케치 (<바보>(2008))를 거쳐 <과속스캔들>과 <헬로우 고스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연달아 흥행을 성공시키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이후 TV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을 오가며 지금도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2009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해운대> 1145만명 _가장 섬뜩한 재난 속에서 가장 뜨거운 감동을 느끼게 하다.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7급 공무원> 408만명 _액션과 로맨스가 코미디를 타고 놀 때 만들어지는 조화.
최고의 코미디 배우: <7급 공무원> 강지환 _겉으로는 말끔한데 뭐든 행동이 어설퍼서 웃긴 매력을 발산시켰다.
최고의 신스틸러: <7급 공무원> 류승룡 _최고의 서포트다. 안 웃기려 해서 더욱 웃긴 코미디 연기를 보였다.
● 2010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아저씨> 628만명 _아저씨 열풍의 시초, 아직 이 영화를 넘어선 아저씨는 없다.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헬로우 고스트> 301만명 _소중하고 위대한 가족 코드를 활용하다.
최고의 코미디 배우: <헬로우 고스트> 차태현 _그를 감동의 치트키처럼 사용한 영화다.
최고의 신스틸러: <헬로우 고스트> 고창석 _온몸으로 웃기고 울리는 당대 최고의 신스틸러.
● 2011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최종병기 활> 747만명 _직선과 질주의 쾌감을 이토록 잘 살리다니.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써니> 736만명 _복고 열풍의 시작을 알린 바로 그 영화다.
최고의 코미디 배우: <수상한 고객들> 류승범 _웃는 게 웃는 게 아닌 표정의 품격.
최고의 신스틸러: <오싹한 연애> 이미도 _야하게 웃기는 분야의 장인이다.
● 2012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도둑들> 1298만명 _여러 번 봐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천만 영화의 탄생.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490만명 _사극과 차태현의 찰떡같은 조합.
최고의 코미디 배우: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김인권 _이 시대의 유일무이한 억울함을 연기하다.
최고의 신스틸러: <건축학개론> 조정석 _<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까지 포함하여 ‘납뜩이’ 조정석만의 웃긴 오빠 캐릭터 탄생.
● 2013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7번방의 선물> 1281만명 _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성급하게 몰아세우는 영화.
최고의 코미디 배우: <7번방의 선물> 류승룡 _아버지의 새로운 면모, 자상하고 탈권위적인 아버지의 눈물을 보이다.
최고의 신스틸러: <롤러코스터> 김재화 _명대사 “마른 수건 오네가이시마스?”를 탄생시킨, 코믹 외국어 장르를 개발한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