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 코미디영화 총정리⑤] 1999~2003년 한국 코미디영화의 전환기
2019-03-06
글 : 이화정
<주유소 습격사건>부터 <엽기적인 그녀>까지
<주유소 습격사건>

1999년 <쉬리>가 개봉했고, 58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서막을 열었다. 전년 대비 관객점유율이 95%나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 코미디영화도 전환기를 맞았다. 이 시기 코미디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감독이 있다. 바로 김상진과 장진이다. 웃음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파급력에서는 막상막하였다. 김상진 감독은 <돈을 갖고 튀어라>(1995), <깡패수업>(1996)을 시작으로 강우석 감독이 만든 <투캅스>의 바통을 이어 <투캅스3>(1998)를 연출했으며, 이후 <신라의 달밤>(2001), <라이터를 켜라>(2002), <광복절 특사>(2002)로 이어지는 시네마서비스 사단의 코믹물을 만들어낸 당대 한국 코미디영화의 아이콘이었다. 특히 <주유소 습격사건>(1999)에서 라면 먹다 ‘그냥’ 주유소를 털고 악덕 사장까지 혼내주는 친구들의 모험담은 관객에게 기묘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백놈이든 천놈이든 한놈만 패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무대포(유오성), 라이터 하나 때문에 조폭과 맞짱 뜨는 <라이터를 켜라>의 백수 봉구(김승우), 석방 하루 전 애인 때문에 교도소를 탈출한 <광복절 특사>의 모범수 재필(설경구) 등 막무가내 정신은 기존 체제에 맞서는 비판이자 통쾌한 한방이었다. <투캅스>로 폭발력을 얻은 박중훈을 지나 차승원, 이성재, 유오성, 유해진이 활약하던 때, 김상진표 코믹물의 근간을 이루는 캐릭터는 이렇게 세기말, 세상을 향해 큰소리쳐도 된다는 일종의 힐링을 안겼다.

<주유소 습격사건>을 시작으로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까지 그의 히트작에는 코미디영화 각본의 대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박정우 작가가 늘 함께했다. 반면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장진 감독은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1998)부터 특유의 대사와 일관된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특화됐다. 남북 분단 상황을 소재로 하는 기존 영화를 관통하는 중압감을 덜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남파 간첩(유오성)의 일상적이고 소박한 모습을 포즈를 두는 엇박자 유머로 풀어낸 장진식 코미디는 새로운 20대 젊은 감독이 만든 젊은 코미디였다. 장진의 등장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연출하던 때부터 그와 함께한 신하균, 정재영, 임원희 등 이른바 장진 사단 배우들이 장진 작품을 통해 영화계에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진식 유머는 이후 <킬러들의 수다>(2001), <아는 여자>(2004), <박수칠 때 떠나라>(2005), <거룩한 계보>(2006)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플란다스의 개>

조폭 코미디의 범람

한국 코미디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초대박 상품 ‘조폭 코미디’. 이전에도 <깡패수업>, <할렐루야>(1997)가 있었으니 ‘깡패’는 있었다. 하지만 송능한 감독의 <넘버.3>(1997)에서 송강호를 필두로 한 삼류 건달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이후 조폭 코미디는 사실 <넘버.3>가 창조한 말투와 행동을 가진 건달 캐릭터만 따로 뺀 스핀오프물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는다. <넘버.3>가 조폭을 소재로 웃길 수 있다는 웃음의 불씨를 제공했고, <주유소 습격사건>의 흥행이 그 웃음을 퍼트릴 기름을 부었다. 2001년은 이른바 조폭 코미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이후 모두 속편이 만들어진 기록적인 세편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가 한꺼번에 태어난, 조폭 코미디의 원년이다. 조직 폭력배의 줄임말인 ‘조폭’이 한국영화계에 새롭게 등장했으며, 돌이켜보면 이후 범람한 시리즈의 서막과도 같은 기념비적 해다.

집에 가면 조폭이 있고(<조폭마누라>), 조폭이 절에 가고(<달마야 놀자>), 조폭이 학교까지 가는(두사부일체>) 등 제작사와 감독은 각각 달라도 ‘조폭’ 하나만 있으면 코믹 한편 뚝딱 만들어낼 수 있던 시절이었다. <두사부일체>에서 두목 두식(정준호)은 ‘윤동주’가 “어디 새로 나온 술이냐”고 질문하고, 인터넷이 막 활성화되던 그 시절에 “메일 할 줄 아냐?”는 질문에 조직원은 “당연히 매일 (섹스)하죠”라며 누가 무식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개그를 남발한다. 이후 조폭 시리즈에 이른바 야한 농담이 끊이지 않지만 초기 조폭 코미디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거리낄 것 없는 무식의 남발이었다. 지식과 교양을 벗고, 순백의 뇌로 전달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이 관객에게 쾌감으로 다가왔다. <두사부일체>에서 조폭이 학교에 가서 대한민국의 사학 비리를 건드린 것이 일례라 할 수 있겠다.

<색즉시공>

장르의 혼용, 짜깁기 코미디영화와 패러디의 성공

<가문의 영광>이 탄생한 2002년은 이른바 코믹물이 일대 범람한 해였다. 조폭 코미디의 영향으로 <울랄라 씨스터즈> <4발가락> <보스상륙작전> <패밀리> <긴급조치 19호> 같은 졸속 기획이 범람했지만 재밌는 건 물량이 늘어나면서 퀄리티와 상관없이 다양한 코믹물이 끊임없이 제작됐다는 점이다. <화산고>(2001)처럼 SF를 베이스로 한 코믹 액션물이 나오는가 하면, <정글쥬스> <일단 뛰어>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도둑맞곤 못살아> 등 액션과 결합한 코믹물이 대거 등장했으며, <마법의 성> <몽정기> <색즉시공>처럼 ‘성’을 소재로 한 코믹물도 속속 만들어졌다. 특히 할리우드 B급 코미디물을 벤치마킹한 윤제균 사단의 코미디영화는 <색즉시공>(2002)의 성공 이후 <낭만자객>(2003)까지 이어졌다. 한달에 평균 2~3편의 코미디영화가 제작된다는 건 매번 참신한 기획이 나올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미 나온 영화의 소재를 빌리고 짜깁기한 영화들도 코미디라는 이름으로 극장에 걸리기 시작했다. <서편제>나 <박하사탕>은 물론 다른 여러 코미디 영화들에 이르기까지, 기존 한국영화들의 여러 장면과 캐릭터를 패러디한 <재밌는 영화>(2002)는 이런 분위기에서 충분히 시도해볼 법한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가문의 영광>은 이러한 코믹물의 각축전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방끈 긴 서울대 법대 출신의 대서(정준호)를 사위로 영입하려는 전라도 조폭 가문의 꼼수를 웃음 코드로 풀어냈다. (여타 조폭영화의 코드이기도 한) 전라도의 차진 사투리로 내뱉는 욕설과 잦은 폭력, 여성 폄하와 지역 폄하, 사전 시사를 거쳐 관객이 재미있어 하지 않는 장면은 아예 다 덜어내고 ‘터지는’ 장면으로만 꽉꽉 채워, 절대 흥행에 실패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낸다. 이후 5편까지 제작하며 장수한 ‘가문 시리즈’는 이렇게 지향점이 명확한 기획물이었다. 개봉 시기마저 추석 흥행을 노린 9월 13일이었으며, 그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코미디영화가 그때까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각 해당 연도의 객석점유율 1위를 차지한 영화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같은 영화였다면 <가문의 영광>은 코미디영화이자 그해 최고 흥행작에 오른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엽기적인 그녀>

<엽기적인 그녀>의 시대

로맨틱 코미디의 기념비적 작품도 물론 이 시기에 등장했다. 한류 열풍을 일으킨 <엽기적인 그녀>(2001)와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의 흥행은 로맨틱 코미디가 대거 제작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서프라이즈>(2002),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2002), <오! 해피데이>(2003),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 <싱글즈>(2003)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코미디 장르의 활황은 영화의 다양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2000) 같은 작품이 한해에 개봉했다. 수준 이하의 조폭 코미디물이 범람하며 비평가는 물론 관객도 외면하기 시작한 2002년을 지나 2003년 들어서는 다양한 코믹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장준환 감독의 기발한 유머가 가미된 컬트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소재와 웃음 코드가 독특한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도 이때 만들어졌다. 여성 비하와 차별의 시선은 존재하지만 전지현(<엽기적인 그녀>), 신은경(<조폭마누라>), 김정은(<가문의 영광>) 등 코미디 장르에서 여배우가 주연을 맡거나, 캐릭터가 부각된 점도 이후 누아르물의 도래와 함께 여성 캐릭터가 자취를 감추거나 대상화된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1999년~2002년까지 관객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이전의 추정치 기록입니다.

● 1999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쉬리> 620만명 _분단이라는 한국적 소재와 할리우드 기술력을 표방한 국내 스탭들의 결합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기틀 마련.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231만명 _한국 코미디의 레전드. 이후 조폭 코미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주유소 습격이 ‘범죄’가 아닌 주유소 사장으로 대변되는 자본, 권력에 대한 약자의 저항, 통쾌함으로 귀결.

최고의 코미디 배우: <간첩 리철진> 유오성 _<간첩 리철진> <주유소 습격사건>의 주역. 이후 <친구>로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르기까지 드라마, 액션, 멜로 모두 섭렵.

최고의 신스틸러: <주유소 습격사건> 강성진 _<주유소 습격사건>의 딴따라.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돌아버리는’ 막무가내형 캐릭터, 속사포 같은 말발로 이후 김상진표 코믹영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 2000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582만명 _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연속 9주 1위. 한국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 대중적 성공은 물론 이후 세계영화계에 박찬욱을 알린 선물 같은 작품.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반칙왕> 187만명 _<조용한 가족>에 이어 김지운 감독의 코미디 감각이 빛났다. 어서 그의 다음 코미디영화가 보고 싶다.

<반칙왕>

최고의 코미디 배우: <반칙왕> 송강호 _소심한 소시민 대호의 디테일에 따라 웃다가 끝내 관객을 울게 만드는 코믹 연기. 명불허전의 연기.

최고의 신스틸러: 박상면 _<하면 된다> <반칙왕> <달마야 놀자> 이후 <조폭마누라>의 카리스마 있는 아내의 소심한 남편 역까지. 이 시기 코믹 장르 붐에 박상면이 있었다.

● 2001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친구> 818만명 _“내가 니 시다바리가.” 동수(장동건)의 대사가 전 국민의 입에 오르며, 대한민국 조폭 캐릭터의 본격적 시작을 알린 작품. 조폭 코미디뿐 아니라 개그 프로그램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엽기적인 그녀> 488만명 _조폭 코미디의 출현에도 굳건히 1위를 고수한 작품.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을 평정한 기념비적 작품.

최고의 코미디 배우: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_이전까지 고수해온 청순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터프한 캐릭터로 변신. 전지현의 매력은 이때 모두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신스틸러: 정운택 _<친구>로 주목받은 라이징 스타. <두사부일체> 시리즈의 ‘대가리’로 자신의 코믹 캐릭터를 이어나갔다.

● 2002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가문의 영광> 505만명 _대한민국 조폭 코미디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이후 5편까지 나오며 추석 시즌 관객을 웃겼다.

<가문의 영광>

최고의 코미디 배우: <가문의 영광> 김정은 _‘가문 시리즈’뿐만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까지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당시 ‘한국의 멕 라이언’으로 수식됐다.

최고의 신스틸러: <색즉시공> 신이 _<색즉시공> 시리즈와 <낭만자객> <위대한 유산>까지 ‘신들린’듯한 신이의 연기가 없었다면 웃음의 크기도 줄었을 듯.

● 2003년

최고 흥행 한국영화: <실미도> 1108만명 _연말 영화관 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로 첫 천만 영화로 등극한 <실미도> 개봉.

최고 흥행 한국 코미디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490만명 _“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수완(김하늘)의 동갑내기 학생 지훈(권상우)과의 과외와 연애를 동시에 코믹하게 그리면서 최고의 코믹 흥행작으로 등극.

<선생 김봉두>

최고의 코미디 배우: <선생 김봉두> 차승원 _제멋대로, 안하무인의 캐릭터로 정감을 형성하기까지. 소위 차승원 코미디의 진수가 여기 다 있다.

최고의 신스틸러: <황산벌> 이문식 _<달마야 놀자>부터 이문식의 시대가 왔다. 이문식을 빼놓고 대한민국 코믹 캐릭터를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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