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아만다> Amanda
미카엘 에르스 / 프랑스 / 2018년 / 107분 / 시네마페스트
다비드는 20년 전 자식을 떠나 런던에 정착한 어머니를 보러 가자는 누나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머니와의 관계 회복에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의 관심사는 이제 막 파리로 이사 온 레나와의 연애에 쏠려 있다. 하지만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으로 누나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다비드의 일상은 크게 흔들린다. 누나의 7살 된 딸 아만다는 고모할머니와 다비드의 집을 오가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고, 다비드는 그의 법적 후견인을 고민하는 기로에 선다. 2015년 11월13일 파리 테러가 명징히 연상되는 이야기다. 감독은 가상의 참사를 생략하기보다 직접 보여주는 쪽을 택했는데, 갑작스러운 폭력이 야기한 상실감을 관객 역시 체험하게끔 한 의도로 읽힌다. 어렴풋한 은유보다 분명한 클로즈업 숏으로 빚은 애도와 회복이 마음을 흔든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If Beale Street Could Talk
배리 젠킨스 / 미국 / 2018년 / 119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을 유리 너머로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티시(키키 레인)는 19살, 파니(스테판 제임스)는 22살이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의 일부였고 부끄러움이 없었던 그들은 상대의 아름다움을 인식한 날 바로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티시가 임신한 상황에서 파니는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억울한 누명을 받아 감옥에 수감되고, 연인은 삶의 지속 자체를 위협받는 처지에 놓인다. 1974년 발간된 원작 소설을 쓴 제임스 볼드윈은 빌 스트리트를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흑인의 시작점이자 흑인의 유산”이라 규정한다. 흑인 사회의 정체성과 인종문제를 근간에 깔고 포문을 열지만, 이 영화의 연출자는 스파이크 리나 라이언 쿠글러가 아닌 배리 젠킨스다. 낙관적인 과거와 암울한 현재, 할렘가 노동자계급의 삶과 낭만적인 사랑의 태동이 대비된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감독의 인장을 확고히 한다. 감독의 전작 <문라이트>(2016)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작정한 클로즈업과 멜로의 정공법을 신뢰한다. 특히 전체를 통틀어 가장 힘주어 연출한 베드신의 매혹성이 특기할 만하다. 딸 티시의 사랑을 단단하게 지지하며 극에 따뜻한 온도를 채우고, 영화 후반 강간 피해자를 찾아가는 가족의 심정을 입체적으로 연기한 레지나 킹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Sink or Swim
질 를루슈 / 벨기에, 프랑스 / 2018년 / 122분 / 시네마페스트
“확실한 게 없는 이 세상에 아주 확실한 게 하나 있는데, 네모는 동그란 틀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2년째 백수, 자식은 반항하고 아내에게는 무시당하는 베르트랑(마티유 아말릭)은 우연히 남자 수중발레 단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게 된다. 다짜고짜 수중발레를 시작한 그가 만난 늦깎이 동료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결함이 있는 아저씨다. 음악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고 캠핑카에서 사는 아저씨, 수영장을 팔아야 하는데 팔리지 않는 아저씨, 나이가 많아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아저씨…. 원래 수중발레는 여자들이 하는 것 아니냐며 주변에서 비웃어도 “여성성을 찾으면 더 남자다워질 수 있다”는 코치의 가르침을 받아 이들은 새로운 남성성을 찾아간다. 신파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시종일관 경쾌한 리듬을 살리는 데 승부를 건 영리한 대중영화.
<델핀과 카롤> Delphine and Carole
칼리스토 맥널티 / 프랑스 / 2019년 / 70분 / 프론트라인
페미니스트 영화감독 카롤 루소풀로와 그의 친구 델핀 세리그는 특별한 여성 해방 운동을 시작한다. <반항하는 뮤즈들>은 새로운 비디오 기술을 활용, 그들의 페미니즘적 목소리를 담고 68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있었던 여성들의 분투를 영상으로 아카이빙하는 작업이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필름을 수집하고 기록하며 소규모 상영으로 이를 공유했다. 여성성과 남성성, 낙태 합법화, 여성의 성적 해방 등을 다채롭게 논한 그들의 족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화계를 향한 문제의식이다. 70~80년대 영화산업이 여성을 착취한 양상은 작금의 미투(#Metoo) 시대와 조우하며, 이것이 현재 진행형의 사안임을 상기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다른 여성과 함께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또렷한 메시지가 영화를 통해 영화제 관객에게 실천되는 순간의 임파워링이 확실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