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 배우로 소환해도 되는 걸까. <소년시절의 너>의 주동우가 중화권 3대 영화제(금마장, 금상장, 금계장)를 모두 석권한 역대 최연소(이자 유일한 20대) 여성배우라는 기록을 세우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모두가 주동우를 사랑하는 지금, 지극히 사적인 이유를 덧붙이고 싶다. ‘체구가 작다’는 신체 조건을 가진 여자가 받는 온갖 편견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자면 이 지면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 틀을 반전시키는 순간들, 예컨대 레이디 가가가 슈퍼볼 경기장 꼭대기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타났을 때, 박보영이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귀신으로 빙의했을 때, 유독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주동우를 처음 인식한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였다. 안정을 추구하는 칠월(마사순)과 달리 분방한 삶을 즐기는 안생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축 처진 순한 눈꼬리를 가진, 체구도 자그마한 여자가 겁 없이 돌아다니고 건장한 남자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고?’와 같은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주동우는 어느 순간 그러한 경계 짓기조차 무의미해지게 만든다. 유독 그는 술병을 들고 끝까지 ‘원샷’하는 연기를 자주 선보이는데(<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먼 훗날 우리>), 그런 연기를 할 때마다 위장이 튼튼해서 좋겠다, 호기로운 태도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 타고난 신체 조건이 딱히 의식되진 않았다.
주동우가 울면 보는 나도 운다. 예외가 없다. 그런데 슬픔에 함께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을 버티게 해준다. 주동우가 연기하는 여성들은 불안하지만 연약하지 않고, 주변에 도사리는 위험을 지우진 않지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준다. ‘남녀 덩치 차이에서 오는 케미스트리’라는 말이 아직 성행하는 시대에, 주동우는 내면에서 오는 강인함으로 든든한 임파워링이 되는 존재였다.
올해 한국에서도 개봉한 <소년시절의 너>는 학교 폭력을 고발하는 사회 드라마에 청춘 멜로를 결합한 영화다. 피해자 입장에 선 주동우는 그가 버텨야 하는 불편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그 끔찍함을 덜어내진 않는다. 다만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라고 고백하는 소년에게 보내는 눈빛은, 이 혹독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 그리고 한때의 청춘에 애틋한 위로가 된다. 주동우로부터 발견하는 사적인 모습이 점점 더 늘어나고, 설득되고, 힘을 받는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주동우는 “중국에서 여성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증가하고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 대신 능력, 개성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필두로 중국영화계에 시작된 기분 좋은 균열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스타를 통해 느낄 또 다른 카타르시스는 무엇이 있을까.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다.
열번의 ‘다른’ 울음
<소년시절의 너>에서 진실을 눈치채고 찾아온 형사에게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 등으로도 연기하는 주동우를 볼 수 있다. 형사 앞에서 오열할 때 그리고 자신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간 샤오베이(이양천새)의 면회를 갔을 때 보여주는 눈물 연기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소년시절의 너>의 주동우는 열번 울고, 열번 모두 다르게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