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20년의 얼굴들] 남선우 기자의 PICK <스왈로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헤일리 베넷
2020-12-11
글 : 남선우
<스왈로우>

정숙한 아내로 뿌리내리려는 순간 육체와 정신에 찾아온 고통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자. 그도 관객도 발병의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할 때, 헤일리 베넷은 유난히 강조된 흰 피부 아래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얼마간 억누르는 연기를 선보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환자의 곡절을 짐작하게 했다. 자주 붉어지던 두뺨이 마치 인내의 역치를 시험하는 리트머스지 같았다고나 할까. 그 볼이 아릿해 잊기 힘들었다. 올해 공개된 출연작 <스왈로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힐빌리의 노래>에서 모두 그랬다. 이중 앞선 두 작품에서 베넷은 상대방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온 여인에게 찾아온 임계점을 인상적으로 표현해냈다.

영화 시작 30분 만에 죽음을 맞아야 했던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베넷에게 너무 짧은 무대였다. 대신 이식증에 걸린 임신부 헌터 역을 맡은 <스왈로우>에서 그는 압력을 버티다 못해 잔잔히 폭주하는 주인공으로서 화면을 장악했다. 넋 나간 표정으로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도 은근한 교태로 남편을 마중했고,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구슬, 압정, 나사를 삼키다가도 갑작스레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병을 얻고 자기 과거를 거슬러가길 감행한 인물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그에게 트라이베카영화제, 우드스탁영화제, 브루클린호러필름영화제, 뇌샤텔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연이어 여우주연상을 선사한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이후 <힐빌리의 노래>에서 주인공 가족의 장녀 린지를 연기한 베넷은 실제로 오하이오 소도시 출신으로, 작품이 자기 삶과 연결되었다고 느낀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화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 들을 태그하며 긴 헌사를 남기기도 했다. 베넷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소리치던 소녀가 엄마를 용서하는 성인이 되기까지의 세월을 증량과 분장으로 무리 없이 소화했다. 2020년 한해를 유독 불안정한 가정에서 치이고 견디는 역할로 보낸 그의 다음 배역은 연인 조 라이트 감독의 차기작인 <시라노>의 록산. 그가 낭만적이고도 저릿한 사랑을 향해 헤엄치는 모습을 하루빨리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헤일리의 노래

2007년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와도 못 이긴다는 당대 톱 팝스타 코라 콜만 역으로 데뷔한 헤일리 베넷은 가창력도 뛰어난 배우다. 그런 그가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기교 없이 수수하게, 아들과 장난을 치며 흥얼거리는 스탠리 브러더스의 <Little Bessie>는 짧고 굵게 인물의 내면을 훑고 지나간다. 그의 노래를 다른 작품에서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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