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인①
2020-12-31
글 : 씨네21 취재팀
사진 : 씨네21 사진팀

올해의 감독

<사라진 시간> 정진영

올해의 한국영화 4위에 안착한 <사라진 시간>은 올해의 영화인 설문에서도 감독, 신인감독, 시나리오 등 여러 부문에 호명되며 고른 지지를 얻었다. 정진영 감독에겐 그 세 이름 모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그는 이 작품으로 “기성감독들 사이에서 가장 신선한 결과물을 낸 신인감독”(김철홍)으로 각인된 동시에 “자신의 영감과 직관을 자유롭게 표출해 파편화된 기호들을 만든 후, 결코 공허하지 않은 방식으로 흥미로운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김소미) 각본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데뷔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 숏이 유려하고 매혹적”(홍은미)인 한편의 영화를 완성해냈다. 그런 그가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된 배경에는 오랜 시간 연기자로 활약해오다 연출자로 첫발을 뗀 그의 행보에 대한 평자들의 감탄과 기대가 자리할테다.

“전혀 생각지 못한 거창한 타이틀에 어리둥절하고 고맙다”며 인사를 건넨 정진영 감독은 “개봉 당시 내가 영화를 연출하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 한 작품 정도는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도전해볼 수 있지만, 두 번째가 과연 가능할까” 마음 한구석에 질문만 쌓여갔다고. 그러다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머내마을영화제, 춘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GV)를 하면서 비로소 영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는 그는 이때 만난 젊은 영화인들로부터 “나의 영화를 더 보고 싶다는, 더 만들어보라는 격려를 받고 다시 용기를 내는 중”이다.

평단의 지지도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정진영 감독은 내년에는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의 배우로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라는 계획과 함께 최근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는 이 시나리오를 스크린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웃었다. “나이 먹고 뒤늦게 연출을 시작했는데 서두를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겠다.”

올해의 여자배우

<도망친 여자> 김민희

“‘홍상수 영화’를 ‘김민희 영화’로 부르고 싶을 정도의 존재감”(김철홍)이다. 관객이 스크린에서 만날 기회는 줄었지만 영화 속 배우 김민희의 존재감은 그 크기를 더해가고 있다. <도망친 여자>에서 그는 5년 만에 남편의 출장으로 자유롭게 지인들을 만나고 다니는 감희로 분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고. 우린 좀 많이 맞는 거 같아요.” 만나는 지인들에게 남편과의 애정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감희가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피어오를 때쯤, 감희로 분한 김민희가 버리고 떠난 현실의 조각들이 환기되는 기묘한 형국이 펼쳐진다.

김민희라는 텍스트여서 가능한, 영화와 현실이 서로 기대어 지탱하고 있는 기이한 구조. “대중으로부터 떠나간 김민희가 <도망친 여자>에서 감희가 그러했듯 끝내 홀연한 감정의 입자가 되어 우리 곁을 맴도는” (김소미) 건 그래서다. 알려져 있다시피 김민희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를 제외하고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이래로 쭉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만 출연하고 있다. <도망친 여자>에서 김민희가 “홍상수 감독과의 오랜 작업으로 가장 편안하게 그 영화에서 논 것 같은 느낌”(오진우)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다.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그녀에게 <씨네21>이 뽑은 2020년의 여배우로 호명된 데 대해 소감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영화 속 감희가 누군가와 천천히 식사를 하고, 마음을 전하는 대화를 나누며, 스크린과 마주하는 모습을 한번 더 떠올려본다. “<도망친 여자>는 오직 김민희만을 위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크린 속 인물로서 배우 김민희에 대한 기록. 우아하고 아름답다.”(이지현)

올해의 남자배우

<#살아있다> <소리도 없이> 유아인

<#살아있다>와 <소리도 없이>에 출연한 유아인은 “올해 가장 영리한 행보를 보인 배우”(박정원)다. <#살아있다>에서 좀비 떼의 공격을 피해 아파트에 갇힌 채 세상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던 유아인의 눈물 겨운 노력은 넷플릭스에서 전세계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얻었다.

오랜만에 전화 통화한 유아인은 “카메라 앞에서 혼자서 상황을 보여줘야하는 까닭에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톤 앤드 매너를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소리도 없이>에서 그는 “삭발하고, 체중을 15kg이나 불려 잘생김과는 1도 인연이 없었다는 듯 둔중한 모양새”(황진미)를 보여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며 투박하고 느린 동작으로 감정이 드러나는데, 이는 유아인의 배우로서의 자의식이 무서울 정도로 내비치는 대목”(황진미)이다. “스타 배우가 <소리도 없이>같은 작품에 출연하고 투자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국영화계에서 해내고 있다”(임수연)는 평가가 나온 것도 그래서다. 유아인은 “나 때문에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할까봐 스스로 걱정이 많았다. 그럼에도 홍의정이라는 신인감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고, 그래서 그의 시작을 꼭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유아인은 차기작인 <승부>(감독 김형주)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연기하는 이창호와 이병헌이 맡은 조훈현은 사제지간의 바둑 명승부를 펼친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영화라는 매체를 많이 괴롭힌 해로 기억되겠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책무이자 숙명”이니 “영화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겠다”라는 게 그의 굳은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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