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외국영화 총평, 6~10위의 영화들
2020-12-31
글 : 송경원
영화적인 경험의 가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외국영화는 언제나 수작이 넘쳐나서 고르기가 어렵다는 평들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달라진 흐름을 감지한다. 평자들의 리스트에는 공통적으로 영화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물리적으로 평년에 비해 개봉영화 자체가 적은 탓도 있지만 영화의 폭과 층위, 다른 말로 영화의 영토가 점점 좁아져가는 걸 실감한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씨네21>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극장에서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점차 줄어드는 지금, 전통적인 영화 관람 방식을 고수하고 따를 것인가. 아니면 영화의 가능성을 넓혀 새로운 형태도 받아들일 것인가.

올해 <씨네21>은 후자를 따르기로 했다. 해당 연도의 극장 개봉작을 대상으로 했던 종전의 기준을 완화하여 최초 개봉작이라면 예전 영화도 포함시켰고, OTT로만 공개된 영화까지도 선정을 받기로 했다. 이에 대한 평자들의 반응도 둘로 나뉘었다. OTT 영화를 순위에 적극 반영하거나 아예 순위에 올리지 않거나. 따라서 올해의 외국영화 순위는 다소 불균질한 과도기적 경향을 보였다.

올해 외국영화 1위에 꼽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여성영화의 강세 속에서 독보적인 미학적 성취로 주목받았다. 2위 <마틴 에덴>과 4위 <트랜짓>은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영화를 대표하는 경향 아래에서 독자적인 색깔을 선보인 점이 돋보였다. 3위 <페인 앤 글로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상위권 영화에서 영화에 대한 기억, 자기 반영적인 면모, 시네마에 대한 고민을 읽어낼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좋은 영화는 시대의 목소리를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5위로 선정된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는 정확한 교본과도 같다. 지금 이 시점에 다시 이 영화가 리스트에 올라온 것 자체가 영화가 시간의 풍화를 이겨내고 어떻게 살아남는지, 시공간을 뛰어 넘어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언컷 젬스>

6위는 사프디 형제의 <언컷 젬스>에 돌아갔다. “충동과 낭만, 환상과 자조, 욕망과 허무가 뒤섞인 대도시의 지독한 스릴감을 그에 중독된 인간 군상을 통해 매혹적으로 그려낸 영화”(박정원)로 극장 개봉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정한 평자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설상가상의 형상을 스타일리시하게 만드는 사프디 형제”(오진우)의 절정에 달한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7위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다. “테크닉의 화려함이 최상”(이지현)인 이 작품은 “스코필드 일병이 전쟁을 멈추러 병사들의 물결을 가로질러 달릴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김철홍)는 평이다. “영화의 형식적 실험(숏의 리듬과 속도로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준)이 잘 드러난”(홍은애) “시네마틱 이미지의 걸작”(이지현)이라 할 만하다.

8위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포드 V 페라리>가 차지했다. 2019년 12월에 개봉해 시기상 불리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균형 잡힌 재미와 짜릿한 볼거리에선 올해 최고”(송효정)로 꼽기에 손색이 없었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된 60년대를 다루는 방식이 흥미로운데, “레이싱 도로 바깥은 60년대 호황기 미국 사회이고, 경기장 안은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는 점이 더없이 매력적”(배동미)으로 다가온다.

<맹크>

9위는 안카 다미안 감독의 <환상의 마로나>다. 10위권 안의 유일한 애니메이션인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감각의 정점에 도달”(남선우)했을 뿐 아니라 “타자의 감각으로 세계를 구현하려는 최선의 노력”(김혜리)이 어여쁜 영화다. 10위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맹크>가 뽑혔다. “그 어떤 장면을 해부해도 감탄이 나오는”(이주현) 이 영화는 2018년 <로마>, 2019년 <아이리시맨>에 이어 OTT와 극장 사이에서 또 한번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건 분명하다. 전통적인 영화 형식의 변화는 물론 관객을 향한 창구가 다변화되고 있는 지금, 영화의 위치와 의미를 묻는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외국영화 10선

01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02 마틴 에덴

03 페인 앤 글로리

04 트랜짓

05 공포분자

06 언컷 젬스

07 1917

08 포드 V 페라리

09 환상의 마로나

10 맹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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