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없이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매섭게 활을 꽂아 넣는다. 무서워하는 기색 하나 없는 하리를 시청자들은 이름보다 ‘양궁 선배’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렀다.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묵묵히 행동하는 하리랑 성격이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됐다.” 오디션 당시 “미진이를 누를 만한 포스가 느껴졌다”며 하리 역에 캐스팅한 이재규 감독의 눈이 정확했던 셈이다. 평소 좀비물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좋아한다. 잔인한 영화도 잘 본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박한 좀비 영화는 <월드워Z>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우학> 촬영하기 전에도 <월드워Z>를 다시 봤다. 좀비물을 워낙 잘 보니까 실제 좀비 배우분들을 만나도 별로 무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은 정말 다르더라. 나도 모르게 “무서워”라는 말이 나왔다. 상대 배우분이 민망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사과라도 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 장면이 잔상처럼 남아있다.”
이길 승(勝)에 다스릴 리(理). ‘승리를 다스린다’는 뜻의 이름만 놓고 보면 마치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 같지만, 정작 그는 “달리면 저혈압이 올 정도로 체력이 약하다”라고 전한다. “멋지게 활을 날리는” 하리가 되기 위해 하승리는 현대모비스 여자 양궁단에서 반년간 훈련을 받았다. “선수들처럼 쉽게 활을 당기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다. 연습하면서 선수들의 습관을 눈여겨봤고 그때 화살을 돌려 꽂는 기술을 연마했다. 보통 국가대표 선수들이 쓰는 건 ‘리커브’라는 활인데 하리가 사용하는 건 ‘컴파운드’활이다. 도르래가 위아래에서 잡아줘서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고, 명중률이 높다는 차이가 있다. 처음엔 힘이 너무 없어서 걱정했는데 하다 보니 힘도 길러지더라. 성적에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경기 운영을 한다는 점에서 내 성격과도 잘 맞았다.”
아버지를 잃은 온조(박지후)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면 그 사람은 꼭 천국에 간다”는 위로를 건넬 줄 아는 하리는 배우 하승리의 말대로 “표현은 서툴러도 정이 많은 아이”다. “그런 하리의 성격이 잘 드러난 위로였기 때문에 온조에게 마음을 많이 담아 이야기했다.” 오로지 동생을 위해 학교로 돌아온 것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리의 마음속에선 가족이 최우선인 거니까. 실제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기억도 잘 나지 않을 5살에 하승리는 드라마 <청춘의 덫>의 ‘심은하 딸’ 혜림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드라마 <학교 2017>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와 영화 <써니> 등 출연작만 50여편에 이르는 23년차 배우다.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 배우를 계속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못해본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라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다. 양궁 선배 하리로 액션을 맛본 하승리는 앞으로 “<악녀>의 김옥빈이나 <마녀>의 김다미처럼 제대로 몸을 쓰는 액션”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곧이어 “예측할 수 없는, 그렇지만 밉지 않은 또라이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는 하승리의 눈이 의욕으로 반짝인다. <지우학>이 끝난 현재, 하승리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다음 챕터를 준비 중이다. “쉴 때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싶어 하리의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탈색도 했다”면서 웃는다. 과감히 자른 머리처럼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할 하승리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