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지금 우리 학교는' 효령 역의 김보윤
2022-02-24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본능적으로, 인간적으로

내가 만약 저 상황이었다면 누구에 가까웠을까? <지우학>을 본 사람들은 한번쯤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범인들은 도서관 책장 위를 뛰어다니고 배관실 문을 뚫고 나오는 청산(윤찬영) 혹은 학교 건물 벽을 자유롭게 타고 다니는 수혁(로몬)이 될 수 없다. 좀비가 나타나면 겁에 질린 얼굴로 친구들 뒤에 숨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 자기 몫을 충만히 해내는, 그것만으로도 끝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효령은 우리가 가장 이입할 만한 캐릭터다. 김보윤은 “인간미가 있다”는 인물 설정을 시각화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전한다. 초반에는 대사마저 없어서 ‘인간다움’이란 키워드가 너무 막연하게 다가왔을 때, <열여덟의 순간> 때부터 그에게 ‘정신적 지주’였던 귀남 역의 유인수가 던진 말이 열쇠가 됐다. “꼭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것이 과연 인간적인 게 맞을까?” 그래서 김보윤이 만든 효령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두려움을 자주 내비친다. “실제로도 쓸데없는 걱정이나 눈물이 많은 성격”이라 겁에 질린 표정을 실감나게 지을 수 있었다는 그는 프레임에 잡힐 때마다 <지우학>의 잔혹한 세계관을 생동감 있게 추동한다. 누구보다 현실적인 캐릭터기 때문일까, 의외로 ‘2차 창작’ 세계에서 자주 소환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우진(손상연)과 효령이 붙어 있는 찰나의 순간들을 모아 ‘우진효령’ 커플의 실체를 주장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김보윤은 “뜻밖이었다. 정작 현장에서는 ‘효령은 대수를 살짝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가 우진 역의 (손)상연이랑 붙어 있는 장면이 있었나?’ 하고 반문했을 정도”라면서도 기분 좋은 변수에 행복해했다. 덕분에 <지우학>을 기록할 수 있는 ‘움짤’이 쏟아지는 것은 추억의 이미지를 소중히 하는 2001년생 배우에게 든든한 자산이 됐다.

세상을 이끄는 건 선두의 히어로만의 몫이 아니다. 비록 자신감은 없지만 묵묵히 뒤에서 친구들을 보살피는 효령이 있어야 <지우학>의 공생이 가능한 것처럼, 김보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갔다. <지붕 뚫고 하이킥!>을 시작으로 성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덕분에 원래 인연이 있는 동료들이 현장에 많기도 했고, 실제로 배우들의 SNS를 둘러보면 어딜 가든 김보윤의 다정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에서 까불거리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전보다 성격도 훨씬 밝아졌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데뷔해 <가족끼리 왜이래> <내 딸, 금사월> 등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김보윤이 처음부터 동료들에게 마음을 열거나 연기에 진지했던 것은 아니다. 집에서 <환상의 짝꿍>을 보다가 “나도 저기 나가 선물 받고 싶다”는 마음에 덜컥 방송 활동을 시작했을 뿐이다. “예전엔 다른 아역배우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서로 친하면서도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견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싫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열여덟의 순간> <지우학> <안나라수마나라>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열여덟의 순간>의 배우들은 해 뜰 때까지 연기 얘기만 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가며 갑작스런 상황극에 몰입한다. 그 모습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지우학>을 통해 (박)지후와 (김)진영이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진짜 친구가 됐다.” 연기에 매혹된 친구들을 만나면서 꿈도 확고해졌다. 19살 때 촬영한 <열여덟의 순간>은 “내가 정말 연기를 좋아서 하는 걸까?”라고 자문하게 했고, <지우학>은 “나는 연기를 해야만 한다”고 결심하는 분기점이 됐다. “캠코더 장면은 효령에게 가장 긴 대사가 주어진 신이다. 그런데 연습을 하다 보니 감정에 지배돼 오열밖에 나오지 않았다. 준영 역의 (안)승균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히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밝고 덤덤할 수 있지 않겠냐며 오빠가 직접 연기를 보여줬다. 그 순간 나도 진짜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샘솟으면서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그렇게 <지우학>을 거치며 각성의 순간을 맞았다는 김보윤은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장세가 기대되는 신인이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격이라 피겨스케이팅, 탁구, 기타, 피아노, 우쿨렐레, 오카리나, 발레, 플라잉요가 등 안 배워본 것이 없다. 특히 내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운동을 무척 좋아한다.” 대체로 아역배우들이 겪는 “자존감이 낮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시기를 지나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현장에 가서 즐기며 연기하는” 자신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그는 <지우학> 시즌2에서 운동 신경을 살린 액션을 보여주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그가 부연하며 예시로 든 <워킹 데드>의 캐롤은 시즌 초반의 나약한 모습에서 점점 지략과 무력을 겸비한 입체적인 캐릭터로 진화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품 안팎에서 <지우학>의 보편성을 책임져온 김보윤은 이제 막 마운드에 올랐다. 짜릿한 반전을 위한 숨 고르기가 어쩐지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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