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2005년 527호대학 영화과, 영화동아리, 영화아카데미 학생 211명에게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이란 주제의 설문을 진행했다. 세 집단에서 공통으로 ‘가장 높게 평가하는 한국 감독’엔 박찬욱과 임권택이 언급됐으나 홍상수와 김동원, 변영주 등 독립영화 감독은 배제됐다. ‘최고의 한국영화’는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이 1, 2위를 다퉜고 과소평가 항목에선 임상수와 장준환이 주로 언급됐다. 배우 부문에선 황정민과 전도연, 문소리가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20년 전의 설문이지만 지금의 시선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은 과연 영화계에 호재일까 아닐까.
한국영화 장르를 개발하라
2007년 605호“활력을 잃고 아류작을 양산하는 장르영화로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겐 좀더 모험적이고 도발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씁쓸하다. 지금 봤을 땐 한국영화의 부흥기 축에 속하는 2007년마저 한국영화의 질적 위기론이 드셌다. 주류 코미디 양산은 한계에 도달했고, 싼값에 만드는 호러는 퇴화 중이며, 모험과 도발은 자취를 감췄다. 장르영화 개발의 대안으로는 문학, 웹툰 등 IP를 활용한 방식으로 탄탄한 원작의 영화화 등이 제시됐다. 이러한 방법이 충분히 가능해진 시대임에도 한국영화계에 비슷한 불만이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것은 왜일까.
디지털영화는 지금
2007년 612호제1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개최를 맞아 디지털영화의 현황과 가능성을 타진했다. 2005년 8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디지털시네마 비전 수립위원회’를 발족하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디지털 촬영에서 상영까지 이어간 무렵이다. 디지털시네마가 지닌 산업·미학적 가능성을 살피며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의 정성일, 박기용 위원장이 펼친 대담도 수록됐다. 디지털시네마의 선례로 기록된 왕빙, 리티 판, 알베르 세라, 샹탈 아커만 등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소개됐다. 최근 타계한 데이비드 린치의 업적 이후 디지털시네마는 과연 어떠한 항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나. 2025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의 해외 진출
2012년 873호2012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3인이 할리우드에 진출한 해로 기억된다. <스토커>의 박찬욱 감독,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운 감독,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이 이듬해 개봉을 앞두고 <씨네21>을 만났다. 3명의 감독은 서로의 작품을 두고 기대 요소를 남겼다. 박찬욱 감독은 <설국열차>에 대해 “내가 볼 때 봉준호의 영화 중 가장 스타일리시하다”라는 코멘트를, 봉준호 감독은 <스토커>에 대해 “박찬욱의 연출 ‘신공’이 빛을 발할 것 같다”라는 기대감을 남겼다.
그들의 퍼스트, 한국영화의 베스트
2014년 950호<씨네21> 창간 19년 특집은 한국영화 최고의 데뷔작 19선이었다. 1995년 이민용 감독의 <개같은 날의 오후>를 시작으로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홍상수, 1997년 <초록물고기>, 1999년 <해피엔드>, 2001년 <소름>, 2004년 <범죄의 재구성>,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 2007년 <은하해방전선>, 2011년 <무산일기> 등이 선정됐다. 코리안 뉴웨이브의 꼬리들, 기획영화 중심의 두각, 영화아카데미 출신의 도약, 독립영화계의 선전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감지됐다. 입봉과 차기작 제작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진 지금, 빛나던 신인들의 퍼스트가 그리워진다.
지금 미국영화에 무슨 일이?
2008년 643~645호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칸영화제 못지않은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부터 <데어 윌 비 블러드>까지 쟁쟁한 작품이 쏟아졌다. <씨네21>은 저 멀리 아메리카 대륙 ‘미국영화’로부터 시작한 영화 혁명의 기운을 놓치지 않고 발 빠르게 정리했다. 우선 코언 형제와 폴 토머스 앤더슨이라는 걸출한 감독을 중심으로 당대 스튜디오 영화들의 변화는 물론 미국 인디영화의 움직임을 탐색했다. 이어 포스트 9·11 이후 미국영화의 징후들을 읽은 후에 마지막으로 디지털 할리우드의 새로운 변혁기에 대한 정리를 통해 당대 할리우드의 지형을 그렸다. 3주 특집을 모두 합치면 넉넉히 잡지 한권 분량이 될 만한 도전적인 기획이었다. 그렇게 ‘미국영화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씨네21>은 놓치지 않았다.
천만 관객의 의미
2009년 720호2003년 12월24일 개봉한 <실미도>는 한국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였다. 이때만 해도 천만이라는 숫자는 시장의 성장을 증명하는 영광의 상징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한국영화가 천만 영화의 강박에 시달린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2009년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가 1천 관객을 돌파하자 축하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씨네21> 720호에서는 특집으로 허문영, 김영진, 이동진 평론가가 모여 <해운대> 천만 돌파의 명과 암에 대해 긴 대담을 진행했다. “<해운대> 1천만명, <국가대표> 700만명 돌파. 우리는 왜 환호함과 동시에 근심에 잠기는가”라는 타이틀처럼 기사에서는 동시대 정서를 겨냥한 컨셉 영화의 한계와 부작용을 정확하게 진단한다. “관객의 정서를 압도하는 대중영화의 모델이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하강했을 때 그것조차 곧 질릴지 모른다는 예감”(이동진)은 예언이 되어 2025년 황폐화된 한국영화 시장에 당도한다.
왕의 귀환, 제임스 캐머런 <아바타>의 전설
2009년 732호2009년의 어떤 영화도 화제성과 흥행 측면에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를 넘을 수 없었다. 상상 이상의 충격과 압도감을 안겨준 당시 상황은 특집기사의 타이틀 “혁명이다!”, 이 한줄로 정리된다. 특집기사의 첫 문단, “제임스 캐머런은 대사를 정말 못 쓴다. 아니다. 정정하자면 캐머런은 대사를 정말 캐머런답게 쓴다”(김도훈)처럼 제임스 캐머런은 이미지에 집중하는 연출자다. CG에 이어 그가 도전한 영역이 다름 아닌 3D영화였다. 삼부작으로 만들 거라던 당시의 풍문에 대해 캐머런은 이렇게 답한다. “<아바타>를 기획할 때 이십세기 폭스에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돈을 쓰게 될 거요. 그러니 아예 이 영화를 잠재적인 새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거요.’ (중략) 모든 건 <아바타>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속편 <아바타: 물의 길>(2022)이 나오기까지 13년이 걸렸다.
<아가씨> 박찬욱×<곡성> 나홍진
2016년 1060호2016년은 <아가씨>와 <곡성>의 해였다. 1054호 <곡성> 나홍진 감독 인터뷰를 시작으로 1056호 칸영화제의 <아가씨> 소식과 <곡성> 비평, 1058호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와 제작기, 1059호 <곡성> 홍경표 촬영감독과 <아가씨> 정정훈 촬영감독의 대담이 이어졌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1060호에서 이뤄진 박찬욱 감독과 나홍진 감독의 대담이었다. 두 감독이 서로의 작품을 해부하며 나눈 대화는 두편의 기념비적인 한국영화를 기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감독들의 대화답게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프리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프로덕션 단계까지의 세세한 제작 비화가 오갔다. 나홍진 감독이 정말 기대한다고 밝힌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 <도끼>(개봉명 <어쩔수가없다>)의 개봉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그들의 대화를 다시 찾아볼 법하다.
<씨네21> 창간 20주년의 기록과 배우 송강호
2015년 1000호2015년 <씨네21>이 1000호를 맞이했다. 지난 20년의 잡지를 개괄하며 한석규, 전도연, 배두나, 강동원, 임수정 등 스타 발굴의 역사, ‘이동진·김혜리의 메신저 토크’와 배우 고현정이 인터뷰어를 맡았던 ‘고현정의 쪽’ 등 인상적이었던 잡지의 코너를 복기했다. 1000호를 맞아 출간된 배우 송강호 별책부록을 두고서는 송강호 배우와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한재림 감독이 모여 한국영화의 역사에 대해 수다를 나눴다. 그 후로 10년이 흘러 30주년을 맞이한 <씨네21>. “뭐야 옛날에 다 했던 기획이잖아!”라며 회의마다 터져나오는 기자들의 앓는 소리, <씨네21>의 역사란 그만큼 두텁다.
<카이에 뒤 시네마> 뱅상 말로사 인터뷰
2018년 1142호영화 저널리즘의 미래는 무엇일까. 레거시 미디어의 후퇴, 영화 매체의 축소, 비평이란 자리 의 소멸 등 영화 저널리즘의 요소들은 하나같이 적신호를 켜고 있다. 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 <씨네21>은 세계에서 가장 유망하고 역사적인 영화잡지인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의 뱅상 말로사 평론가를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영화를 지키는 하나의 요새나 성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작은 섬에 가까운 것 같다. 태풍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유로운 공간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찾아오고 교류할 수 있는 개방된 섬이다”라는 뱅상 말로사의 말은 <씨네21>에도 커다란 감응을 부른다.
한국 코미디영화 총정리
2019년 1195호2019년 <극한직업>이 1500만 관객을 부르며 한국 코미디영화의 신기원을 기록했다. <기생충> 등이 연달아 개봉하며 근래 한국 영화산업의 최고점으로 꼽혔던 2019년의 비밀을 풀기 위해 <씨네21>은 이병헌 감독과 홍보·마케팅 담당자, 배급 담당자를 만났다. 그리고 한국 코미디영화의 역사를 1999년부터 2018년까지 정리했다. <주유소 습격사건>부터 20세기 후반부터 시작한 조폭 코미디의 범람, 2010년 무렵 <해운대> <7번방의 선물> 등 코미디와 타 장르의 접합, <수상한 그녀> <검사외전> 등 코미디 요소를 껴안은 다양한 장르영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한국영화의 부흥, 장르영화의 선전을 위해서는 종합적인 시선이 필요할 테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역사
2011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워 호스>와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 동시에 한국을 찾았다. 1993년 <쉰들러 리스트>와 <쥬라기 공원>의 개봉 이후 “우리 시대의 의식과 무의식을 가장 거대하게 잠식하고 있는 작가 스필버그에 대해 이야기해볼 가장 적절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씨네21>은 스필버그를 “진화하는 할리우드의 마지막 고전영화 감독”으로 일컬으며 분석했고, 스필버그의 경력 총체와 어록, 인터뷰 및 다수의 평론을 게재했다. “하지만 누가 스필버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또 누가 그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스필버그의 새 영화가 개봉할 2012년을 목놓아 기다리는 것뿐”(장영엽)이라는 말처럼 여전히 우리는 스필버그를 기다리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미지의 영역을 끊임없이 탐험하는 일은 아마 현존하는 전세계 영화잡지의 책무일 것이다.
이어 <씨네21>은 1148호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 특집을, 1399호에서 <파벨만스> 특집기사를 마련했다. 1399호에서는 스필버그에 대한 존경을 담아 보내온 한국 영화인들의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베스트5’를 기록하기도 했다. 봉준호, 최동훈, 조성희 감독 등이 참여했다. 1위는 <죠스>, 2위는 <E.T.>, 공동 3위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가 선정됐다. 조성희 감독의 진심 어린 에세이도 언제나 다시 꺼내 보고 싶어지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