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20세기 소녀’② 김유정, “다시 교복을 입고 반짝반짝”
2022-10-27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첫눈에 끌렸던 시나리오 <20세기 소녀>. 김유정은 출연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를 묻는 질문에 털털하게 웃으며 “사실은 교복을 입고 싶어서”라고 첫마디를 뗀다. “학창 시절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다. 영화를 모니터링할 때도 특히 보라와 연두(노윤서)가 함께하는 장면에서 감정적으로 많이 요동쳤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서 잘 울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마음이 자꾸만 이상해지더라.” 김유정의 반응은 오랜만에 한국영화계에 당도한 틴에이지 로맨스 <20세기 소녀>의 애틋한 디테일을 정확하게 건드린다. 방우리 감독은 친구의 사랑을 연결해주려다 자기가 사랑에 빠지고 마는 어긋난 큐피드 서사로 장르의 뼈대를 구축한 뒤, 10대 시절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여자 친구들간의 정서를 빛나는 파편으로 새겨넣었다.

2003년, 4살 나이에 CF로 데뷔해 <친절한 금자씨>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로 일찌감치 아역 배우 생활을 시작한 김유정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스케줄이 끝나면 안 자고 바로 학교에 갈 정도로 특히 중학생 시절이 재밌었다.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우정에 진심인 활기찬 캐릭터였다. (웃음)” 김유정의 그 시절은 나보라와 꼭 닮았었다. 마음먹으면 피자 두판은 거뜬하게 해치우는 ‘보라비디오’ 가게 딸, 17살 나보라는 대차고 엉뚱한 한편 연두를 위해 자기 사랑을 애써 꾹꾹 누를 때도 생색 낼 줄 모르는 속깊은 애다. 자꾸 귀찮게 하는 백현진(박정우)과 묵묵해서 어쩐지 마음이 더 가는 카메라맨 풍운호(변우석)가 자기 개성대로 존재할 수 있는 건 어떤 채색이든 가능하게 하는 나보라의 순수함 덕분이다.

“어쩌면 그래서 보라가 조금 답답해 보일까봐 대사 하나하나를 내뱉을 때 톤이나 행동, 말투를 세심히 고민했다. 2022년의 열일곱이 아니라 1999년의 열일곱이라는 사실도 중요한 지점이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영화 <연애소설>(2002)을 떠올렸고, 연두와 보라의 관계를 생각하며 엄정화의 <하늘만 허락한 사랑>에 감정이입을 했으니 1999년생 김유정의 취향은 1999년의 고등학생을 연기하기에 준비된 사람의 그것이기도 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고 밤이 깊어지면 오히려 에너지가 올라온다”는 김유정은 깊은 감정과 생각에 잠기게 하는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미니멀하고 담담한 사운드의 노래를, 여름보다는 가을을, 낮보다는 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20세기 소녀> 같은 작품을 통해 동료와 함께하는 순간의 쾌활함을, 밝은 웃음을 더 사랑한다. <20세기 소녀>로 크레딧 맨 앞에 이름을 올렸고, 또래들과 모여 신나게 작업했고, 그 안에서 편안한 조화와 리더십을 발휘한 이번 작품은 그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될 만하다. “아역으로 데뷔하고 곧바로 주목받은 걸로 아시는 분도 많지만 사실 어릴 때도 단역, 보조출연부터 시작했다. 이제 업계에서 일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천천히 차근차근 성장해올 수 있었다는 데 스스로 조금은 뿌듯하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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