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20세기 소녀’④ 박정우, “나만의 속도로 한발 한발”
2022-10-27
글 : 김수영
사진 : 최성열

LP를 모으고 필름 카메라를 쓰는 박정우는 <20세기 소녀>에 담긴 20세기가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날로그가 가진 투박한 매력과 느린 속도를 좋아하는 그는 촬영장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그때 그 시절을 느낄 수 있어서” 즐겁기만 했다. <20세기 소녀>에 담긴 풍경 중 독특하다고 느낀 건, 써보지 않은 삐삐나 공중전화가 아니라 현진의 고백 방법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관찰하다 직진하는 사람은 요즘에도 있긴 하지만 현진처럼 대뜸 ‘네가 좋아, 사귀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게 그때 그 시절다운 고백법 같았다. 만약 20세기로 돌아가면 나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현진이처럼 고백해보고 싶더라.”

연두(노윤서)의 심장을 두드린 첫사랑이자 보라(김유정)의 관찰 대상이 되는 백현진은 학교에서 인기 많은 소년이다. 단짝 친구 풍운호와 늘 붙어 다니는 현진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다.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관찰하는 보라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현진으로서는 그럴 법한 일이다. “나는 차분하고 정적인 사람이라 현진이와 너무 다른 사람 같았다. 허세스러울 만큼 자신감 넘치고 개구쟁이 같은 현진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됐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이제껏 내가 들었던 말들을 떠올려보면서 내 안의 현진이와 닮은 모습을 조금씩 끄집어내려고 했다.” 박정우는 현진의 진짜 매력은 뒤로 갈수록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초반의 모습과 뒷부분의 모습이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진은 누구보다 긍정적인 캐릭터다. 자신의 좋은 에너지로 어려운 상황도 이겨내는 사람이다. 내가 현진이라면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마다 아쉬워했을 것 같은데, 현진은 어떤 상황이든 쿨하게 받아들인다. 나와 다른 모습이자 현진이 대단하게 느껴진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 말고는 개그를 맡은 캐릭터가 없잖나. (웃음) 현진이의 긍정적인 매력을 잘 살리고 싶었는데 그가 가진 특유의 유머나 위트를 더 표현해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영화에서 능청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박정우는 실제 자신은 조용하고 남들보다 반응이 느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꺼이 과감해질 줄도 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과 무대에서 아이돌 댄스를 선보이고 나서 그는 자신의 미래가 춤에 있다고 확신했다. “고등학교 때 댄스 동아리에 들어갔다.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진지하게 춤추고 싶어 댄스 학원을 찾았다가 그곳의 어두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도망쳐 나왔다. (웃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나를 매혹한 건 춤 이전에 무대였다.” 그렇게 댄스 학원 대신 연기 학원에 등록했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결단 덕에 지금의 박정우를, <연애플레이리스트>(이하 <연플리>)의 강윤을 만날 수 있었다. “원래 <연플리>엔 강윤 캐릭터가 없었다. 오디션을 보고 나서 작가님이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강윤이라는 캐릭터를 만드셨다. 내가 어떤 사람이어서 작가님이 나를 좋게 보고 캐릭터로 써주셨을까, 나는 어떤 매력이 있는 사람일까 생각했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자기 속도대로 한발 한발 내디디며 탐구해가는 이 배우의 매력을 관객 역시 발견 못할 리 없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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