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③ 한국 독립영화의 정체기, 제작사·배급사·극장 관계자가 말하다
2022-12-01
글 : 이자연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이후에도 지속된 스크린 확보의 어려움

지난 9월, <씨네21>은 1373호 ‘극장 중심의 체험들이 중요하다: 2022년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를 말하다’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독립영화 시장이 입은 타격과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확장 가능성, 독립영화가 일군 성장 등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에 한 단계 더 나아가 독립영화 배급사·제작사·극장 관계자의 관점으로 올해 한국 독립영화 시장 전반의 성적과 관객의 수요 변화, 각 층의 출구 전략 등을 정리해보았다. 먼저 관계자 모두 공통적으로 올해를 독립영화의 암흑기로 꼽았다.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는 올해 청년 문제를 날카롭게 다룬 <태어나길 잘했어>와 <홈리스>를 배급했지만 모객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저조했다.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는 “여름 시장에 기대가 컸던 빅4 영화(<한산: 용의 출현> <헌트> <외계+인> 1부 <비상선언>)가 흥행 예상을 빗나가면서 그에 따라 독립영화 시장도 더 경직되고 위축되었다. 현실적으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름 시장의 흥행 부진 이후, 극장가가 모객이 안전한 상업영화와 블록버스터영화의 편성 비중을 높이면서 독립영화의 설 자리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독립영화의 설 자리가 줄었다는 고민

영화 규모에 따라 상영관 수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올해 <나를 죽여줘> <썬더버드> <아이를 위한 아이>를 배급한 강기명 트리플픽쳐스 대표는 “상영관이 많이 나와도 좌석판매율이 떨어지면 2주차에 상영을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적정한 상영관 수의 중요성을 짚었다. 이어 “독립영화가 흥행하려면 평균적으로 전국 150~200개의 상영관을 확보하는 게 가장 적합한데 그만큼의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적은 수의 상영관에도 불구하고 배급사들은 생존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티켓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프로모션을 할 자금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대부분의 배급사가 강행하기에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전략이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모두가 경쟁하는 구도로 몰아세우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의 대안책이 필요하다.

극장 상영이 끝난 뒤에도 문제는 지속된다. 백다빈 필름다빈 대표는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으니 VOD를 많이 볼 거라 생각하지만 VOD도 화제작이 올라와야 순환된다. 2020~21년의 신작 정체기가 워낙 길어서 사람들이 VOD를 찾지 않았는데 그 공백기 동안 소비자가 콘텐츠 단건 결제보다 OTT 사용에 익숙해진 상태”라며 수익 창출의 어려움을 전했다. 이에 따라 독립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의 제작지원사업 의존도는 급격히 커지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 아주 작은 영화들은 지방 극장으로 DCP를 담은 외장하드와 홍보물을 보낸 배송료 회수마저 어렵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개봉지원금을 받은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 관객수는 크게 엇갈리고, 지원금을 받지 못해 개봉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올해 필름다빈이 개봉한 7편의 작품 중 개봉지원금을 받은 <축복의 집> <쓰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기기묘묘>의 관객수와 그렇지 못한 3편의 작품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는 2.5배 이상이 차이난다. “영화 홍보를 위한 GV를 하더라도 진행자 섭외 단계에서부터 검토 요소가 달라진다. 개봉지원금을 받은 작품은 지원금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면, 자비로만 개봉하는 작품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아낄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사실상 여기서부터 흥행이나 모객의 숫자가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백다빈 대표)

제작사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토의 제정주 프로듀서는 투자사의 영화 투자 의지가 급격히 얼어붙어 경직되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는 “메인 투자사가 영화보다 시리즈물이나 IP 구매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미개봉작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영화 투자가 활발하지 않고, 이런 악순환이 연쇄적으로 독립영화 시장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다”며 독립영화 제작사가 맞닥뜨린 현실을 설명했다. 영화 투자가 요원해질수록 영화 제작은 본격적으로 천만 관객을 목표로 한 대규모 블록버스터 작품이나 타깃 관객을 마이크로화한 소규모 영화로 이분화된다. 중저예산의 독립영화나 상업영화가 점점 줄어들면서 ‘영화 시장에 허리가 없다’는 소문이 현실로 입증되는 셈이다.

오히려 독립영화 제작사가 질문을 받기도 한다. “너희는 왜 OTT 작품 안 해?’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작은 독립영화 제작사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IP를 발굴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 기본 자본도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제정주 프로듀서는 이어 “앞으로 제작사로서의 기능이 정말 중요한지 의문이 든다. IP 검토는 주로 투자사가 진행하고, 연예인 소속사에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며 콘텐츠 제작을 위해 기업간 인수합병이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시장 형태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인디스토리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를 제작하며 새로운 시장으로 진입하는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과거엔 제작사와 투자사가 영화만 봤다면 이제는 어떤 소재든 드라마화, 시리즈물화를 고려하고 있다. 앞으로 숏폼·미드폼 콘텐츠 제작도 생각하고 있다.”(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

올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였던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해제’는 극장가에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양인모 에무시네마 프로그래머,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사무국장, 김창완 오오극장 프로그래머 모두 공통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해제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수가 그전보다 늘었지만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수요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떨어졌다고 말했다. 안소현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시기에 미뤄진 독립영화가 개봉하면서 많을 땐 한달에 8편도 개봉했다. 현재 월별 관객수는 2018년과 비슷하다”며 극장이 회복기에 접어들었음을 설명했지만 그것이 곧 한국 독립영화의 회복을 의미하진 않았다. 안 사무국장은 “개봉작이 워낙 많다보니 개별적으로 쪼개진 관객 수치가 모인 것”이며 “GV나 개별적 행사가 없는 독립영화는 관객수가 특히 더 저조하다”고 밝혔다. 오오극장의 김창완 프로그래머 또한 “관객수가 늘어난 데에는 <애프터 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썸머 필름을 타고!> 등 외국 예술영화가 큰 몫을 했고 한국 독립영화의 관심은 높지 않았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특히 대구에서 영화티켓 할인권 사업을 진행하고 오오극장에서도 자체적으로 5+1 쿠폰 이벤트를 실행했지만 반등하는 데엔 역부족이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가 관객수 증가로 이어지지 않아

에무시네마의 양인모 프로그래머는 독립영화 단독으로는 약진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한국영화 기획전을 기획해 관객의 선택 범위를 넓혔다. “올해 개봉 작품이 다양했지만 대부분 다큐 장르에 속하고 극영화는 강세를 보이지 못했다. 관객이 직접 선별하고 골라보는 재미를 높이기 위해 과거 상영한 한국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묶은 기획전을 브랜드화했더니 독립영화가 오히려 큰 힘을 받았다”며 나름의 자구책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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