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⑤ 올해의 독립영화, 별별 리스트 1탄
2022-12-01
글 : 김소미
글 : 조현나

올해의 자기 반영

<오마주>의 여성감독들

아들과 남편은 자꾸만 투덜대고 오래 함께한 PD는 떠나겠다 한다. 세편의 영화를 만들고 슬럼프에 빠진 영화감독 지완(이정은)은 신작 <유령인간>이 상영 중인 텅 빈 극장에서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영화는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이 묘하게 겹쳐지는 듯하고, 배우 이정은은 절박함과 묘한 낙천성을 동시에 품은 신수원 감독의 인상을 능청스레 모사한다.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재원의 필름 복원을 의뢰받은 지완의 여정은 곧 여성영화의 길을 닦은 실존 인물 홍은원 감독의 삶까지 불러낸다. 신수원의 자전적 이야기와 홍은원의 찬란한 생애, 그리고 픽션 속에서 이들 사이를 오가는 캐릭터 지완의 삶은 서서히 허구와 실제, 각색과 진심을 넘어 영화 만드는 여성의 삶에 관한 환상적인 수수께끼로 귀결된다.

올해의 메뉴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치킨 수프

4·3사건의 트라우마와 이산가족의 고통을 품은 영화에서 과연 음식의 맛이 궁금해져도 괜찮은 것일까. 닭의 배 안에 아오모리 마늘 40쪽을 넣고 5시간 가까이 냄비에서 끓여낸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치킨 수프는 각자 울다가도 곧 모여서 밥먹는 가족의 식탁 위를 책임져온 음식이다. 양영희 감독의 모친 강정희씨의 수프는 원래도 늘 맛있었지만 ‘세습’을 통해 더 진득하고 뭉클한 맛으로 거듭난다. 일본인 사위는 절대 안된다고 반대하던 재일 조선인 집안에 사위로 들어온 연하의 남편 아라이 가오루씨가 모녀의 시장 나들이에 동행한 뒤 직접 부엌에서 수프 요리를 진두지휘할 때,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비로소 한 냄비에서 끓기 시작한다.

올해의 모창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두 이미테이션 가수

이미테이션 가수면 좀 어떤가.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오민애와 노재원이 부르는 윤시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아무렴 어떤가 싶다. “길 위의 이미테이션 가수들은 진심을 보이고 제대로 좋아할 줄 아는 사람들”(<씨네21> 1360호 인터뷰)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윤시내를 너무 사랑해서 그처럼 따라 부르고 싶은 순이(오민애)와 연시내(노재원)는 각각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와 <열애>를 열창하며 고달픈 자신에게서 잠시나마 벗어난다. 묵혀둔 설움을 다 털어버리려는 듯 후련하게 노래하는 오민애와 한결 애수 어리고 끈적한 음색으로 드랙 퀸이 된 노재원의 스타일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해의 베스트 커플상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부부

‘낮덥밤춥’ 속 생존의 위기에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라고 읊조리는 박송열, 원향라 부부의 경쾌한 신념 덕분이다. 불안이 만성화된 얼굴로 일상의 여유를 가꾸는 이 훌륭한 괴짜 부부는, 다단계·사채·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만큼은 하지 않기로 해놓고 결국 사채에 손을 댄 뒤 깊은 딜레마에 빠진다. 인간의 품위와 조건을 고민한 극중 부부에게 올해의 도덕주의자상을 수여하며, 동시에 제작부터 개봉까지 인디스피릿을 지켜낸 박송열, 원향라 부부에게 심심한 위로가 담긴 베스트 커플상을 전한다.

올해의 아이돌 감독

<성덕> 오세연

법적 고소의 여지로 인해 ○○○의 이름을 언급하기 어려워서일까, 관객은 오세연의 이름을 더 많이 말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오빠’를 따라 방송 출연을 한 적이 있는 데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입소문을 탄 <성덕>의 인기, 책 <성덕일기>,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에서의 활약을 돌아보면 오세연 감독 자신 또한 아이돌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올해의 공동작업

<애프터 미투>

용화여고의 스쿨 미투를 담은 <여고괴담>, 성폭행 트라우마를 퍼포먼스로 풀어낸 박정순씨의 이야기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마주한 예술가들을 살핀 <이후의 시간>, 여성들의 성적 경험에서 불쾌한 사각지대를 살핀 <그레이 섹스>가 한데 모여 ‘미투 이후’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4인의 여성감독이 녹록지 않은 공동 작업을 자청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이렇게 미투 운동이라는 주제로 의기투합해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연대의 결과라 생각한다”(<씨네21> 1375호 인터뷰)는 이솜이 감독의 말은 거센 백래시의 시대에 <애프터 미투> 같은 영화적 연대가 더 많이 실현되기를 꿈꾸게 한다.

올해의 K장녀

<불도저에 탄 소녀> 속 용 문신을 한 혜영(김혜윤)

욕설은 기본, 수 틀리면 주먹을 날린다. 한쪽 팔에 거대한 용 문신을 새긴 스무살 혜영(김혜윤)의 삶은 뇌사 상태에 빠진 아버지의 사고를 파헤치면서 거대한 비리와 맞서게 된다. 주로 가족 내부에서 소리 없이 고통받곤 했던 K장녀 서사가 불도저의 기세로 가족의 울타리 바깥으로 돌진해 나온다. 투박한 분노와 절망, 포효로 무장한 K장녀 안티히어로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훌륭한 여성 캐릭터를 위해 반드시 섬세함이 요구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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