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김종도 나무엑터스 대표, “결국 소통이 중요하다”
2023-02-16
글 : 김수영
사진 : 최성열

김종도 대표의 맥북 배경 화면에는 소속 배우 35명의 얼굴이 떠 있다. “잠에서 깨자마자 배우들 얼굴 한번 쭉 보는 게” 30년 넘게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일해온 그의 첫 일과다. 공대를 졸업하고 1991년 보조 출연자 관리반장을 맡으며 연예계에 입문했다. 매니저로 일하던 아이스타즈가 문을 닫자 그 시절 인연을 맺은 김주혁, 문근영, 도지원, 김혜성 등과 함께 2004년 나무엑터스를 만들었다. 박중훈, 유준상, 이준기 등 단단한 뿌리부터 박은빈, 강기영, 송강, 구교환, 박지현 등 독보적인 매력으로 팬층을 두텁게 쌓은 배우들까지 나무엑터스에는 믿고 보는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매니저는 배우의 페이스메이커’라는 철칙으로 일해온 김종도 대표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다. 요즘의 관심사나 고민, 비전을 물어도 배우 한명 한명을 언급하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답이 되돌아온다. 노안이 빨리 올 만큼 많은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매일 시청률과 대중의 반응을 피드백하며 배우의 의상부터 헤어스타일까지 깐깐하게 신경 쓰는 김종도 대표는 말 그대로 19년째 배우와 함께 뛰는 페이스메이커다.

- 최근 몇년간 나무엑터스의 원년 멤버가 떠나고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했다. 안정적인 세대교체를 이뤘다는 평이 들린다.

= 페이스메이커로 배우와 같이 뛰어야 할 때가 있고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밀어야 할 때가 있다. 박은빈 배우는 스타가 됐지만 신경 쓸 일이 또 많다. 박지현 배우도 <재벌집 막내아들>로 지난해 말 이슈가 됐지만 올해 토대를 굳건히 다져야 한다. 조우리 배우나 이정하 배우처럼 주인공이 될 만한 배우들을 끌어올릴 기회도 필요하다. 초기에는 나무엑터스가 신인을 발굴하는 회사로 알려졌는데 언젠가 ‘나무엑터스도 주인공 매니지먼트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 이게 아니다 싶어 신인개발팀을 강화했다. 그렇게 송강 같은 신인을 발굴하고 영입한 배우들은 새로 빌드업시키는 식으로 세대교체를 해나갔다.

- 배우의 굳건한 토대를 다지는 일은 어떻게 수행되나.

= 당연히 작품이다. 8할은 배우가 지닌 능력이지만, 나머지 2할의 환경도 중요하다. 영화사, 방송사 등 프로바이더가 배우에게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라이징 스타라고 홍보하고 다니는 게 내 일이다. 플랫폼이 늘고 제작자도 좋은 배우를 찾고 있으니 토대를 선점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어떤 배우들은 1년치, 심지어 2년 가까이 스케줄이 꽉 차 있다.

- 작품을 보는 눈이 중요하겠다. 어떤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검토하나.

= 어떤 배우는 캐릭터가 필요하고 어떤 배우는 장르적인 색깔이 필요하다. 배우 한명 한명을 대입해보면서 생각한다. 소재나 스토리도 본다. 선택의 결과가 1년 후에 나타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를 잘 모르고 있거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을 텐데.

= 내 역할이 스피커다. 프로바이더에게 계속 얘기한다. ‘이 배우는 이런 캐릭터를 잘해낼 거야. 기대해봐.’ 예전에 윤제균 감독에게 김주혁 배우를 <공조>의 악역으로 추천했다. 그때만 해도 주혁이는 휴 그랜트였다. 그런데 웬 악역? ‘쟤 안경 뒤의 눈빛이 장난 아니야’ 하면서 프로바이더를 자주 만나 캐릭터에 대해 계속 설명하다보면 그들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나도 계속 고민한다. 구교환 배우가 멜로를 한다면 어떤 사랑의 모습일까? 슈트를 입은 스마트한 모습은 어떨까?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상상하는 거지. 너무 재미있다.

- 나무엑터스는 배우 매니지먼트에 전념하고 있다.

= 제작이든 뭐든 잘할 수 있으면 했을 거다. 대장의 캐릭터마다 회사 구조가 다를 텐데 나는 멀티가 안되는 사람이다. 잘하는 사람을 데려와야 할까? 계속 매니지먼트만으로 될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리스크가 따른다. 매니지먼트가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 더 어렵다. 배우를 위해 외길을 가야 하는데 외길로만 가서 먹고살 수 있을까? 딜레마다. 큰 욕심 없이 꾸준히 성장해온 나무엑터스의 20년은 긴 시간이고, 시간으로 빚어낸 정통성은 중요한 가치다. 어떤 길을 택하든 이 정통성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고 싶다.

- 대표와 배우들과의 끈끈한 관계로도 유명하다. 모든 매니지먼트가 배우를 위하고 아낄 텐데 특히 나무엑터스가 사람 중심의 회사, 사람을 키우는 회사로 꼽히는 까닭은 뭘까.

= 내 자산은 사람밖에 없다. 소통이 중요하다. 점점 배우들과 나이 차가 벌어지지만 계속 스킨십하고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 내 경험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또 발견한다. 30년을 매니저로 일했으니 보이는 게 있잖나. 가끔 내 의견을 강요하기도 한다. 직원들과 부딪힐 때도 있는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자는 얘기를 할 때다. 내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부품이 깨지면 교환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는 거지. 사람한테는 시간이 중요해서 선택을 잘못하면 되돌릴 수 없다. 한 사람의 미래를 책임지는 비즈니스라 늘 신중하고 함께 두들겨가며 가려고 한다.

- 좋은 멤버를 영입하는 것도 매니지먼트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어떤 기준으로 새 식구를 들이나.

= 매력이 충분한데 어딘가 부족한 점이 눈에 띌 때 끌린다. ‘뜰 것 같은데 왜 안 뜨지?’ 싶은 배우를 보면 우리 배우로 빌드업하고 싶다. 예능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를 보는데 강기영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주혁이 같은 느낌이 들더라. 지인을 통해 강기영 배우의 계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봤다. 전 회사에서 정말 잘한 거다. 신인을 그만큼 올려놨으니까. 강기영 배우를 데려올 때 전 대표님한테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 배우로 어떻게 그림을 만들어갈까 고민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감독을 만났다. 최근에 이태원을 걷다가 강기영 배우의 택시 광고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야, 드디어 네가…! (좌중 웃음) 이런 맛이다. 매니저 초창기 때 밴을 처음 보는 순간, 나도 저 밴 한번 타봤으면 하고 꿈꿨고, 서울에 처음 올라와 대형 간판을 보면서 우리 배우들 사진 한번 저기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바람을 이루어가는 재미로 일한다.

- 사단법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회장과 고문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일하며 대표님과 나무엑터스가 일군 가장 큰 업적이라면.

= 매니지먼트가 이 산업의 일원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애를 많이 썼다. 예전에 영화 고사장에 가면 매니저는 항상 구석에 있거나 운전기사 다음으로 불리곤 했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너희는 작품 들어갈 때 누구부터 만나냐. 시작할 땐 뭐든 내줄 것처럼 하더니 막상 작품 들어가면 스탭에 대한 예우가 없다. 우리도 일원이니까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음번 고사장에서는 ‘김종도 대표님 먼저 나오시죠’ 하더라. (웃음) 매니저업이 음지에서 양지로 가는 데 조금은 기여하지 않았을까. 매니저가 엄연한 직업군으로 인정받고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요즘 신입 매니저들을 만나면 ‘너 왜 매니저 됐느냐’고 묻곤 하는데 다들 꿈이 크다. 그럴 때 자랑스럽다.

배우 구교환이 말하는 김종도 대표

“매니지먼트의 로맨티스트. 대화할 때 늘 교감하는 기분이 든다. 시나리오 분석력이 탁월한데 생각보다 감성적으로 판단하고 본능적으로 얘기한다. 거기서 오래한 사람 특유의 감각이 묻어난다. 가끔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선택을 한다. 시나리오를 너무 많이 본 사나이라 자기만의 방정식이 생긴 듯하다. 마치 손재곤 감독의 단편, <감독 허치국(너무 많이 본 사나이)>처럼. 더불어 흥망성쇠를 많이 본 사나이랄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데 그런 대화 속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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