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표종록 앤피오엔터테인먼트 대표, “좋은 작품, 좋은 사람과 함께 간다”
2023-02-16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좋은 사람이 좋은 작품을 만든다. 앤피오엔터테인먼트의 표종록 대표는 변호사로 법조계에서 일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넘어왔다. 주목할 만한 젊은 연기자들이 다수 포진한 앤피오엔터테인먼트는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제작한 역량 있는 제작사이기도 하며, <킹더랜드> <너의 시간 속으로> 등 이목을 모을 만한 차기작도 지속적으로 준비 중이다. 얼핏 독특한 경력으로 보이지만 표종록 대표의 행보에는 흔들림 없는 지향점이 있다. 좋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창의적인 작업에 대한 기쁨, 그리고 사람을 향한 믿음. 어쩌면 이해타산에 시선을 빼앗겨 잊고 있었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으로 돌아가기. 애정을 바탕으로 작품을 고르고, 신뢰를 바탕으로 협업을 이루는 그의 행보가 새삼 눈에 띄는 이유다.

- 변호사로 시작해 엔터테인먼트사 대표가 되었다. 독특한 이력이다.

= 어릴 적부터 막연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때 <씨네21> <키노> 등 영화 잡지도 열심히 읽었고 혼자 영화평을 써보기도 했다. 법조인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다보니 저작권 등 연예계쪽 자문을 종종 맡아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로 알려졌다. 그 인연으로 키이스트 대표 이사직을 제안받아 시작한 게 2008년이다. 변호사 일을 그만둘 땐 완전히 떠날 생각으로 다 정리하고 나왔는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복귀했다. (웃음) 그렇게 몇년이 지나 2012년에 JYP엔터테인먼트 부사장직을 제안받아 다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였다. 두 차례의 제안 모두 전문적인 경영 능력보다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제일 큰 이유였고, 그만큼 신뢰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껏 임했다.

-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와 앤피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 JYP에서는 아무래도 가수쪽에 비해 배우 매니지먼트의 규모가 너무나 작다 보니, 회사에서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데도 혼자 따로 노는 것 같아서 외롭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때때로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한 고민을 하는데, 그즈음 JYP를 나와 작은 제작사를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내가 나가면 배우매니지먼트를 접을 고민까지 하길래, 사람 욕심을 내다 보니 일이 커져버렸다.

- 세밀한 계획보다 인간적인 믿음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뢰로 행동하는 편인가.

= 맞다. 본래 장기적인 목표로 움직이는 것보다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결과는 지나고 나면 쌓여 있는 거고, 일 자체가 주는 과정의 즐거움이 크다. 변호사 일도 다음에 뭘 할지 정하기도 전에 40살 전에 그만두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웃음) 소송이라는 게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본질적으로 서로 다투는 일이다. 반대로 나는 뭔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에 더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어쩌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끌린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 강훈, 박서함, 신은수, 신예은 배우 등 앤피오엔터테인먼트에는 젊고 재능 있는 신인들이 많다.

= 규모를 억지로 키울 생각은 없다. 본래 훨씬 작고 가볍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중요하게 이어가다 보니 그나마 지금의 볼륨이 생긴 거다. 지속 가능할 정도에서 단단히 이어갈 수 있는 규모, 확실하게 관리할 수 있는 내실이 더 중요하다. 당장의 금전적 이익보다 좋은 작품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우선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젊고 역량 있는 배우들이 함께하고 있다.

- 좋은 작품, 좋은 배역, 좋은 이야기 모두 기본적인 것이다. 다만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본에 충실하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 우리 배우들이 좋은 인격과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전시, 책, 공연, 영화, 드라마 등을 많이 얘기해주고, 배우들이 재미있다고 한 것도 가능한 한 보고 피드백을 주려고 한다. 얼마 전 양병열 배우가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같이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보고 난 뒤 공연에 대해 한참 얘기하고, 원작 영화도 다시 보고 서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함께 가는 방향성이 생긴다.

- 앤피오엔터테인먼트의 목표는 무엇인가.

= 무언가 되겠다는 목표 지향적인 회사는 아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볼 순 있겠다. 첫 번째는 본질에 충실하자는 거다. 우리는 작품을 만드는 회사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면 좋은 콘텐츠에 집중하고 싶다. 돈이 된다고 다른 비즈니스에 눈 돌리지 않고 본업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선택의 순간마다 고민하자고 다짐 중이다. 두 번째로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에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매니지먼트 총괄인 박가을 이사가 예전 회사를 나올 때 자기에게 대놓고 원망하던 배우조차 다른 소속사를 알아봐주는 걸 보면서 ‘저 사람과는 평생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쌓인 인연과 배려는 결국 돌아온다.

-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부터 준비 중인 <킹더랜드> <너의 시간 속으로> 등 공동 제작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 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기회가 다양해지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바로 협업의 중요성이다. 큰 프로젝트를 혼자 온전히 감당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협업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변호사 시절부터 축적된 경험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조금 손해 본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상대는 공평하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작은 파이를 두고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다투는 순간 불신이 발생한다. 상대가 나를 믿게 하려면 그만큼 희생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더 이익을 보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한다는 마음이라고 할까. 우선순위를 둔다면 좋은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게 첫 번째다. 이후의 자잘한 이해관계는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

-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 쉽게 날아가는 것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무겁고 진지하기만 해도 곤란하다. 좋은 주제를 재미있게 잘 표현한 작품이 좋다. 무엇보다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오락이라는 취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시대의 화두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믿는다. 그런 작품을 잘 발굴해서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만들어내는 게 우리 몫이다. 예를 들어 2017년 제작한 <더 패키지>는 비록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흥행은 뒤따라올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걸 예측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건 우리의 의지와 선택으로 가능하다.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게 내 일이지만 그렇다고 과정을 놓치고 싶진 않다.

배우 류승수가 본 표종록 대표

“표종록 대표는 개그 욕심이 아주 많다. 그의 미소에는 시골의 순박함과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있어 우리로 하여금 그를 신뢰하게 만든다. 사투리가 섞인 말투는 나지막하지만 힘이 있다. 사람들은 왜 그가 변호사 일을 안 하고 엔터 일을 하냐고 궁금해하지만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면 그가 얼마나 종합예술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변호사 일은 남들의 안 좋은 일을 해결해주는 일이잖아. 그 일도 보람 있지만 난 창의적인 일을 할 때가 가장 기뻐.’ 지금은 나의 친구이자 멘토인 그가 엔터에 있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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