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이소영 사람엔터테인먼트 대표, “타이밍을 잡는 기술이 능력을 보여준다”
2023-02-16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원래 광고마케팅을 하던 이소영 사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한계가 명확한 제품과 달리 좋은 환경에서 점점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지닌 경쟁력에 주목하며 매니지먼트 업계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 <파친코>의 김민하 등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들 드러낸 배우들을 매니지먼트하며 화제가 돼 <데드라인> 등 해외 유명 매체가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새로 이사한 청담동 사람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이소영 대표를 만났다.

- 사람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가 어느덧 40명이 넘었더라.

= 배우들이 다양한 파이프라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 보니 소속 배우가 많아도 많다고 생각을 안 하시는 것 같다. 비슷한 플랫폼에서 일을 하지 않고 각자 다른 라인에서 작품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업계 분들도 “언제 이렇게 배우가 많아졌어요?”라며 놀란다. (웃음) 뜰 것 같은 배우를 모두 받는 게 아니라 배우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구분해서 어떻게 브랜딩을 해주면 될지 판단이 설 때 한명 한명 계약한다.

- 마케터 출신이기 때문에 배우를 영입하고 매니지먼트하는 방식도 조금 다른 것 같다.

= 처음 배우와 만났을 때 한번에 계약을 결정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보는 편이다. 배우가 무엇을 꿈꾸고 원하는지 들으면서 그의 개성과 철학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그렇게 배우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본성을 뽑아낸 후 이를 브랜딩할 수 있게 세팅한다. 전체 계획에 대한 시물레이션과 이미지네이션은 오래 걸리지만 그다음 디테일을 결정할 땐 오히려 쉽다. 그리고 천천히 가는 배우가 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도 있다. 이런 철학을 공유하는 배우가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것 같다.

- 작품 선택도 처음에 그린 설계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겠다.

= 우리가 생각하는 배우의 브랜드와 상생할 수 있는지 본다. 배우는 자기가 원하는 연기를 할 수 있고, 회사에는 작품 홍보를 포함한 다양한 과정이 소스가 된다. 작품을 결정하는 단계부터 많은 회의를 거쳐 새로운 컨셉을 피버팅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때도 배우와 MC의 캐릭터 조합, 타이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전략을 짠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전체 유리에 금이 가게 할 수 있다. 배우의 감성, 철학, 그를 둘러싼 환경, 꿈꾸는 비전 등 디테일 하나하나를 쌓아주는 작업에 공을 많이 들인다. 그렇게 형성된 아이덴티티가 스타성의 기본이 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엔터 사업이라는 게 예측할 수 없는 외부 리스크가 많다. 원래 도면을 수정해야 할 때도 있을 텐데.

= 아예 버려야 할 때도 있다. (웃음) 리스크가 생겨도 나와 아티스트가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결국 해결된다는 믿음이 있다. 사실 매니지먼트사 대표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리스크 관리다. 하지만 배우의 향후 10년을 보고 기획하기 때문에 기초 골자와 최종 목적지는 정확하게 갖고 있다.

- 코로나19 이후 극장 개봉이 밀리는 등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 변수가 많지 않았나.

= 코로나19 직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하늬 배우와 나, 데이비드 엉거 아티스트 인터내셔널 그룹 대표가 함께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글로벌로 시장을 넓혀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하늬와 함께 미국에 한번 들어갈 때마다 20~30개 미팅을 소화했다. 그들의 문화, 생각, 화법을 알아야 해외로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험으로부터 OTT 시리즈의 중요성을 배웠고, 회사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출연시켰다. 그래서 코로나19 때도 사람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은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 <파친코>의 김민하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 둘은 굉장히 다른 경우다. 모델은 디자이너의 영감을 걸으면서 표현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매력을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잘 알고 센스가 좋다. 그런 친구들을 영입하고 싶다고 직원들에게 한참 얘기할 때 우연히 어느 행사장에서 정호연 배우를 만났다. 실제로 좋은 목소리도 갖고 있어서 바로 다음날 사무실에서 미팅을 하자고 했다. 김민하 배우는 이미 <파친코> 촬영을 마친 뒤 만났다. 소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배우가 선자 역에 캐스팅됐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그래서 미팅 내내 김민하를 관찰하면서 왜 그가 발탁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가진 유니크함을 찾으려고 했다.

- 정호연 배우가 <오징어 게임> 오디션을 본 스토리도 극적이다.

= 황동혁 감독님이 <오징어 게임> 대본을 쓴다는 얘기가 들려올 때부터 작품을 기대했고, 특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새벽 캐릭터를 누가 연기할지 궁금했다. 당시 정호연 배우가 미국쪽에서 쇼 계약을 해둔 게 남아 있어서 “모델 활동을 하고 있어라. 나는 좋은 작품을 찾고 있겠다”며 열심히 정호연 배우에 대해 탐구하고 있을 때였다. 황동혁 감독님에게 패션 영상 작업물 중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클립을 보내며 “아직 연기 경험이 없지만 충분히 연기를 할 줄 아는 친구”라며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고, 해외에서 직접 오디션 대본을 연기한 셀프 테이프를 찍어 보냈다. 한국에서 한번 더 만나기를 원하셔서 당시 정호연 배우가 해외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한국에 들어오는 과감한 베팅을 했다.

- <오징어 게임>이 잘된 이후 타이밍 좋게 해외 활동을 시작했다.

= 모든 건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잡는 기술이 마케터로서의 능력을 보여준다. 전세계 에이전트와 프로덕션사에서 오는 미팅을 리스트업하고 약속을 잡을 때 정보를 취합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았다.

- 5년 전에도 회사 내에 글로벌팀이 따로 있었던 것을 보면 일찍부터 해외 진출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왔던 것 같다.

= 예전부터 사람엔터테인먼트 미국 지사를 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회사의 다음 단계 목표이기도 하다. 최근의 성공이 단편적인 신기류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짜고 투자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업계에서 진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현지 기업과 바로 손을 잡기보다 미국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한국 회사와 함께하는 쪽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해외에서 한국 반응을 신경 쓰는 것은 한국인의 취향과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베이스캠프가 중요하다.

배우 한예리가 말하는 이소영 대표

“연기의 ‘연’ 자도 잘 모르는 나를 영업하기 위해, 감독과 제작사와 매번 5시간이 넘는 미팅을 하며, 이소영 대표는 입에 침이 마르게 나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도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이다.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 배움과 토론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이 많은 배우들을 자라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사랑이 큰 사람이다. 사람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나는 그 사랑을 듬뿍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배우마다 얼마만큼의 물을 주고 습도를 맞추고 햇빛을 줘야 하는지 그녀는 매번 끊임없이 고민한다. 요즘은 콘텐츠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한국의 엔터가 나아갈 방향과 미래를 꿈꾸고 있다. 그것이 다시금 배우들에게 큰 도약이 될 것이라고 나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