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손석우 BH엔터테인먼트 대표, “최상의 작품, 찾거나 직접 만들거나”
2023-02-16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대표실에 들어갔더니, 정중앙에 싱크대가 보인다. 손석우 대표가 사람들과 격의 없이 대화할 때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작은 다이닝 바다. 그 옆에는 벽을 바라보고 놓인 책상이 흡사 학생들이 공부하는 독서실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손 대표는 늦은 밤까지 그곳에서 시나리오를 읽는다. 2006년 배우 이병헌과 함께 직원 3명 규모의 BH엔터테인먼트를 차린 그는 현재 약 80명이 함께 일하는 배우 명가 브랜드를 일궈냈다. “매니지먼트사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최적의 시대가 찾아왔고, 서로 결이 맞는 배우와 직원들이 서로 끈끈한 결속력를 더하고 있다는 데 확신을 느낀다”는 손석우 대표의 말처럼, BH엔터테인먼트는 <출장 십오야> 등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특유의 친밀하고 편안한 팀워크를 엿보게 해 업계의 은근한 부러움도 사고 있다.

- 싸이클론엔터테인먼트 소속 당시 다른 매니저를 대신해 현장을 나가 이병헌 배우를 만난 우연을 계기로 쭉 함께하게 됐다. 이병헌 배우가 먼저 알아보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는데, 당신의 어떤 점에 호감을 가졌다고 하던가.

= 2001년 가을이었다. 금융권 출신인 내겐 당연했던 체계가 주먹구구식 엔터 업계에선 전혀 통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문서로 스케줄링해서 프린트하는 일이 몸에 배어 있었으니 당연한 걸 해서 배우들에게 정리해주었을 뿐인데 아마도 당시 이병헌 배우의 눈에는 조금 달리 보였던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웃음)

- 얼마 전엔 박지후 배우의 깜짝 시상으로 2022 에이판 스타 어워즈에서 베스트 매니저상을 받았다. 매니저 커리어에서 특별한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 커리어의 리듬상 정체되어 있거나 내리막에 있는 배우들을 잘 매니징해 전성기로 올릴 때 어느 매니저나 기쁠 것이다. 배우 김민희의 <화차>와 <연애의 온도>, 한지민의 <미쓰백>을 하면서 이 배우들의 커리어에 역점이 생겨난 게 좋은 예다. 한지민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자기가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곤 했다.

- 한해에 BH로 몇편의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어떻게 검토하는가.

= 현재는 시나리오팀을 따로 운영하지는 않고 7명의 팀장과 1명의 제작 프로듀서, 그리고 나까지 9명이 책을 나눠 받아 1차 필터링을 한다. 1년에 평균 500여권 이상 들어오는데 그중 만화 읽듯 정신없이 읽게 되는 책은 1%다. 그런 작품은 시청률이 잘 나오든, 혹은 흥행은 부진해도 평단과 마니아의 찬사를 받든 무엇 하나는 해낸다. 우리 경우엔 2021년에 책이 가장 많이 들어왔는데 640건 정도. 1, 2등이 어떤 작품이었냐면 <작은 아씨들>과 <더 글로리>였다. 명확했다. 그래서 <작은 아씨들>은 어떻게든 우리 배우들을 포진시키고 싶었고(김고은, 박지후, 추자현), <더 글로리>는 전재준 역에 박성훈 배우가 함께했다.

- 제작자로의 진화를 모색 중이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주도적으로 기획한 경우인데.

= 지금 시류에서는 매니지먼트가 제작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제작에 있어 배우 매니지먼트사가 어떤 아이덴티티를 가져가야 할까. 나는 그 근간이 결국 배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쪽이다. 우리가 원하는 책이 늘 시장에 있지는 않다. 추자현 배우도 우리끼리는 ‘힘이 싹 빠졌다’라고 표현하며 연기 내공에 완전히 물이 오른 시기라고 보고 있는데- 이만한 경력에도 계속 진화한다는 게 놀랍지 않나?- 그에 걸맞은 작품을 찾기가 여러모로 쉽지가 않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도 시작은 교수 캐릭터를 유지태 배우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판권 협의가 잘 성사됐고 각색 작가를 물색해 순탄하게 진행됐는데, 솔직히 결과가 아쉽기는 하다. 다만 첫 기획·공동 제작 작품으로 모든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 재난물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바둑영화 <승부>까지. 자사 배우가 출연하고 공동 제작한 두개의 중요한 작품이 올해 공개된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모든 캐릭터를 우리 배우가 해도 좋겠단 욕심이 들 정도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로 뛰어갔는데 변승민 대표가 나를 자제시켰다. (웃음) 결과적으로 이병헌, 박보영, 박지후 세 배우가 합류했고 제작에도 의기투합하게 됐다. 감히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이병헌 배우가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을 노릴 수 있을 거라 본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내부자들> 때와 비슷한 느낌이 온다.

- 2023년 BH 배우들 중 특히 누구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

= <더 글로리> 2부에서 진가를 보여줄 박성훈, 그리고 이희준! <핸섬 가이즈> <살인자ㅇ난감> <지배종> <보고타> <황야>까지 이희준 배우가 아주 코믹한 캐릭터, 엄청난 빌런 등을 오가며 1년 반 사이에 다섯 작품 정도 쏟아낼 텐데 기대해도 좋다. 나를 언제나 완전한 관객으로 만들어주는, 정말이지 희한한 재능의 소유자다.

- 2018년 연말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BH를 인수했다. 카카오라는 거대 우산 아래 들어가면서 어떤 시너지를 얻고 있나.

= 카카오에 윤종빈 감독의 월광과 같은 양질의 제작사가 합류하면서 <승부>의 초안 단계부터 같이 조훈현 감독의 다큐를 찾아보며 논의했다. 신우석 감독(돌고래유괴단)도 눈여겨보는 창작자다. 이병헌 배우가 함께한 <브롤스타즈> 광고 때 처음 만났는데, 나는 그가 앞으로 영화를 한다고 하면 반드시 같이하고 싶다. 뉴진스의 뮤직비디오 역시 고민 없이 박지후 배우를 출연시켰다.

- 글로벌 시장으로의 사업 다각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 위버스와 버블 같은 형태의 팬덤 관리 프로세스를 하이브, SM 등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진영 배우의 5개국 팬미팅 등 현재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BH 주요 배우들에게 들어오는 팬미팅 제안과 모객 단위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런 네트워킹 안에서 다양한 동영상 서비스, 굿즈 유통 등을 병행해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배우 이병헌이 본 손석우 대표

“‘이제부터 함께하게 된 손석우라고 합니다.’ 그가 내게 건넨 첫인사다. 지금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처음 내게 와 인사를 했던 순간부터 어쩌면 난 이 친구와 내 연기 인생을 오래 함께하게 되겠구나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처럼…. 그렇게 현장 매니저를 시작으로 함께한 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다. 공과 사를 막론하고 가족보다도 더 많은 일들을 함께해왔으니 만일 훗날 나의 이야기가 책으로 집필된다면 믿고 맡길 유일한 친구가 아닐까 싶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오랜 시간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데에는 이성과 감성의 밸런스가 서로 조화롭게 갖춰져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더 중요한 것은 변함없는 ‘성실함’과 ‘인간미’라고 생각된다. 어른이 되어가며 선인들의 말이나 속담이 진리라는 생각에 무릎을 치는 일이 더 잦아지지만 가끔 예외가 있기도 하다. 고인물은 썩는다지만 손석우의 고인물은 여전히 맑기만 한 것처럼.”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