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가 더 많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 ‘봄이 온다’ 김일란 총괄 PD
2024-04-16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세월호 참사 이후, 관련한 주요 현장에는 언제나 연분홍치마가 있었다. 성적소수문화 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발족한 인권단체이자 창작집단으로서 김일란 감독, 그리고 연분홍치마가 활동한 지난 10년은 곧 세월호 참사 이후의 10년이기도 하다. 용산 참사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읽어낸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공동정범>, 그리고 <3xFTM>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종로의 기적> 등의 커밍아웃 시리즈를 만든 김일란 감독은 세월호 유가족들 곁에 머물면서 기록과 재현의 힘을 믿어온 동시에 언제나 역부족도 체감해야 했다고 말한다. 김일란 감독에게 왜 직접 세월호 영화를 연출하지는 않았는지 넌지시 물었을 때, 그는 용산 참사에 대한 두편의 영화를 작업한 창작자에게 더이상 또 다른 참사를 소화할 온당한 여력은 없으리라고 되뇌었다. 그러므로 장편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 세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세 가지 안부>, 그리고 장편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 ‘봄이 온다’의 총괄 PD를 맡은 것은 그에게 세월호와 진실로 동행하려는 최선의 노력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기억에의 독려이다. 형식과 시선의 주인이 다른 세개의 프로젝트를 조화롭게 묶어낸 김일란 총괄 프로듀서를 오랜만에 지면에 초대했다.

- 총괄 PD로서 ‘봄이 온다’ 프로젝트가 관객에게 다가가는 경로와 플랫폼에 대한 고민도 컸겠다.

= 매체 환경이 다변화된 만큼 영화제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게 모두의 바람이었다. 기쁜 소식을 전하자면 10주기인 4월16일에 MBC에서 옴니버스 <세 가지 안부> 중 <흔적>과 <드라이브 97>이 방영될 예정이다. 제작 초기부터 방송국의 문을 두드린 <흔적>과 <그레이존>의 한경수 PD 덕분이다. 현 정권에서, KBS가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에 MBC에서 방영된다는 것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OTT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 참사 이후 10년이 흘렀기 때문에 이제야 공개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었을까.

= 아니,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잠수사 분들이 아이들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건져올리는 모습, 진상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찍어놓은 어떤 영상들은 지금도 우리가 볼 수 있는 무엇이 아닌 것 같다. 지성 아버지(문종택)도 <바람의 세월>을 작업할 때 아직은 그런 그림을 포함시킬 수 없겠다고 말했다. ‘봄이 온다’ 프로젝트에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이 쓰인 영화는 단 하나도 없다.

- 연분홍치마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미디어 활동을 계속해왔다. 활동가이자 창작자로서 참사 이후 김일란의 10년은 어떤 시간이었나.

= 어떤 풍경은 여전히 생생하고 아직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도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용산 참사 이후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면서 마치 참사가 또 다른 참사로 덮이는 것 같은, 그래서 그사이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을 배제하기 힘들었다.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가 주로 해온 작업이란 것이 결국 유가족 곁에 있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드는 시점 이후로 소외와 무관심 속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같이 일상을 만들어나가야 할 시점에 그것에 관여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 창작자 개인의 위치를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돌아갈 일상이 없어진 분들을 볼 때의 어려움, 그 가운데 나 또한 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의 곤란한 감정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영화, 합창, 연극, 백서, 전시 등 유가족과 함께 예술 작업을 해본 이들은 모두 비슷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 <세 가지 안부> 중 <드라이브 97>에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에서 이제는 응급구조사가 된 장애진씨가 나온다. 그가 처음 4·16연대 미디어위원회를 찾아가 활동하게 된 이유를 회상할 때 “도저히 그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아울러 참사 이후 기록 현장에 함께한 사람들에게 내재된 이 거부할 수 없는 인력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 내게는 가장 어려운 종류의 질문이다. 먹고사느라 이런 걸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는 게 솔직한 대답이다. 매일 쉬지 않고 어떤 촬영을 했을 뿐이다. 2017년 5월까지는 그냥 달렸다. 돌이켜보았을 때 절대 잊히지 않는 풍경이 있기는 하다. 2014년 5월8일의 일인데, 그날 그냥 우연히 집에 가다가 동료에게 연락을 받고 KBS 앞으로 갔다. KBS 보도국장에 대한 항의로 자식들의 영정사진을 든 유가족 부모들이 시위 중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너무 많다, 정말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사람이. 그날 밤에 청운동 동사무소로 행진하면서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밤새 따라갔고, 며칠 전에 자식을 잃은 부모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새벽에 한 아버님이 가수가 꿈이었던 아이가 불렀던 <거위의 꿈>을 들려줬다. 그것까지 듣고 나니까 내가 뭐든 누구든 일단 뭐라도 하지 않고는 안될 것 같은 상태가 됐다. 그렇게 국민대책회의 미디어팀의 팀장을 하게 되고, 이후 1년간 수없이 집회에 나가 영상을 만드는 일이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위원장 직책까지 이어졌다. 이 작업을 하면서 <공동정범>(2017)도 만들게 됐다.

- 돌이켜보건대 <공동정범>을 작업하는 동안 더욱 직접적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영향력 속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 그러니 <공동정범>은 내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전혀 언급하지는 않지만 참사 이후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갖고서 만든 영화다. 두 참사가 같이 있는 거다. 그러고 나서 2016년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했고 2017년에 촛불을 들었다. 2017년 5월에 세월호 인양까지 보고 나서는 내 능력은 여기까지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는 세월호 참사 관련 시위 및 행사 현장을 직접 촬영하고 만지는 일은 멈췄다. 이 무렵에 또 한 가지 혼자서 작게 다짐한 것이 있는데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연출은 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참사를 파고드는 작업을 다시 하게 된다면 용산 참사에 대해 더 제대로 하는 것이 맞겠다는 입장이다.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가 훨씬 많다.

- 2022년 EBS국제다큐영화제의 국제다큐멘터리 제작 플랫폼(K-DOCS)에서 신작을 피칭해 대상을 받았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

= <에디와 앨리스>는 편집 마무리 단계다. 올해 안에 선보일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2017년을 기점으로 인생에서 작은 단절을 경험했는데, 그것에 대한 나의 응답이 곧 이 영화인 것 같다. 몸의 변화, 노화, 질병, 회복, 임신과 출산을 아우르는 인간의 모든 트랜지션 사이의 유사성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에디와 앨리스>는 장면전환기법으로서의 트랜지션과 MTF 트랜스 여성들의 트랜지션이라는 개념을 교차해서 트랜스젠더들의 경험을 영화적 감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다. 감히 인용하기가 부끄럽지만 아녜스 바르다는 자신의 모든 영화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말했었는데 그러한 표명에 다가가고자 했던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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