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상호작용하는 카메라는 2014년 4월16일 이후의 한국 사회를 담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세월호 10주기인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세월호 참사를 기록해온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작품들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추념전 ‘10년, 연대의 세월’은 4월 한달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안산, 고양 등)에서 진행 중이며 ‘다큐보다’(docu.VoDA)에서 열리고 있는 온라인 추념전의 작품들은 선착순(단 작품별 200~400회로 제한)으로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온라인 추념전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은 매섭고 뜨겁다. 참사 직후 1년간 보여준 정부의 부실 대응을 고발하는 <나쁜나라>(김진열 감독),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제작한 옴니버스 시리즈 <망각과 기억>(김재영 감독 외)과 <망각과 기억2>(박종필 감독 외), 특정 유가족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초현실>(김응수 감독),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 <로그북>(복진옥 감독), 진도인들의 애도 의식을 채집한 <진도>(유동종 감독), 일반 시민의 트라우마를 말하는 <당신의 사월>(주현숙 감독), 세월호 엄마들의 연극 도전기 <장기자랑>(이소현 감독), 단원고 희생자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청소년들이 만든 <기억해, 봄>(최호영(Re;cord))까지 총 9편이다. 이중 <망각과 기억> 1, 2편과 <기억해, 봄>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리고 4월이 가기 전, 추념전 방문은 “우리나라가 안전 사회의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숙고하게 하는”(<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정일건, 태준식, 김재영, 박종필, 손경화, 박정미, 최종호/2016년/180분/전체관람가
7편의 중·단편다큐멘터리를 모은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모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기획, 제작한 작품이다. 참사 초기부터 팽목항, 안산, 서울 등지에서 현장을 기록해온 7명의 감독은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맞춰 공동의 결실을 세상에 내놓았다. 작품이 처음 공개된 제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고 박종필 감독 겸 위원장은 “4·16 참사 관련 쟁점들을 직접 공유할 필요를 느꼈다”며 작품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침몰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동거차도에서 세월호 <인양>(고 박종필 감독)을 감시하는 유가족과 자원활동가의 충혈된 눈은 눈앞의 배를 넘어 보이지 않는 정부를 향해 있다. 2015년 1차 청문회에서 증인들이 늘어놓는 허황한 대답은 유족들이 왜 진실을 <도둑>(김재영 감독) 맞았다고 느끼는지를 통감하게 한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연이어 깔리는 가족들의 간절한 음성 편지는 스크린에 사라지지 않는 눈물 <자국>(정일건 감독)을 남긴다. 유가족, 졸업생, 자원봉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단원고등학교 내 4·16 <교실>(태준식 감독) 존폐 논쟁은 보존 대신 제거라는 손쉬운 대처를 택해왔던 한국 사회의 일면을 드러낸다. 전기원 노동자, 삼성반도체 노동자, 가습기 살균기 피해자의 피해 사례로까지 넓히는 <살인>(박정미 감독)은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당장의 구체적인 노력이 절실함을 알린다. 세월호와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푸른색의 이미지들에서 노란 리본으로 대표되는 노란색의 이미지로 옮겨가는 <블루-옐로우>(손경화 감독)의 물결에는 치유와 회복의 염원이 담겼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최종호 감독)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망각에 저항하겠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서려 있다.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박종필, 김환태, 문성준, 안창규, 김태일/2017년/175분/전체관람가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3주기를 맞이해 <망각과 기억>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했다. 5편의 중편다큐멘터리를 모은 <망각과 기억2: 돌아 봄>은 “3년상 치렀으면 이제 된 거 아니냐며 힐난하는”(고 박종필 감독) 망각의 조짐에 저항하며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참사의 진실과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추모공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유가족은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지만 곳곳에서 보내는 <기억의 손길>(문성준 감독)에 힘을 얻는다. <걸음을 멈추고>(김태일, 주로미 감독) 보게 하는 마임 배우 류성국씨의 야외 추모 공연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 청와대, 정부, 국정원, 국회, 언론 등 이른바 <세월 오적>(김환태 감독)이 일삼는 얕은 거짓은 복잡한 감정을 유발하는 반면 희생자의 시신 수습을 했던 고 김관홍 민간 <잠수사>(고 박종필 감독)의 더 구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과 적극적인 진상규명 활동은 커다란 슬픔을 안긴다. 참사 현장이 있는 동고차도로 향하는 배에 <승선>(안창규 감독)하는 생존자 김성묵씨의 뒷모습은 그의 참사 이후의 삶을 응원하게 한다.
기억해, 봄
최호영(Re;cord)/2023년/23분/전체관람가
“이 사람들의 슬픔이 아직 멈추지 않았는데 우리가 끝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정겸 학생) 2021년 여름, 단원고 희생자들과 같은 나이가 된 우고등학교 2학년 친구 12명은 세월호 참사가 단순히 궁금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보니 세월호에 관한 기억이 어렴풋했다. 2014년 4월16일 대한민국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렇게 커다랗고 슬픈 일이 왜 아직도 해결이 안된 걸까. 그래서 친구들은 안산, 진도, 목포 등을 돌아다니며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다. 졸업한 뒤 다시 카메라 앞에 앉은 친구들은 참사를 마주하며 했던 생각들을 나눈다. <기억해, 봄>에서 “기억하자”는 말은 사회적 재난을 직시하려는 이들의 의지에 의해 점차 또렷해진다. 한번의 여행으로 끝내지 않고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결연한 젊은 얼굴들은 말로만 기억을 강조하던 얼굴을 부끄럽게 한다. 최호영 감독은 “어쩌면 친구들과 영화를 만든다는 설렘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라며 18살 당시를 회상했다.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단원고 희생자가 타고 있었던 배를 직접 보고 유가족이 쐰 팽목항의 바람을 맞으면서 그가 결심한 게 하나 있다. “실망하더라도 냉소 없이, 같이 살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