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태도’, <사마귀> 변영주 감독
2025-01-17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20년 전, 5명의 남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여성 범죄자. 그의 별명은 사마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경찰이 된 그의 아들은 어머니와 동일한 수법을 활용하는 살인범을 잡기 위해 평생 증오해온 어머니와 협력 수사를 시작한다. 정이신(고현정)과 차수열(장동윤). 가족관계의 굴레에 묶인 둘은 그저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지도, 뒤돌아 출발지로 선회하지도 못하는 불협의 이인삼각 달리기를 지속할 뿐이다. 현실적인 사회적 단상과 그로부터 시작되는 슬픔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 동명의 프랑스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사마귀>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 연출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만 해도 6부작이었다. 프랑스 원작 드라마의 포맷을 그대로 적용해 그 안에 결말도 다 정리돼 있었다. 이제 막 <서울의 봄>이 개봉했을 때 이영종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너~무 좋은 거야. (웃음) 굉장히 열린 자세와 태도가 눈에 띄었다. 작가 중심인 드라마 산업에서 작가와 연출자가 러닝메이트로 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세세한 모든 것을 공유하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영종 작가가 딱 그랬다. 대본을 8화로 늘리기 위해 서로 토스하듯 수정을 반복했는데 그 과정도 무척 효율적이었다. 대본 회의를 할 때 제일 나쁜 게 뭐냐면 대본 이야기를 안 하는 거다. “내가 이 두줄 고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줄 아세요?” 이런 푸념만 늘어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면 백발백중 대본이 재미없다.

- 20년 전 정이신은 5명의 남성을 잔혹하게 살인한다. 그런데 5명의 남성은 여성이나 아동을 학대했던 자들이다. 그렇기에 정이신은 누군가에겐 범죄자이지만 누군가에겐 추앙의 대상이 된다.

나는 자력구제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사법 절차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힘을 이용하는 행위. 내가 불쌍해서, 내가 억울하기 때문에, 내가 피해자여서 복수를 해도 된다는 자력구제적 판단은 자칫하면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구조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과 손잡는 방법을 고민해야지 또 다른 가해를 낳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신의 살인을 보며 그가 그럴 만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다. <화차>에서도 그랬다. 경선(김민희)을 바라보며 그로부터 연민을 느낀 적이 없다. 그렇게 냉철하게 접근해야만 관객이 “그래도 저 인물도 나름의 슬픔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연출자가 그 시선을 개입하고 의도하는 순간 작품 방향이 이상해진다. 정이신은 일그러진 사람이다. 다만 자신의 뒤틀린 삶에서 유일하게 한번도 뒤틀린 적 없는 아들. 자기와 너무나 잘 분리된 고마운 아들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으로 공조수사를 하게 된다.

- 정이신과 차수열이 모자 관계다보니 둘 사이의 갈등이 일종의 모성애 문제로 일축돼 보일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이신과 수열의 갈등이 모성애나 가족주의적인 면모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태도에서 출발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현정 배우도 모성애로 단순화되어 비쳐질 것 같은 대사가 있으면 직접 의견을 내 수정했다. 정이신이라는 연쇄살인마가 자신에겐 존재하지 않았던 삶의 유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수열과 어떻게 상호적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집중했다. 그러니 <사마귀>는 관계가 무척 중요한 작품이다. 일부러 수열이를 어른스럽게 보여주려 애썼다. 이 귀엽고 앳된 얼굴을 지닌 청년이 부정하려 애쓰는 것들. 그런 부분을 들여다보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 분열적인 정이신의 이미지를 고현정 배우가 맡았다. <사마귀>를 위해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나.

고현정 배우와의 첫 미팅을 앞두고 며칠 내내 두근거리며 떨렸다. 뭐랄까. 너무나 많은 걸 봐온 배우를 만나는 셈이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있으니 유명한 작품 몇편의 고현정만 봐온 게 아니지 않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엄마의 바다> <작별> 등등 그 무수한 얼굴들. 드디어 현대 여성이 등장했다고 느끼게 해준 주역. 그래서 너무 떨렸다. 혹여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일까봐 두려울 정도였다. 물론 일하는 자리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나와 맞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기도 하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작은 희망 같은 게 자꾸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미팅하던 날 고현정 배우와 눈이 마주친 순간 둘이 함께 활짝 웃는데 그때 ‘됐구나…’ 싶었다. 원래 둘 다 일정이 있어서 잠깐 인사만 하고 헤어지기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밤 10시까지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현정 배우에겐 고마운 마음이 참 크다. 사실 <사마귀>는 예산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주연배우들이 자신의 출연료를 자발적으로 깎아줬다. 그 덕에 좋은 장비도 하나 더 빌릴 수 있었고, 음악 레코딩도 한번 더 할 수 있게 됐지만 무엇보다 단역들이 노동에 대한 합당한 비용을 받을 수 있었다.

- 지난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의 김보라 배우도 함께한다. 이번 작품에선 어떤 기대를 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배우 김보라가 한번도 맡은 적 없는, 발랄함이 없는 역할이다. 그가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해서 제안했다가 보라와 내가 함께 어렵게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 이번 <사마귀>에서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에서 함께했던 이들이 이스터에그로 등장할 예정이다. 그런 작고 사소한 부분도 함께 들여다보는 재미가 클 것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정말 행운 같은 순간들이 많았다.

<사마귀>

사진제공 SBS

변영주 감독이 말하는 관전 포인트 “정이신이 맹렬하게 고군분투하는 장면에는 배우 고현정의 열린 태도가 담겨 있다. ‘이렇게 해볼까요? 별로면 저렇게 해볼까요?’ 한밤중에 비가 내리는 장면이 힘들 법도 한데 정이신의 얼굴을 한 고현정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는 정말 정이신이구나, 이제 이 사람이 될 모든 준비를 마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현정의 다채로운 얼굴을 봐주시길.”

제작 스튜디오S, 메가몬스터, 메리크리스마스 연출 변영주 극본 이영종 출연 고현정, 장동윤, 조성하, 이엘 채널 SBS 공개 하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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