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3 충무로 파워 50 - [2] 11위~20위
2003-05-02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11.

김동호 |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스케줄표는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자리를 잡은 부산영화제가 위상을 드높이면서 그의 발걸음도 분주해지는 것이다. 지난해 15개 영화제를 순회했고 올해도 1년 중 절반 가까이를 한반도 밖에서 지내야 할 형편이다. 특히 올해는 칸영화제 기간 중 미국 영화산업지 <버라이어티>가 주최하는 국제회의 ‘페스티벌 디렉터스’에 베를린, 선댄스영화제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참석하게 된다. 해마다 관심이 높아지는 부산영화제의 이모저모를 꾸리고 세계 곳곳의 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해외를 누비는 것만이 그의 일은 아니다. 김동호 위원장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칸영화제 등을 돌면서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등 ‘외교사절’ 역할까지 자임하고 있다.

★ 지나온 1년 |

7회 부산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특히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처음으로 모두 모였다는 점이 인상에 남는다.

★ 앞으로 1년 |

8회 행사를 꾸려야 한다. 올해는 홍콩 배우들이 많이 참석할 전망이다. 10회 영화제를 대비해 전용관 건설도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영화제나 여러 국제회의 등 새로운 행사들도 쫓아다녀야 할 것 같다.

12.

설경구 | 배우

지난해 23위로 첫 진입하고 올해 12위로 불쑥 올라올 만큼 배우로서 ‘괄목한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정작 본인은 “숫자 갖고 장난치지 마시라”며 뼈있는 한마디를 건넸다. 지난해 <오아시스>로 또 한번 처절하리만큼 캐릭터에 몰입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찬사를 받은 그이지만 지금은 <실미도>로 긴장해 있다. 아니 불만과 반항기로 차 있다고 해야 할까. 버림받은 북파 공작원의 한서린 기운을 벌써부터 몸에 채워넣고 있기에. 고립된 듯한 섬에서 60명이 넘는 연기자들과 동고동락하며 호흡을 맞추는 것도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급격히 늘렸다 뺏다 하는 자기 살에 대한 조련 솜씨가 자꾸 화제의 대상이 되는 것에 손사래를 친다.

★ 지나온 1년 |

<오사이스>와 함께!

★ 앞으로 1년 |

<실미도>와 함께. 그 다음? 아직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다.

13.

정태원 |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NEW

사석에서 ‘파워50’에 들지 못한 서운함을 피력했던 일화가 강우석 감독의 칼럼을 통해 알려지는 난처한 경험을 했던 정태원 대표가 올해 드디어 13위라는 높은 순위로 첫 진입했다. 지난 한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사의 대표인 만큼, 정태원 사장의 이번 상위 진입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조폭코미디에 ‘가족애’를 접합시킨 <가문의 영광>은 전국 520만명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고,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도 블록버스터다운 거대한 관객몰이에 성공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정태원 사장은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설립, 운영하기로 하면서, 영화제작과 외화 수입은 물론 매니지먼트 사업까지 지휘하는 등 활동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 지나온 1년 |

<가문의 영광>을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소림축구>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등 수입 작품도 많은 관객이 들었다. 영화를 제작하고 수입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영화와 외화가 두루 흥행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한해였다.

★ 앞으로 1년 |

영화제작에 더 힘을 쏟을 생각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나비> 이외에도, 연쇄살인사건을 그린 스릴러 <페이스>, 캐릭터코미디 <건망증 여왕>, 김영준 감독의 무협물 <무영검>, 그리고 <가문의 영광2>를 차례대로 제작할 예정이다. <반지의 제왕3> <킬 빌> 등 외화들도 올해 안에 개봉한다.

14.

김동주 | 쇼이스트 대표

김동주 대표는 지난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코리아픽처스 대표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친구>를 투자·배급한 그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들이 흥행에서 줄줄이 실패하면서 스스로 코리아픽처스를 나오는 상황에 도달했다. 한동안 잠적했던 그는 올해 3월 새로운 투자, 배급사 쇼이스트를 설립, 곽경택, 박찬욱, 허진호, 박기형 등 지명도 높은 감독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 전처럼 든든한 펀드 하나 없이 시작한 투자사가 이런 감독들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경험과 태도에 대한 신뢰가 컸을 것이다.

★ 지나온 1년 |

“직원들이 내 가족인데 다시는 직원들과 헤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지난 1년에 대한 소감. 올해 3월에 쇼이스트를 설립한 뒤 투자자를 확보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크랭크인 날짜를 잡아놓고도 투자자를 설득하러 다니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품마다 투자재원을 확보, 한숨을 돌린 상황.

★ 앞으로 1년 |

<똥개>는 50% 이상 촬영이 진행됐고 <아카시아>는 4월25일, <올드 보이>는 5월12일 첫 촬영에 들어간다. 6월 이후에 외화 배급작도 확정할 예정.

15.

김상진 | 감독, 시네마서비스 제작본부장

<광복절특사>로 3연타석 흥행기록을 작성하고, 시네마서비스의 ‘수석코치’ 자리를 꿰차면서 순위가 대폭 상승했다. ‘인 하우스’ 프로덕션 시스템을 다시 가동키로 한, 시네마서비스가 앞으로 제작할 작품의 전체 공정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현재 임무. 한때 제작사 ‘감독의 집’을 차렸지만, “경영에는 영 젬병이었던” 그는 ‘큰 집’으로 복귀한 다음 <불어라 봄바람> <메모리> 등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짜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 내부자는 “오버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나친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틈틈이 현장으로 뛰어들 준비도 하고 있다. 이미 차기 연출작은 점찍어놓은 상황.

★ 지나온 1년 |

<광복절특사>로 1등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 앞으로 1년 |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새로 쓰기 전까지 감독은 계속할 거다.

16.

김미희 | 좋은영화 대표

“통장에 한푼도 없어.” <선생 김봉두> 개봉을 앞두고 김미희 대표는 사석에서 “위기에 처했다”고 여러 번 털어놨다. 그게 정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 <밀애> 등의 흥행성적이 신통치 않게 되면서 차기작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승부욕 강하고, 순발력 뛰어난’ 흥행사라는 타이틀도 다소 상처를 입은 탓에 지난해보다 8계단 순위가 하락했다. 하지만 <선생 김봉두>에 관객이 모아준 엄청난 ‘촌지’ 덕에 빠른 속도로 명성을 회복하는 중이다. 촬영에 들어간 류승완 감독의 액션 <아라한-장풍 대작전>과 김영호 감독의 사극 스릴러 <혈의 누>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 지나온 1년 |

돈을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다.

★ 앞으로 1년 |

대중영화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17.

정훈탁 | 싸이더스 HQ 대표

무려 열아홉 계단이나 상승한 싸이더스HQ의 수장 정훈탁 대표의 진정한 파워는 톱스타 수십명의 존재가 아니라, 영화를 산업으로 이해하고 이 속에서 자신과 배우들의 가치를 극대화하려 노력한다는 데 있다. 다양한 방식의 공동제작이나 자사 배우에 맞춘 시나리오 공모는 그런 시도들이다. 일부에선 ‘배우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키운다’고 비난받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충무로의 ‘상생’을 크게 저해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제작이라는 야심을 현실화할 올해는 그의 역량이 본격적으로 심판대에 오르는 시점이 될 것이다.

★ 지나온 1년 |

영화산업 속에서 매니지먼트의 위상에 관해 많이 배웠다. 산업 속에서 어떻게 융화되고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익히는 과정에서 혼도 많이 나고 궤도도 수정했다.

★ 앞으로 1년 |

이젠 배우라는 원석만을 파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여러 방식으로 제작에 기여하는 등, 산업 안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작정이다. 시장의 흐름을 깨지 않고 배우와 제작쪽이 공생할 수 있는 부분을 머리 맞대고 고민할 때다.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로부터의 독립작업도 마무리짓고, 한국영화의 시장을 넓힐 수 있는 범아시아 프로젝트도 성사시킬 계획이다.

18.

문성근 | 배우

“알고보면 늘 이 사람 얘기가 맞다”는 한 추천인의 촌평처럼, 영화계의 설득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 영화계 직책 다 버리고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위권 내에 랭크됐다. 그의 파워가 “정치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형성된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귀찮다, 힘들다”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천성과 원칙에 따라 끊임없이 행동반경을 넓혀가는 모습을 이유로 드는 이들이 다수다. 얼마 전 개봉한 <질투는 나의 힘>에선 이중적인 성격의 인물 한윤식을 능글맞게 소화해 “배우 문성근”이라는 새삼스런 사실을 일깨우기도 했다. 한 방송사의 교양 프로그램 진행 여부는 조만간 결정될 듯하다고.

★ 지나온 1년 |

‘노무현 지지’는 정치하겠다는 게 아니라 유권자로서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한 거다. <질투는 나의 힘> 보고 요즘 영화 재밌게 봤다고 이야기해주는 분들 때문에 힘을 얻는다. 와이드 릴리즈보다는 좀더 작은 규모로 길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 앞으로 1년 |

작품이야 아무거나 덥석 한다고 할 순 없고 좋은 걸 만나야지. 사실, 뭘 ‘당장 해야지’ 하는 욕심이나 조급함은 별로 없다.

19.

김승범 |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

<집으로…>에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까지, 튜브엔터테인먼트 김승범 대표의 2002년은 극적 반전의 연속이었다. 침몰하는 듯했던 그가 최근 또 하나의 반전을 일궈냈다. 100억원가량의 자본을 확보해 다시금 배급업에 뛰어든 것. 올해 튜브가 배급할 라인업은 최대 10편에 이른다. 비교적 적은 순위 하락은 그의 빠른 회복에 대한 격려와 배급수완에 대한 재신임으로 보인다. 그는 “작품 투자수익보다는 배급 수수료를 주소득원으로 하는 안정적인 체제를 갖추겠다”며 사업구상을 밝힌다.

★ 지나온 1년 |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한마디로 최악의 해였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 앞으로 1년 |

굉장히 큰 경험을 했고 얻은 것도 많다. 지금은 심정적으로 굉장히 좋고 희망적인 상황이다. 일단 6월5일 개봉하는 <튜브>를 시작으로 <툼레이더> <귀여워> <내츄럴시티> <남남북녀> <타임라인> <…ing>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등에다 <스왈로 테일/버터플라이> <뱀파이어 헌터D> 같은 일본영화를 배급할 계획이다.

20.

임권택 | 감독

<취화선>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는 등 최고의 한해를 누렸던 임권택 감독은 현재 신작을 준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칸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영화제로부터 초청받았고, 국내의 각계에서 주는 다종다양한 상을 받느라 가쁜숨을 몰아쉬었던 임 감독은 올해 초부터 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1960년대, 사나이들의 이야기’ 정도 외엔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신작을 위해 그는 헌팅과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담아낼지 조바심내며 궁금해하는 것은 비단 한국 영화계만이 아닐 것이다.

★ 지나온 1년 |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해외영화제 등으로 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 앞으로 1년 |

올해 초부터 새 영화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내용에 관해선 아직 말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동안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이며 전국 곳곳을 다니며 헌팅을 했고, 시나리오도 동시에 작업 중이다. 올해 중반에는 크랭크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송강호·설경구 수직상승

배우들의 부침

한국 영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배우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들의 영화가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탓인지 50위 안에 든 배우의 숫자는 지난해 9명에서 5명으로 줄었지만, 송강호가 톱10에 진입하는 등 스타들의 실질적인 파워는 지난해와 엇비슷했다. 지난해 19위에서 10위로 상승한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연기력과 흥행성을 재입증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공의 적> 이후 <오아시스> <광복절특사>에 출연하며 품이 큰 배우로 위치를 굳힌 설경구는 지난해 23위로 처음 순위에 든 데 이어 올해는 12위로 수직상승했다. 여기엔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 대한 기대감 또한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장 놀라운 배우는 42위의 전지현이다. 지난 한해 출연작이 없었으며 신작 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그녀의 순위가 1계단 오른 것은 충무로 제작자들의 ‘짝사랑’이 반영된 탓으로 보인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으로 연기의 장을 넓혔고,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 출연 중인 장동건(44위)이나 최근 TV드라마 <올인>으로 흥행력을 과시하며 처음 순위에 진입한 이병헌(48위)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배우들의 파워는 매니지먼트업체 싸이더스HQ의 정훈탁 대표가 지난해보다 19계단 오른 17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나 정영범 스타제이 대표가 50위권 가까이에 근접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파워50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97년 이래 한번도 빠진 적이 없던 한석규와 안성기는 처음으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