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미리보는 겨울영화 68편 올가이드 [1] - 12월 ①
2003-11-28
글 : 권은주
<반지의 제왕3: 왕의 귀환> <태극기 휘날리며> 등 겨울영화 68편 올가이드

겨울 스크린으로 귀환하는 것은, 곤도르의 왕 아라곤만이 아니다. 한국 감독으로는 <실미도>의 강우석,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가 돌아오고, 팀 버튼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티외 카소비츠, 오우삼이 신작을 선보인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콤비 마이크 뉴웰과 리처드 커티스는 <모나리자 스마일>과 <러브 액츄얼리>의 감독으로 근황을 알리고, 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아들이 완성한 유작 <배틀로얄2>를 통해 늘 뜨거운 생존의 몸부림을 담았던 영화세계를 상기시킨다. 장르로 갈래를 나누자면 2003∼2004 겨울 시즌의 한국영화는 코미디가 양적으로 압도하는 가운데 한국 현대사를 소재로 한 야심작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위세를 겨루는 형국이다. 외화에서는 가을의 <킬 빌>에 이어 일본의 무사도가 유행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톰 크루즈의 <라스트 사무라이>를 필두로 <바람의 검, 신선조> <사무라이>가 개봉한다. 12월 초부터 2004년 2월 말까지 개봉하는 영화는 여느 해보다 이른 설날 영화를 포함해 모두 68편(한국영화 17편 외국영화 51편). <러브 액츄얼리>식으로 말하자면, 올 겨울에도 세상은 영화로 가득하다.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영화의 제목 ‘러브 액츄얼리’는 “사랑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는 표현의 줄임말이다. 워킹 타이틀의 첫 히트작인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주제가가 <사랑은 어디에나>(Love is All Around) 였음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예감할 수 있겠지만, <러브 액츄얼리>는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한 워킹 타이틀표 로맨틱코미디의 자축연 같은 사랑영화다. 이 크리스마스용 핑크빛 선물 상자 안에는 무려 10개의 러브스토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새로 다우닝가 10번지에 부임한 영국 총리는 다과를 담당하는 관저 직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아내를 병으로 여읜 남자는 아내가 남긴 의붓아들의 첫사랑을 응원한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당한 작가는 상처를 달래러 간 마르세유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파출부 아가씨와 마음이 통한다. 신랑 단짝친구의 호의를 얻어보려고 애쓰던 새 신부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한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얽혀 있는 이 남녀들이 가는 모든 장소에는 캐럴 송으로 컴백한 주책바가지 로커 빌리의 <크리스마스는 어디에나>가 흐른다. 물론 막판에는 망나니 빌리의 쑥스러운 사랑 이야기도 이 복잡한 태피스트리에 슬쩍 끼어든다. 아름다운 결혼식, 쿨한 장례식, 휴 그랜트의 주름, 중대한 대목에서 물의를 빚는 미스터 빈까지, 워킹 타이틀 코미디에서 당신이 기대할 만한 사탕과 초콜릿이 빠짐없이 서빙된다. 빌리 밥 손튼이 미국 대통령으로 출연해 전임자 블레어와 달리 꼿꼿한 휴 그랜트 총리에게 봉변을 당한다.

요컨대 <네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노팅힐> <어바웃 어 보이>의 홀리데이 샘플러.

미스틱 리버 Mistic River

지미, 숀, 데이브, 영원한 우정을 다짐한 보스톤의 삼총사. 그러나 괴한에게 유괴당한 데이브가 성적 학대를 받고 풀려난 뒤, 그들은 불편하고 소원해져서 다시 만나지 않는다. 25년 뒤 이들은 예기치 않은 사건을 계기로 상봉한다. 지미(숀 펜)의 딸이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이 사건의 수사를 숀(케빈 베이컨)이 맡는데, 유력한 용의자로 데이브(팀 로빈스)가 지목된 것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비극적인 사건을 마주하며, 이들은 서로를 묶어 놓은 인연의 끈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아직까지도 대중에겐 감독보다 배우로 더 친숙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 친구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범죄라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 주변인들의 운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더욱이 그것이 아동에게 가해진 범죄 행위라면, 그 파장은 가늠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게 과거는 ‘인과관계’를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로 살아 숨쉬고 있다는 이야기.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미스틱 리버>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진중한 연출과 공인된 연기파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드라마. 갈수록 무르익는 노장 이스트우드의 연출력과 숀 펜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과소평가된 ‘사건’이 올해 칸영화제 최대 이변으로 꼽히기도 했다.

요컨대 ‘과거는 오래 지속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세 친구 이야기.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The Lord of Rings: The Return of the King

관객에겐 3년째, 제작진에겐 7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절대반지의 여정이 올 겨울 드디어 막을 내린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통해 할리우드의 특급 감독으로 부상한 피터 잭슨은 애초 3부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절대반지가 파괴되고, 사우론이 패퇴하고, 아라곤이 왕위에 오르는 등의 희망적인 결론을 향해가지만, 그 과정에서 프로도 등은 이기적 욕망과 대의명분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두운 심연을 헤매게 되는데, 그는 이렇듯 화려하고도 비장한 마지막 장의 이중적인 톤을 좋아한다고 했고, 그것을 살려내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공개된 3부의 예고편 카피가 “고통없는 시련은 없고, 희생없는 자유는 없다”인 것은 그런 이유. 특히 프로도와 샘, 그리고 골룸의 애증관계가 밀도 있게 다뤄진다고 전해진다. 2부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거미 괴물 셸롭의 위용, 헬름 협곡 전투의 20배에 달한다는 펠렌노르 전투의 스펙터클이 3부의 주요한 볼거리로 예고되고 있다. <반지의 제왕>의 1부 <반지원정대>와 2부 <두개의 탑>은 전세계적으로 18억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보수적인 아카데미로부터도 6개의 트로피를 따낸 바 있다. 수상 내역이 기술부문에 국한된 것을 아쉬워한 팬들은 내년에야말로 3부작을 마무리한 피터 잭슨의 공을 치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주요 부문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요컨대 사상 최대의 전쟁영화, 그리고 어두운 성장 드라마로 귀결될 반지의 운명.

실미도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살인기계가 되는 훈련을 받았던 실미도 특수부대의 실화를 제작비 100억원이 투자된 영화로 재현했다. 684부대라고 불렸던 실미도 특수부대는 1968년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 특수부대 31명이 박정희 암살을 목적으로 남파된 사건에 맞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북파계획이 없어지면서 처치 곤란한 존재가 된다. 1971년 그들은 실미도를 지키던 군인들을 사살하고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로 가다가 대방동에서 대부분 사살되는데 영화는 그들의 비극을 선이 굵은 드라마로 재구성하고 있다. 설경구는 여기서 뒷골목을 전전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남자 인찬으로 등장한다.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 때문에 30여년간 연좌제에 묶여 있던 인찬은 빨갱이에 대한 증오심으로 특수부대의 임무를 철저히 따른다. 인찬을 실미도로 끌어들이는 특수부대 교육대장은 안성기가 맡았다. 그는 오합지졸이었던 실미도 특수부대를 최강의 정예요원으로 키워내지만 끝내 국가에게 배반당하는 군인이 되고 만다. <실미도>의 등장인물은 한마디로 시대의 희생자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명령에 충실했고 애국심이 투철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치유할 수 없는 역사의 상처로 남는다. 영화는 그 참혹한 배반의 계절에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려내고 있다. 그간 적은 예산으로 빨리 찍는다고 소문이 났던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를 순제작비 100억원이 투자되는 대작으로 그려냈는데 실미도 훈련장, 대방동 거리 등 세트제작에만 3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북으로 침투한 부대원들이 중도에 작전이 취소되어 돌아오는 장면은 이탈리아 남쪽의 섬나라 몰타에서 촬영했으며, 겨울장면을 찍기 위해 전 스탭이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요컨대 국가와 역사에 배신당한 자들의 처절한 비극.

동해물과 백두산이

‘광복절 특사’는 약과다. 감옥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 두 남자는 원하던 자유를 잠시나마 맛본 것 아닌가. 그러나 여기 두 청년이 처한 사정을 들어보라. 딱하기 그지없다. 그러니까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민군 해군 제13전대가 자리한 매봉산 기지에 있었다. 말수 없고 매사에 원리원칙을 따지는 북한 장교 최백두(정준호)와 수다 떨다 지치면 제대일 헤아리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병사 림동해(공형진)는 문제의 그날 밤, 바닷가에서 낚싯대를 걸쳐두고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기억은 딱, 거기까지다. 이튿날 그들 앞에는 피서철에 접어든 남한의 동해안이 펼쳐져 있다. 입 열면 옌볜총각이오, 위에서 내려왔다 자백하면 경찰들까지 굽신대니 기가 찰 일이다. 만취 끝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두 사람의 남한 탈출 작전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오버 더 레인보우>로 충무로에 상큼하게 첫발을 내딛은 안진우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요컨대 우리 제발 월북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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