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마이클 무어와 <화씨 9/11> [5]
2004-07-0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작가로서의 마이클 무어

전투적 좌파 영웅 혹은 신랄한 코미디언

<볼링 포 콜럼보인><로저와 나>(위부터)

2002년 마이클 무어를 인터뷰한 <가디언>은 그가 미국 코미디언이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설명했다. 아마도 이면에 다른 뜻을 담고 있을 그 문장과 달리 무어는 한번도 코미디언을 직업으로 삼은 적이 없지만, 때로 코미디언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는 카메라 앞에 서든 뒤에 숨든 목소리를 높이고 냉소적인 유머를 쏟아놓는다. 첫 번째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에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화씨 9/11>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들은 신랄하고 재미있고 극적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이 전세계적으로 4천만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 데는 정치성과 함께 유머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몰아붙이는 그의 유머는 수많은 적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의 전투적인 좌파 영웅”이라는 찬사와 함께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이 있다”는 비난을 받는 감독. 그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묻어두려 했던 문제들을 논란거리로 끄집어냈고, 그 자신 또한 논란이 되어왔다.

무어는 1954년 미국 미시간주의 소도시 플린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전형적인 중부 미국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의 성장기는 그렇게 전형적이지 않았다. 무어는 감독보다는 기자나 작가의 자질을 보인 소년이었다. 학교 신문을 발행하다가 압수당하고, 슬라이드를 만들어 대기업이 초래한 환경오염을 비판하기도 했던 무어는, 대학을 그만둔 뒤에 <플린트 보이스>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진보적인 이 잡지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미시간 보이스>로 발전했다. 그 덕분에 샌프란시스코의 정치잡지 <마더 존스>에 스카우트된 무어는 경영진과 정치적 견해 차이로 다투다가 5개월 만에 퇴직금을 받아들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고향은 황폐했다. 플린트시는 제너럴 모터스사의 자동차 공장이 경제를 지탱하는 도시였다. 1980년대 긴축경영에 들어간 제너럴 모터스는 플린트에 있던 공장을 폐쇄했고 시민 3만여명이 실직자가 됐다. 무어는 토끼껍질이나 벗기고 있는 고향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제너럴 모터스 사장 로저 스미스를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첫 영화 <로저와 나>는 그렇게 시작됐지만, 로저는 끝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만 700만달러 가까운 수입을 올린 <로저와 나>는 무어를 스타로 만들었다. 이후 그는 TV 매거진 형식을 취한 시사프로그램 〈TV 네이션>을 제작했고, 군수산업과 결탁한 미국 정부가 냉전을 유지하기 위해 캐나다를 적국으로 선포한다는 극영화 <캐나다 베이컨>을 연출했다. 무어는 이 영화가 호평받지 못한 이유는 보수적인 캘리포니아 지역을 상대로 시사회를 열었기 때문이라며 분개했지만, 여기엔 의문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무어는 TV와 영화 외에 작가로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영화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그의 책들도 역시 유머와 풍자가 빛을 발해 베스트셀러로 올라섰다. 9·11 테러 때문에 출판이 뒤로 미루어졌던 <멍청한 백인들>은 40주 가까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던 저서. 무어는 97년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제3세계 착취를 비판하는 저서 <다운사이즈 디스>의 홍보여행에 직접 나이키 본사를 찾아가는 등의 이벤트를 결합한 개성있는 다큐멘터리 <빅 원>을 찍기도 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에 가까운 입담을 과시하면서 신랄하고도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무어를 비판하는 까닭은 그처럼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격과 함께 정치적 견해와 다른 실생활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은 7달러를 내고 내 영화를 보러온다. 내가 그렇게 번 돈으로 대형요트 따위를 살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던 무어는 맨해튼 부촌인 어퍼 웨스트 사이드 지역에 100만달러가 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그의 딸은 사립학교에 다니고, 그의 작가들은 작가조합에 가입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무어가 환영받는 유럽에서조차 비판적인 시각은 존재한다. 2002년 칸영화제 기자회견 도중 한 캐나다 기자는 모든 캐나다인이 문을 열어놓고 사는 건 아니라고 <볼링 포 콜럼바인>의 한 장면에 의문을 표했다. 무어는 그 질문에 캐나다인들은 문화적으로 미국과는 다른 DNA를 가진 국민들이라고 답했다. 몇몇 영국 언론은 그런 무어가 지나치게 외국을 선망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어는 지금 미국 보건시스템의 허점을 짚는 다큐멘터리 <식코>를 준비하고 있다. 칸영화제에서 메이저 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말한 그는 얼마 전 그건 농담이었다고 자기가 뱉은 말을 회수했다. 그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무어가 찍은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재미있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건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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