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PiFan 2004 - 네 안의 숨겨진 환상을 찾아줄게 [5] - 단편들
2004-07-10
글 : 오정연
부천에서 만날 단편들

짧지만 번뜩이는, 나를 찾아줘

젊은 감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짧지만 임팩트가 있는 단편영화들은 ‘판타스틱’영화제에 가장 어울리는 부문인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인 판타스틱영화라고 볼 수 있는 SF나 호러 같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올해 부천영화제의 단편들은 장르와 섹션을 불문하고 어느 구석엔가 빛나는 유머를 간직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부천 초이스(단편)

<전쟁포로><좁아!><당근파이 음악회>(위부터)

올해 미쟝센영화제에서도 소개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핑거프린트>(Fingerprint/ 조규옥/ 한국/ 21분20초/ 2004년)는 성장의 공포를 호러영화 속에서 표현해낸 수작이다. 수많은 복사물들을 만들어내는 ‘복사실’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일들은 견고한 비유로 배치되어 관객에게 성장의 의미를 묻는다. 후세인의 거처를 묻는 두 미군 병사와 이라크인 포로 사이에서 오가던 대화가 허무하지만 따뜻한 반전으로 끝맺는 <전쟁포로>(P.O.W/ 시바타 다이스케/ 일본/ 15분38초/ 2003년)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조롱과 함께 대중문화 자체에 대한 날선 비판을 숨기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무의식적이고 사소한 선택이 각각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간결하게 표현한 <지갑>(The Wallet/ 뱅상 비에르와에르/ 프랑스, 벨기에/ 10분/ 2003년) 역시, TV 앞에서 결국은 똑같은 결말로 귀결되는 현대인의 상황을 꼬집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판타스틱 단편

<좁아!>(Shortage of Space/ 게이르 호프랜드/ 노르웨이/ 9분30초/ 2003년)는 제목 그대로의 의미와 느낌을 짧은 러닝타임과 절제된 대사로 표현한 영화다. 중년 부부의 기묘한 욕망과 예송논쟁의 한가운데에 선 두 선비의 동성애를 그린 <하녀 길들이기>(The Bitch/ 휴고 마자/ 칠레/ 17분/ 2003년)와 <순흔>(A Crimson Mark/ 박현진/ 한국/ 13분15초/ 2004년)은 사적인 욕망을 사회와 대비시켜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들. 자유로운 상상력을 뽐내는 데는 역시 애니메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액션, 호러, 판타지 등 각종 장르를 클레이애니메이션 안에서 완벽하게 소화한 (Ward 13/ 피터 콘웰/호주/ 14분50초/ 2003년)은 놓칠 수 없는 올해의 애니메이션이며, <나의 애완동물>(To Have and to Hold/ 에밀리 만텔/ 영국/ 4분/ 2003년), <원숭이의 해>(The Year of the Monkey/ 울로 피코프/ 에스토니아/ 11분51초/ 2003년)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빛나는 풍자와 해학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선적 화목을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와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전달한 <푸콘 패밀리>(The Fuccons/ 이시바시 요시마사/ 일본/ 7분35초/ 2003년)는 판타스틱영화제에 어울리는 독특함이 돋보인다. 단편치고는 다소 긴 러닝타임이지만 ‘자살을 시도하는 두 남녀의 만남’이라는 전제를 예상치 못한 상황까지 뚝심있게 밀어붙인 <갈증>(Thirsty/ 이경식/ 한국/ 29분/ 2004년)은 의외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패밀리 섹션

가족 관객을 겨냥한 섹션인 만큼 애니메이션이 강세이며 가족애를 강조하는 영화들이 눈에 띈다. <체리 따먹기>(The Beezes-The Cherries/ 그레가 마스트낙/ 슬로베니아/ 5분/ 2003년), <눈사람, 내 친구>(Fellows/ 세실리아 마레이로스-마렝/ 프랑스, 벨기에/ 8분30초/ 2003년) 등은 간결하지만 훈훈한 내용을 효과적인 사운드디자인과 애니메이션다운 발랄함으로 전달한다. 말도 안 되는 가사의 오페라풍 노래들과 인간을 넘어 동물들에게까지 미치는 따스한 시선이 웃음을 머금게 하는 <당근파이 음악회>(Concert for a Carrot Pie/ 헤이키 에르니츠, 야노 폴드마/ 에스토니아/ 11분/ 2002년), ‘사랑은 서로 닮아가는 것’임을 유머러스하지만 눈물겨운 결말로 보여주는 실사영화 <우리 가족의 걱정은>(The Most of My Worries/ 카린느 타르디유/ 프랑스/ 9분43초/ 2003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