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PiFan 2004 - 네 안의 숨겨진 환상을 찾아줄게 [7] - 추천 드라마(2)
2004-07-10
글 : 박혜명

<베른의 기적>
The Miracle of Bern l 쇤케 보르트만 l 독일 l 118분 l 2003년 l 패밀리 섹션

로카르노영화제 관객상과 바바리안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1954년 7월4일 ‘베른의 기적’으로 불렸던 베른월드컵에서의 실제 우승 과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가족드라마이자 한 소년의 성장드라마이다. 서독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축구에 대한 소년의 열정과 전쟁 이후 귀환한 아버지와 가족들간의 갈등이 독일 축구팀의 극적인 우승 과정과 함께 펼쳐진다. 독일 축구팀이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은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맞물리면서 공동체의 평화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환경, 엄격한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없는 소년의 꿈을 다룬다는 점에서 독일판 <빌리 엘리어트>라고 할 만하다.

<별볼일 없는 남자들>
Little Men l 나리만 투레바예프 l 카자흐스탄, 프랑스 l 85분 l 2003년 l 부천 초이스(장편)

벡과 맥스는 룸메이트이며 직장 동료다. 길거리에서 행인을 붙잡고 손전등, 열쇠고리 같은 잡화를 파는 세일즈맨인 두 사람의 생활은 아주 가까운가 하면, 상대의 가족관계에 무지할 정도로 무심하기도 하다. 소심한 벡이 물건 파는 데에 서툴고 여자문제에 숙맥인 반면, 늘 콧노래를 부를 것 같은 인간형인 맥스는 고객을 잡는 데에도 여자를 유혹하는 데에도 능란하다. 세일즈는 결국 매력(charm)이며, 매력은 결국 정복욕, 남성성과 관계있다고 주장하는 맥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섭리를 꿰고 있는 양 자신만만하다. 아름다운 신입사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가 실연당한 벡은 고독한 패배감을 맛보지만, 서서히 맥스에게도 감추고 싶은 사연과 소망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할머니가 있다는 독일을 동경하던 맥스가 “독일은 지옥에나 가라고 해. 호주가 좋아!”라고 외치며 떠나는 결말의 정서가 우리에게도 공감을 자아낸다. 서울의 과거처럼 친근하면서도 다양한 인종의 어울림이 생경한 카자흐스탄의 도시 공간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재미가 있다.

<정육점의 비밀>
The Green Butchers l 앤더스 토마스 옌센 l 덴마크 l 95분 l 2003년 l 부천 초이스(장편)

스벤트와 비야른은 오랜 숙원 끝에 정육점을 개업하지만 장사가 되지 않아 고심 중이다. 어느 날 냉동실에 들어갔던 전기 수리공이 동사한 채로 발견되고, 이 처치 곤란한 시체를 ‘일반’ 고기로 속여 팔면서, 정육점은 인육에 맛을 들인 동네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사람 고기를 파는 정육점 이야기는 <델리카트슨>을 통해 이미 익숙한 것이긴 하지만, <정육점의 비밀>은 ‘정육점 남자들’의 사연을 따라가며 얼마간의 리얼리티와 온기를 전한다. 못난 외모 때문에 학대와 차별을 받아온 스벤트의 비애, 동물(고기)에 집착하는 쌍둥이 동생에 대한 비야른의 애증 등이 북구 특유의 ‘썰렁한’ 유머와 함께 소개된다.

<진실게임: 6층의 숨은 방>
Truth or Dare: 6th Floor Rear Flat l 바버라 웡 l 홍콩 l 103분 l 2003년 l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진실을 말하거나 아님 벌칙을 받아야 하는 게임. 6층에 함께 사는 여섯명의 남녀 친구들은 게임 삼매경에 빠져 소란을 피우지만,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까지 게임에 끌어들이는 친화력을 발휘한다. 별 목표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농담 따먹기 같은 일상을 보내던 그들은 ‘1년 안에 대담하고 도전적인 일을 이루지 못하면, 옆집 할머니의 똥을 먹어야 한다’는 계약을 하게 된다. 장난으로 한 이 약속은 그뒤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인물 구성은 <프렌즈>, 그들의 딜레마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닮은 이 영화는 너무 ‘계몽적’이고 ‘낙관적’인 것이 흠이지만, 뜻밖의 상황에서 등장하는 <영웅> 패러디나 스탭들에게 ‘젊음’에 대한 단상을 청해듣는 엔딩 크레딧의 아이디어가 반짝댄다.

<가킨초 록>
Brat Rock l 마에다 데쓰 l 일본 l 90분 l 2003년 l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일본영화는 청춘의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이와이 순지 등 국내에 잘 알려진 감독작뿐 아니라 청춘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작품들이 고른 질적 수준을 보이는 것. <가킨초 록>은 마치 한편의 만화처럼 혹은 한편의 꿈처럼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네 친구 코우메이, 팅크, 겐나이 그리고 세미마루는 가킨초 록이라는 4인조 인디 록밴드를 결성한다. 낮에는 음악 연습을 하고 밤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목표는 데뷔앨범을 내는 것. 청중은 그러나 고작해야 동네 사람들 몇명 정도다. 빚으로 밴드의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한 인디 밴드의 눈물어린 사연을 담은 이 영화는 그러나 전혀 슬프지 않다. 오히려 코미디에 많은 부분 의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흠모했던 여학생에 관한 사연, 그리고 밴드 성원들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이어진다. 수오 마사유키 등 감독의 조연출로 활동했던 마에다 데쓰 감독은 <스윙맨> 등의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이성욱 lewook@hani.co.kr
김혜리 vermeer@hani.co.kr
박은영 cinepark@hani.co.kr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남다은/ 영화평론가 namoo197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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