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그 부트게라이트 특별전나의 사랑하는 시체들을 소개할께
<네그로맨틱><슈람><시체애호의 예술>(위부터)
부천영화제의 카탈로그에서 요르그 부트게라이트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만한 규모의 영화제에서 부트게라이트의 작품을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관람한다는 것은 드문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은 시체애호증, 신체 훼손, 자해와 살인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고 여전히 정상적인 경로로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국가들은 한정되어 있다. 그의 1987년 장편 데뷔작 <네크로맨틱>(Nekromantik/ 독일/ 75분/1987년)과 1991년에 제작된 속편 <네크로맨틱2>(Nekromantik2/ 독일/ 104분/1991년)는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증)에 대한 영화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네크로파일(시체애호자)의 사랑은 어떤 형태일까’라는 것. 이 두편의 도발적인 작업물은 썩어가는 시체와 섹스하는 커플, 산 자의 목을 쳐내며 시간하는 여성 등 구역질나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고, 그런 이미지들을 부트게라이트는 여과없이 관객에게 던져준다. 게다가 그는 이 영화들이 일종의 로맨스라고 전하고 싶어한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꿈속을 거닌다. 얼굴이 반쯤 썩어버린 그에게 천사는 시체의 일부분을 던져주고, 느물느물한 장기를 들고 들판을 행복하게 뛰어다니는 그를 카메라는 소프트 포커스로 담아낸다. 게다가 시간장면들에서는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가 깔린다.
주목할 만한 중편인 <슈람>(Shramm/ 독일/ 75분/ 1993년)은 좀 기괴한 성적취미를 지닌 연쇄살인자의 이야기. 자신의 성기에 못을 박아넣는 등 아연할 이미지는 여전하다. 기본적으로 <네크로맨틱>이나 <슈람>은 한 (‘호러’가 아닌) ‘고어’ 영화광이 무시무시한 집착으로 만들어낸 언더그라운드 실험영화에 다름 아니다. 영화 자체에서 어떤 텍스트를 찾아내는 것보다는 이 괴상한 영화적 실험과 주제인 ‘시체애호증’이 어떻게 당신에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주목해서 보는 것이 좋다. 그외에도 부트게라이트의 80년대 단편들에서는 그가 지닌 B급영화들의 오타쿠적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대학생이면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아마추어 단편들이라는 것은 미리 알고 보도록 하자. <네크로맨틱>을 보고서 헛구역질이 떠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시체애호의 예술>(Corpse Fucking Art/ 독일/ 60분/ 1992년)이 치료제가 될 법하다. <네크로맨틱>의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에서는 메스꺼운 이미지들이 어차피 모두 ‘가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크로맨틱>을 보기 위해서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의 특별전이 지니는 가치가 무엇인지 의아한 사람이나, 직설적인 고어장면들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굳이 시체와 섹스하는 남녀들의 애절한 로맨스를 참아내라고 강력하게 권유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트로마 특별전 - 엽기영화공장 ‘트로마’의 독립지존 30년이 조악함과 엉성함의 자존심을 보라!
<트로미오와 줄리엣><톡식 어벤져><카니발! 뮤지컬>(위부터)
사지절단의 잔혹고어와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원색적 성표현으로 MPAA 같은 근엄한 이들에게는 숙적 노릇을 해왔고, 조악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엉성한 만듦새로 고상한 미감의 소유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던, ‘엽기공장’ 트로마 스튜디오가 올해로 30년을 맞는다. 트로마는 예일대에서 만난 두 기인, 로이드 카우프만과 마이클 허츠가 의기투합해 1974년 설립한 이래, 단 한번도 할리우드의 거대 스튜디오 자본과 배급망에 기대지 않고 자생력을 지켜온 미국 유일의 독립영화그룹. 피터 잭슨, 올리버 스톤과 같은 스타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로버트 드 니로와 빌리 밥 손튼을 데뷔시키기도 한 이들의 발자취는, 단지 ‘싸구려 엽기 B급영화’라고 매도할 수 없는 신념의 역사이기도 하다.
2001년 로이드 카우프만을 심사위원장으로 위촉하면서 이들과 인연을 맺은 부천영화제는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트로마의 이 특별한 영화적 고집과 만날 수 있는 특별전을 준비했다. 국내에 꽤 잘 알려진 <트로미오와 줄리엣>(Tromeo&Juliet/ 로이드 카우프만/ 미국/ 102분/ 1996년)을 비롯해, 트로마식 슈퍼히어로인 <톡식 어벤저>(The Toxic Avenger/ 로이드 카우프만, 마이클 허츠/ 미국/ 87분/ 1985년, The Toxic Avenger Part II/ 로이드 카우프만, 마이클 허츠/ 미국/ 96분/ 1989년) 시리즈, 〈N.Y.P.D 가부키맨>(Sgt. Kabukiman N.Y.P.D./ 로이드 카우프만, 마이클 허츠/ 미국/ 104분/ 1991년)과 같은 과거의 대표작들은 물론, 그들의 선언과도 같았던 <엽기영화공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들의 최근작 <크래퍼 테일즈>(Tales form the Crapper/ 로이드 카우프만 외/ 미국/ 90분/ 2004년)와 2001년 부천에서 소개됐던 <톡식 어벤저4>의 메이킹필름인 <톡시 묵시록>(Apocalypse Soon/ 가브리엘 프리드먼/ 미국/ 135분/ 2002년)처럼 그들의 영화 철학과 트로마식 영화제작을 지켜볼 수 있는 코멘터리적 자료들도 끼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작품은, 트레이 파커가 <사우스 파크>로 유명해지기 전에 만든 <카니발! 뮤지컬>(Cannibal! The Musical/ 트레이 파커/ 미국/ 95분/ 1996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뮤지컬이지만 웨스턴, 호러, 코미디 등 각종 장르가 달라붙은 이 기발한 작품은, 트레이 파커 자신에게는 혼자 감독, 각본, 제작, 주연, 음악, 미술을 도맡고, 개인적으로는 대학까지 ‘잘린’ 희생까지 들어간 역작이다. 그러나 별 생각없이 금광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고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까지 이른다는 이 괴상한 산행영화는 그 내용처럼 모든 영화사와 영화제에서 전전하고도 외면당하는 처지가 된다. 결국, 트로마에 와서야 간신히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추천작으로는, 영화와 TV쇼,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부시와 할리우드로부터 선댄스까지 조롱하고 야유하는 그들의 최근작 <크래퍼 테일즈>가 있다.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기꺼이 ‘쓰레기’를 만들겠다는 카우프만의 고집은 금기에 도전하는 상상력의 보루로서, 트로마가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 벌거벗은 눈인 독립영화정신의 산실 노릇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가늠케 한다. 문득 90년대 봇물 터지듯 쏟아진 수많은 할리우드발(發) ‘화장실 유머’나 ‘엽기영화’의 치기를 연상케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악의적 조롱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트로마의 ‘자발적 조악함’은 예의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