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PiFan 2004 - 네 안의 숨겨진 환상을 찾아줄게 [6] - 추천 드라마(1)
2004-07-10
글 : 박혜명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추천 드라마 9편

삶과 현실 속의 또다른 판타스틱

<쇼와 가요 대전집>
Big Showa Song Collection l 시노하라 데쓰오 l 일본 l 112분 l 2003년 l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무라카미 류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 스기오카와 다섯 친구들은 밤마다 도쿄 교외의 한적한 부두에서 복고풍 의상을 입고 일본 쇼와 시대의 흘러간 노래들을 부르며 세월을 보낸다. 어느 날 길에서 중년 부인과 마주친 스기오카는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고, 무참하게 칼로 찌른 뒤 도망친다. 그러나 희생된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니라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는 친목모임이자 또 다른 쇼와 시대 추종집단인 40대 여성들의 비밀결사 ‘미도리 클럽’ 일원이다. 쇼와 시대란 1926년부터 시작된 시기로 일본이 세계대전과 급속하게 대외적 팽창을 거듭했던 시기. 당시 유행했던 노래를 즐기는 두 집단이 대립하는 양상이 흥미롭다. 느슨하게 진행되는 사건들, 그리고 돌발적인 폭력장면의 배치가 눈에 띄는 영화이며 전체적인 톤은 블랙유머에 강조점을 둔다. 안도 마사노부, <고하토>의 마쓰다 류헤이 등이 출연한다. 시노하라 데쓰오 감독은 <첫사랑> 등을 연출했던 감독.

<오늘의 사건사고>
A Day on the Planet l 유키사다 이사오 l 일본 l 110분 l 2003년 l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작은 이야기의 힘은 때로 무서운 저력을 보이기도 한다. 겹겹이 쌓이는 에피소드들이 결국 어떤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물하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의 사건사고>는 아무것도 아닌 듯 발생하는 일을 통해 삶의 기묘한 아이러니를 이끌어낸다. 마사미치의 대학원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일곱명의 친구들이 교토에 모여 파티를 연다. 마사미치의 여자친구 마키, 영화감독으로 이제 막 재능을 꽃피우려는 나카자와, 멋진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버리는 케이트. 즐거운 파티가 이어지는 동안 TV에서는 바닷가에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떠내려왔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건물을 털려던 좀도둑은 두 빌딩 사이의 틈에 갇혀버린다. <오늘의 사건사고>는 영화 <고>로 국내에 알려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작. <워터 보이즈>의 쓰마부키 사토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이토 아유미, <배틀 로얄>, <고>의 야마모토 다로 등 스타들이 출연한다. 유키사다 이사오는 최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완전한 타인들>
Perfect Strangers l 게일린 프레스튼 l 뉴질랜드 l 95분 l 2003년 l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사랑에 대한 인간의 판타지를 한 여성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통해 섬세하게 보여주는 게일린 프레스튼의 작품. 술에 취해 만난 남자와 밤을 보낸 독신여성 멜라니는 다음날 아침 자신이 남자의 보트에 갇혀 외딴 섬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의 병적인 사랑에 위협을 느낀 멜라니는 섬에서 탈출할 기회를 잡게 되고 그 순간 모든 상황은 역전된다. 사건은 영화 초반에 이미 종결되는 듯 보이지만 멜라니의 망상은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다. 섬에 홀로 고립된 그녀는 죽은 남자에게 말을 걸고 밤마다 환상 속에서 그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섬에 낯선 남자가 침입하고 그들 사이에서 또 다른 관계가 시작된다. 타자와의 소통이 아닌, 타자의 부재를 기반으로 한 사랑. 타자의 부재 속에서만 그 타자를 받아들이는 멜라니의 모습은 섬뜩하고 슬프다. 그것은 세상과의 고리를 잃어버린 자기애와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둘러싼 외적 상황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현실감을 잃은 멜라니의 독백과 시선이다. 한 여인의 망상이 현실로 통합되지 않고 오히려 현실 속을 파고드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비루만디>
Virumaandi l 카말 하산 l 인도 l 161분 l 2003년 l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페이크다큐멘터리로 시작해 로맨스와 뮤지컬이 장기인 발리우드 스타일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변신하더니, <라쇼몽>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 가지 목격담으로 진행시키며 진실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인도영화. 인권운동가이며 법률연구가인 안젤라 박사는 사형제도 비판론자의 입장에서 교도소를 찾는다. 그녀의 연구 사례가 된 두명의 사형수 비루만디와 테바는 서로를 죽이고 싶어하는 원수지간. 그들 사이에 24명의 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있고, 거기에는 또 여인을 납치해 강간했다는 비루만디의 진짜 사연이 숨어 있다. 인도 영화계의 버팀목으로 알려진 카말 하산이 감독, 각본, 제작,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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