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류열풍 진단 [1] - 지금 한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1)
2004-07-13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솔직히 말하자. 한류가 뜬다, 이런 얘기 이젠 지겹다. 최근 몇년간 한류에 관한 뉴스는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있다. 그 수많은 한류에 관한 말 가운데 정작 한류가 무엇인가에 관한 진지한 질문은 좀처럼 없다. 한류는 그저 신기한 현상이나 문화상품의 부가가치 창출, 또는 한국 스타의 발견이나 연관 관광상품 개발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오해 또는 몰이해가 팽배한 지금, <씨네21>은 한류의 현재를 바로 보자는 제안과 일본, 중국, 홍콩 등 동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살펴본 한류의 현실을 전달한다. 그리고 한류의 문화사적 의미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자본 구성에 관한 논의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한류를 보는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편집자

아시아 대중문화의 큰 강물 속에서 흐르는 한류지난 6월23일부터 28일까지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에서는 ‘한·일 우정주간 인 제주’라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관광공사와 제주도가 일본의 한국전문 케이블채널 KNTV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행사는 일본 내 한류를 이용, 관광과 홍보를 동시에 해보자는 취지의 이벤트였다. 이병헌, 전지현, 장혁 등 배우들이 일본 팬과 만남을 갖고 2차례 콘서트를 여는 등 몇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한 ‘한·일 우정주간 인 제주’는 5박6일 일정에 1인당 10만엔을 내고 참석하는 패키지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700여명의 일본인이 한국의 스타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 6월 23일에서 28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우정주간 인 제주’에서 이병헌은 일본 팬들과 만남을 가졌다.

△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장인 경남 합천까지 찾아온 일본 팬들과의 기념촬영. 사진 가운데가 장동건, 강제규 감독, 원빈.

△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홍보차 방문한 전지현과 장혁을 찍기 위해 홍콩 취재진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대장금> 보고서 지진희를 좋아하게 됐어요.” “이병헌, 송승헌, 배용준을 좋아해요. 한국 드라마에는 일본에서 점점 엷어지고 있는 가족애나 순수한 사랑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이병헌과 만나는 이벤트가 벌어진 6월23일, 행사장 앞에서 만난 일본인 모녀는 KNTV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많이 접했다며 한국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토로한다. 모녀 가운데 딸은 드라마 속 한국 모습에 매료돼 지난해 말 압구정동에서 한국어학원도 다녔다고 한다. 국내에는 대부분 배용준의 인기만 알려졌지만 제주도까지 찾아온 일본인들을 보면 한류가 배용준만을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재일동포인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중년 여성 시모노 치에코는 “송승헌을 너무 좋아한다. 차태현도 좋다”며 그들을 향한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다. 비디오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다는 그녀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거금을 들여 한국 스타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 걸 보면 얼마나 절실한 감정인지 짐작이 간다. 이날 이병헌을 기다리는 일본인들 사이엔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도 일본의 한류에 무심하기는 힘들다. 어찌보면 지겨울 만큼 최근 모든 언론이 한류 열풍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겨울연가>는 이런 사태의 정점이었다. 위성채널에서 방영해 인기를 끌면서 공중파인 NHK의 관심을 끈 <겨울연가>는 배용준을 최고의 인기스타로 만들었으며 NHK에 35억엔이 넘는 수익을 안겨준 걸로 알려졌다. 지난 6월26일, 박용하의 노래와 <겨울연가> O.S.T가 일본 오리콘 차트 일일 앨범 순위 4, 5위에 올랐다는 소식조차 새삼스런 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겨울연가>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이같은 드라마의 성공은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5월22일 개봉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5주간 흥행순위 10위 안에 머물렀고, 6월5일과 6월23일 개봉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모두 개봉 첫주 4위에 올랐다. 물론 국내에서 1천만 관객을 넘은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일본에서 개봉 첫 주말 4위에 머문 것은 관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최근 한국 드라마가 끌어낸 관심에 기반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디로 가야할 지 스스로도 모르는 한류

눈을 돌려보면 2004년 일본에서 벌어진 이런 사건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반복됐던 일이다. 방송 관계자들은 1998년 무렵 대만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2003년까지 대만은 한국 드라마의 최대 수출국이었고 한국 배우는 귀빈 대접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CCTV를 통해 방영돼 인기를 끌었고 90년 후반 언론매체에서 ‘한류’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다. 곧이어 2000년 베이징에서 열린 H.O.T 콘서트를 기점으로 한국 댄스음악이 중국을 휩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베트남에선 <의가형제>가 히트하면서 장동건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동아시아 대부분 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한 <엽기적인 그녀>는 중국에서 불법복제 DVD를 포함해 약 7천만장이 팔렸다고 전해졌다. <엽기적인 그녀>의 인기에 기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악평을 받으면서도 중국, 홍콩, 대만 등에서 짭짤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도 한류를 발빠르게 활용한 예일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한류 관련 소식이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계자들을 고무시키는 동안 정부에서 한류스타들에게 표창장을 주는 일도 생기고 있다. 바야흐로 배우들이 새로운 수출역군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의아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한류,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넘쳐나는 관련 기사 가운데 어디에서도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공모라도 한 듯 한류의 원인에 대해 눈감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한류의 정체를 파악할 능력이 없음을 자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류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기에 전망도 뜬구름 잡는 얘기 같다. ‘한·일 우정주간 인 제주’ 행사를 준비한 한국관광공사의 한 관계자는 한류과 접목하는 관광상품 개발에 대해 “아직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문화관광부의 입장도 “민(民)이 주도하고 관(官)은 지원한다”는 원칙론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류에 대한 언론의 태도도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대처하자는 공자님 말씀만 계속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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