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류열풍 진단 [7] - 홍콩의 제작자가 본 한국영화
2004-07-13
글 : 박혜명
홍콩의 제작자가 본 한국영화

‘“한국영화는 아시아영화의 한 부분일 뿐이다"

-홍콩에서 한국 스타들을 좋아하는 것과 한국영화를 관객이 보는 것,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이라고 보나.

=물론 배우가 매력적이어서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 사람들은 스토리, 영화 자체로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보는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을 봤는데, 정말 좋았다. 스토리가 정말 흥미로웠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아주 독창적이었다. 홍콩에서 수많은 외화들이 개봉하지만 한국영화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독창적인 것 같다. 물론 홍콩에서는 한국영화 중에서도 주로 좋은 영화들만 보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으로선 좋은 한국영화들이 아주 많다. 한국영화의 리메이크 저작권이 잘 팔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과거엔 홍콩영화가 아시아 영화계의 중심에 있었다. 그 시절 홍콩영화의 황금기를 지금 한국영화가 대체했다고 보는가.

=지금 한국영화가 아주 좋은 상황을 맞고 있는 건 사실이다. 홍콩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에서도 그걸 배우고 싶어할 텐데, 한국은 자국 영화시장이 아주 강하다. 헐리우드영화들도 한국에서는 맥을 못 춘다. 그런 좋은 조건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규제가 시장도 보호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한국인들도 문제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작되는 영화편수가 늘고, 편당 제작비도 올라가고. 한국영화 관계자들은 국내시장을 어떻게 강하게 유지할 것인가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해나갈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홍콩영화의 전성기 때에서 교훈으로 얻을 수 있는 건 그 당시 홍콩 영화계는 컨셉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영화는 자국시장에서 성공하는 것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한국 영화산업이 잘돼가고 있지만 언젠가 자국시장이 완전히 무르익을 때가 올 것이다. 제작비는 더 오를 것이고 자국시장만으로는 그 금액을 전부 회수하기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영화도 국제적으로 관객을 고려해야만 한다.

-한국영화가 아시아에서 일으키고 있는 붐에는 어느 정도 거품이 있지 않나.

=거품이 아니다. 내가 한국에 가 있을 때 <올드보이>를 봤는데 정말 좋은 영화였다. 칸에서 그 영화가 상을 타는 걸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어떤 아시아영화보다도 그 영화가 상을 탈 만하다고 여겼다. 거품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모습이다. 흥미롭게도 <올드보이>는 일본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라고 하더라. 결국 그 영화는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와 좋은 제작자가 만나서 좋은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영화다. 좋은 것들의 조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열려 있어야 된다. 내가 홍콩에서 어떤 흥미로운 책을 발견해서 한국 감독과 일해볼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난 아시아 내의 영화를 홍콩영화, 일본영화, 한국영화 이런 식으로 분류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아시아영화만 있을 뿐이다. 나에겐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더 편안하다. 어느 나라의 영화냐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영화가 좋은 영화다. 누가 상관하나? 피어스 브로스넌이 영국에서 온 걸, 멜 깁슨이 호주에서 왔다는 걸 누가 상관하나? 그들(할리우드)도 그저 좋은 것들을 한데 묶을 뿐이다. 한국영화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 아시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물론 언어문제가 있다. 호주와 영국과 미국은 같은 언어를 쓰지만 아시아엔 그런 공통된 언어가 없으니까. 하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면 언어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립 리/ 옥토버픽처스 대표·<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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