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사들의 구매 증가는 위험 신호
얼마 전 TV도쿄에선 ‘한류를 시작한 인물’이란 제목으로 이봉우 시네콰논 사장의 특집 다큐를 방영했다. 시네콰논은 최근 도쿄 유락초에 직영 극장을 추가시키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등 주목되는 작품개봉을 앞두며 새로운 일본영화의 전진기지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쉬리> 때는 무모하다는 말도 많았다던데, 어느 정도가 ‘무모’한 건가.
=130만달러에 사서 프린트 마케팅(P&A)에 3억5천만엔 들었다. 94년 <서편제>를 나름대로 성공시켰다는 자신감이 배경이었다. <서편제> 때 집착한 건 긴자에서 상영하는 것이었다. 긴자는 흥행의 중심가이면서 좋은 영화의 상징이다. <쉬리> 때 생각한 건 한국영화가 마이너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메이저로 보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큰 극장 상영을 고집했다. 당시 가장 큰 게 1200석의 시부야 판테온과 1250석의 신주쿠 미라노좌였다. 극장주들은 1주 뒤엔 200석관으로 넘어간다는 조건을 걸었다. 당시 <쉬리> 앞뒤에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등 할리우드영화가 있었지만 승산있다고 판단했다. 막상 뚜껑이 열리고 다음주로 넘어가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큰 관에서 계속 작품을 걸자 지방 흥행주들이 몰려들었다. 16개관으로 시작해서 3주째 38개관, 5주째 120개관, 6주째 180개관까지 늘어났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평일 관객이 많은, 드문 영화라 들었다. 1800엔 팸플릿이 비싸다는 원성은 자자하던데.
=아줌마 관객이 절대적이니까. (여성할인이 있는) 수요일 숫자만으론 박스오피스 1위다. <스캔들…>은 21일 현재 50만명을 넘어 최종 70만…80만명, 흥행수입 10억엔 정도는 갈 걸로 예상된다. 지금까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다음이다. 흥행보다 자부심을 느끼는 건 그동안 일본에서 그나마 잘된 한국영화가 모두 남북관계를 다뤘던 데 대해 또 하나의 가능성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팸플릿은… 전시회를 포함해 그것도 이번 작품의 선전전략인데. 우리에게 약점은 배용준이 갓 쓰고 도포 입고 안경 벗고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럴 때 전략은 우아하게, 고급화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론 <태극기 휘날리며>가 잘되기를 정말 바란다. 만일 올해 일본 내 한국영화 1위가 <스캔들…>이 된다면 매우 안 좋은 결과다.
-<살인의 추억>은 호평에 비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쉽고 미안하다. 우리가 실패한 점이 있다. 일본 내 마케팅을 고민했지만 결국 구체적인 게 안 잡혔고 한국식 선전을 따랐다. 지금 다시 하라면 달라질 것 같다. 제목도 ‘살인의 추억’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었고, 미해결 사건이란 얘기를 해서도 안 됐고, 강한 이미지의 포스터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 현상에서 우려되는 점은.
=한국영화 수입가가 올라간 거야, 내 책임도 반은 있으니까. 걱정되는 건 영화사라기보다는 정확히는 비디오업체인 회사들의 구매가 크게 늘고 있다는 거다. 그들은 극장 흥행보다는 결국 비디오 판매에 더 신경을 쓴다. 홍콩영화가 망할 때도 그랬다. 당장의 가격보다 작품에 맞는 전략과 조건을 갖춘 회사들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직배를 할 수도 있고. 물론 일본시장 만만치 않다. 적어도 1년에 P&A 비용 20억엔은 있어야 하고, 극장 시스템상 현지 파트너십을 맺어야 할 텐데 아직 일본의 메이저사들은 거기까지는 관심없는 듯하다.
-지금과 같은 스타 중심 논의는 계속될까.
=한국영화 조류가 바뀌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거다. 한국영화는 일단 겉으론 스타 중심, 내용적으론 프로듀서 중심이다. 일본은 절대적으로 감독 중심 시스템이다. 한국영화가 계속 논의되려면 감독을 떠나선 힘드니까 밸런스가 필요한데, 지금 시스템에선 결국 눈에 보이는 배우 중심으로 얘기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계획은.
=늦가을에 <복수는 나의 것>을 선보인다. 크게 풀진 않는다. <올드보이>와 비슷한 시기를 택한 건, 개인적으로 박찬욱이란 감독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시네콰논은 뭔가 다른 한국영화를 보여준다는 인식을 주고 싶다. 요즘 생각하는 건 한·일 동시 개봉이다. 프린트, 마케팅 비용 절감도 크다. 직접 투자에도 참여한 <남극일기>가 그 첫 작품이 될 것이다.
이한국영화 팬들의 집결지 ‘서촌 사이트’
좋은 한국영화 소개합니다!불과 얼마 전까지 일본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영화에 대한 갈증을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겨울연가> 팬들이 새롭게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진 층이라면, 이들은 ‘자주적’인 행사를 통해 꾸준히 한국영화에 대한 지지를 보내왔고 또 보낼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98년 만들어진 ‘서촌 사이트’(www.seochon.net, 정식 명칭 코리안 무비&한글)이다. 메일 매거진 <코리안 무비 뉴스>는 작품의 리뷰부터 일본 내 개봉예정일 안내, 한국영화가 상영되는 일본 내 각종 영화제 소개, 한국 내 소식까지 알차다. 서촌은 운영자인 니시무라 요시오의 한국식 발음에서 따왔다. 고교 때 영화부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대학 시절 한국 유학생 친구와 한국문화원의 상영회를 다니며 한국영화를 접했다. 비슷비슷한 이미지에 한동안 한국영화를 멀리하던 그는 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영화가 다양하게 만들어지는데 일본 배급회사들은 수입할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다음해 2회 영화제 때 <접속>을 보고 “이 작품이라면 일본의 젊은 여성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해 서촌 사이트를 만들었다. “한 영화사 사장에게 <접속>을 수입하자고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때 그가 ‘그렇게 좋은 작품이라면 직접 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올해 4회를 맞은 ‘시네마 코리아’ 영화제다. 처음엔 나고야의 60석짜리 극장의 심야상영 한회를 빌려 76명의 관객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는 7월31일부터 나고야, 도쿄, 삿포로, 오사카 등 4곳에서 순차적으로 열리는 행사로 성장했고 3500∼4천명 관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네마 코리아의 특징은 운영비를 대부분 관객 입장료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스폰서나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불경기가 되거나 정부 방침이 바뀌었을 때 행사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운영자의 사정으로 폐쇄됐지만 한국영화 팬들이 정보를 얻던 또 한곳의 집결지가 한국영화 동호회였다. 동호회의 한 회원은 “계기는 <쉬리>였지만, 계속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김기영의 영화 등 옛날 한국영화들을 꾸준히 봐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영화 개봉 붐은 반갑지만 마니아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지금의 개봉 붐 속에서 정말 소개되어야 할 좋은 작품들이 외면받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