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2] - 마테오 가로네
2004-10-01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이탈리아의 신성, 마테오 가로네

사실주의자에서 스타일리스트로

내가 마테오 가로네(1968∼)라는 이름을 처음 본 것은 이탈리아 볼로냐의 어떤 궁전 뜰이었다. 거의 모든 시민들이 바캉스를 떠나버린 텅 빈 도시의 여름, 나처럼 도시에 남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볼로냐 시네마테크는 중세 궁전의 뜰을 빌려 밤마다 영화상영회를 한다. 그때 전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탈리아 신예감독의 작품이 ‘감히’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같은 걸작과 함께 프로그래밍돼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가로네의 장편 데뷔작 <수단의 땅>(Terra di mezzo, 1997)으로 신예감독들의 대결장인 토리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수단의 땅>은 당시 불법입국자, 불법노동자 문제 등이 연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할 때 발표돼, 관객의 반응은 아주 민감했다. 다큐드라마 형식인 이 영화는 외국인 불법이민자의 하루를 따라간다. 일을 찾아 새벽 노동시장으로 나간 한 알바니아 출신 10대 소년이 ‘다른 일’을 음모하는 이탈리아 동성애자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결국 속셈을 알아차리고 혼자 집으로 걸어가는 하루를 그린 이야기 등 세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가로네는 나이지리아에서 온 창녀, 야간근무하는 이집트인 등의 하루를 계속 보여주며 이탈리아라는 땅이 사람을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비정한 나라라는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이 영화를 나는 아프리카인, 아랍인, 중국인, 인도파키스탄인, 동유럽인 그리고 나이 든 이탈리아인들(여름의 도시에는 이런 사람들만 주로 남아 있다)과 섞여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봤다. 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나는 옆에 있던 이탈리아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는데, 자기성찰의 성숙한 시선이 돋보이는 이 젊은 감독의 미래는 아주 멀리 갈 것 같다는 기대를 했었다.

<첫사랑>

원래 이 영화는 단편영화였다. 난니 모레티가 주최하는 신예들의 등용문인 ‘사케르페스티벌’에서 수상함으로써 장편제작 지원을 받았고, 이탈리아 영화계의 ‘열혈청년’ 모레티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덕분에 가로네는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 후속작인 <손님들>(Ospiti, 1998), <로마의 여름>(Estate romana, 2000)까지 다큐드라마적인 형식은 계속된다. 리얼리스트 마테오 가로네의 정체성이 180도 바뀌는 게 2002년 발표된 네 번째 장편 <박제사>(L’imbalsamatore)이다. 그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아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유럽 전체에 알리는 데 성공한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전통에 있던 가로네는 이 영화를 발표한 뒤 ‘폴란스키와 같은 그로테스크한 세상’, ‘파스빈더와 같은 잔인한 세상’을 그려낸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감독으로 다시 평가됐다. 리얼리스트가 스타일리스트로 돌변한 것이다.

나폴리에서 박제사로 일하는 중년 남자 페피노는 난쟁이인데, 부업으로 마피아를 위해 사람을 박제한 뒤 마약을 유통시키는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잘생긴 청년 발레리오에게 한눈에 반한다. 페피노는 아름다움을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박제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발레리오를 영원히 소유하려고 한다. 내러티브의 공포스런 긴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발레리오가 여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세 사람 사이의 갈등관계는 폭발직전에 놓인다. 공포감이 드는 푸른색 밤과 신경질적인 노란색 조명 등 인위적인 색깔들이 뿜어내는 스릴러의 긴장은 가로네가 대단한 미학적 교양을 갖춘 사람임을 짐작게 한다. 연극비평가인 아버지와 사진작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전업화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촬영팀 조수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는데 지금은 이탈리아 영화계의 미래를 이끌 감독 중 한명으로 성장했다.

올해 초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된 <첫사랑>(Primo amore)은 <박제사>풍의 잔인한 멜로이자 스릴러이다. 스타일리스트 가로네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