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영화보다 낯선 형식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8월29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부산비엔날레가 한창이다. 부산비엔날레의 메인 행사 중에 <현대미술전>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영화욕망’이라고 하는 주제의 전시가 있다. 이 전시는 ‘스크린 기반 미술’(Screen-based Art)의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행사이다. ‘영화욕망’에 초대된 작가 중에 낯익은 이름이 몇 있다. 중국의 양푸동과 우얼샨(양푸동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백생천당>이라는 작품이 초청된 바 있으며, 우얼샨은 데뷔작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될 예정이다), 그리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다. 아핏차퐁의 작품은 <당신의 마음만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긴 제목의 일종의 실험영화이다.
아핏차퐁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타이영화 감독들 가운데서도 가장 낯선 감독이다. 그가 만든 작품들이 대부분 실험영화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전주영화제에서 소개되었던 그의 장편 데뷔작 <정오의 낯선 물체>를 비롯, <비밀요원 ‘철고양이’의 모험>과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는 <친애하는 당신> 등이 모두 일종의 실험영화이다. 그러나, <친애하는 당신>과 올해 작품 <열대병>이 연이어 칸에 초청되면서 가장 각광받는 아시아 감독 중 한사람이 되었다. 칸이 그를 주목한 이유는 물론 그의 작품이 지닌 독창적 형식 때문이다. (장편 이후) 그의 영화는 줄거리는 있지만 줄거리보다 형식이 우선하는 영화이며, 그 ‘정오의 낯선 형식’은 궁극적으로 그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이며, 칸은 그 의미를 인정해준 것이다.
그러나, 아핏차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감독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예술가이다. 아핏차퐁은 현재 ‘킥 더 머신’이라는 영화제작사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대안 공간 그룹작가 ‘프로젝트 304’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의 실험영화는 영화관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미술관까지 넘나들고 있다. 확실히 <당신의 마음만으로는…>을 미술관에서 보는 감흥은 영화관에서 보던 그것과는 다르다. 전시공간 자체가 영화관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만으로는…>은 그의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의 전작들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일관되게 실험영화를 만들고 있는 작가이며, 타이인들의 정체성과 정서에 바탕을 둔 주제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 <정오의 낯선 물체>에서는 평범한 타이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각종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있고, <친애하는 당신>에서도 타이의 농촌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우화를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그러한 주제를 찾기 위한 공간으로 ‘숲’을 선택하고 있다. <친애하는 당신>이 그러하였고, 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열대병>과 <당신의 마음만으로는…> 역시 그러하다. <당신의 마음만으로는…>에서 소녀는 처음부터 설명없이 숲을 헤맨다. 그의 전작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 소녀가 다름 아닌 아핏차퐁 자신임을 알게 된다.
그는 왜 숲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그는 숲이 인간과 야생의 정신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라고 믿고 있다. 그곳은 ‘편안함’과 ‘두려움’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며, ‘일상’과 ‘일탈’, ‘도덕’과 ‘쾌락’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그는 숲속에 들어가 후자를 만나고 싶어한다. 이처럼 ‘뭔가를 찾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단편영화 시절부터 일관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의 영화가 실험영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이 추상적 형태의 것이기 때문이다.
혹, 그와 함께 숲을 거닐면서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고픈 분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대병>을, 그리고 부산비엔날레에서 <당신의 마음만으로는…>을 감상하시면 된다. 도시의 찰나적 쾌락에만 익숙한 분께는 별로 자신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