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송과 포르노의 만남
“1968년 5월, 난 파리에서 나의 첫 번째 포르노영화를 만들었어. 1958년에는 알제리 전쟁이 있었는데, 그때 난 너무 어렸지.” 베르트랑 보넬로(1968년생)의 두 번째 영화 <포르노그래프>(2001)에 등장하는 포르노 영화감독 자크 로랑의 말이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자크 역을 맡은 배우는 누벨바그의 아이콘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장 피에르 레오이다. <포르노그래프>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열정, 실패한 68혁명, 그리고 그것들을 씁쓸하게 반추한 몇몇 개인적인 영화들- 예컨대 장 외스타슈의 <엄마와 창녀>나 필립 가렐의 <사랑의 탄생>- 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두터운 층을 파고드는 고고학적 텍스트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 말미에 다음과 같은 파졸리니의 말이 인용된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란 아버지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아들들의 열정이다.”
자크 로랑은 은퇴한 포르노 감독이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포르노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그의 첫 번째 아내는 오래전에 투신자살했고 지금은 두 번째 아내인 잔느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포르노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집을 나갔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언뜻 상투적인 가족드라마의 줄거리처럼 여겨지지만, <포르노그래프>는 그것을 의외의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자크는 비록 포르노 감독이기는 하지만 매우 교양있고 지적인 인물로서, 그의 섬세한 영혼은 점점 그를 사회, 일, 친구, 가족으로부터 유리시켜 혼자만의 고립된 공간에 틀어박히게끔 만들고 만다. 보넬로는 이와 같은 자크라는 인물을 거의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사제처럼 그려낸다. 또한 배우의 감정표현과 과장된 억양을 억제하고 고정 숏을 고집하는 자크의 ‘브레송적인’ 연출방식은 실제의 포르노 제작현장에서라면 거의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다. 자크의 아들 조셉은 일단의 젊은 무정부주의자들과 어울리는데 그는 더이상 혁명도 저항도 가능하지 않은 우리 시대를 한탄하며 “침묵하도록 하자. 이거야말로 최후의 저항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위의 저항도, 그것 대신 선택한 여자와의 사랑도 그를 구원해주지는 못하는데, 이와 같은 자크의 모습에는 <아마도 악마가>에서의 샤를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겹쳐진다.
그렇다면 보넬로가 의도한 것은 포르노가 환기시키는 육욕성을 브레송적인 금욕성과 충돌시킴으로써 아이러니를 끌어내는 것이었을까? 아니, 오히려 그는 브레송의 이미지들을 그토록 긴장감 넘치는 것으로 만들었던 숨은 열정, 즉 육체에 대한 관심과 극단적인 에로티시즘을 멋지게 읽어낸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장 클로드 브리소, 브뤼노 뒤몽 등과 함께 브레송의 육욕적 측면을 계승한 동시대 감독으로 간주될 수 있다(<지옥의 해부>의 카트린 브레이야를 추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몽상가의 나흘 밤>의 저열한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포르노그래프>에 포르투갈 감독 조앙 세자르 몬테이로의 <신의 코미디>의 한 장면이 인용된 것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몬테이로의 영화는 육체에 대한 갈망이 바깥 없는 세계의 냉담함에 저항하는 숭고한 몸짓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탁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덧붙이자면 극중에서 자크의 조감독은 조앙이라는 이름의 포르투갈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극장에 홀로 앉아 몬테이로의 영화를 보던 조셉은 자신의 아버지의 삶과 영화가 그러한 갈망의 (실패한) 귀결이었음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만일 그렇다면 <포르노그래프>는 68세대에 바치는 참으로 가혹한 진혼곡이 되는 셈이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세 번째 영화 <티레지아>(2003)에서 보넬로의 육체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남녀 양성을 모두 경험한 것으로 알려진 예언자 티레시아스에 관한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소재를 따온 이 영화는, 전반부는 윌리엄 와일러의 <콜렉터>를, 후반부는 모리스 피알라의 <사탄의 태양 아래서>(내지는 브레송과 조르주 베르나노스)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작품이다. 육체에 대한 ‘변태적이고 외설적인’(?) 관심을 통해 숭고의 의미에 접근하는 베르트랑 보넬로가 이후 어떠한 행보를 보여줄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