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 출연진 소개벤 호킨즈를 연기한 닉 스탈은 멜 깁슨의 감독/주연작 < The Man Without a Face >에서 깁슨의 상대역 소년을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로 잠시 주춤하던 그의 경력은 <씬 레드 라인>과 <크레들 베이 Disturbing Behavior>와 같은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뜨기 시작했다.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영화는 에드워드 펄롱의 뒤를 이어 미래의 구세주 존 코너를 연기한 <터미네이터 3>.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의 역할에 끌려다니는 미래의 구세주라는 <터미네이터 3>의 역할은 같은 해에 출연한 <카니발>의 벤 호킨즈 역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장르 영화팬들이라면 저스틴 크로우 목사를 연기한 클랜시 브라운은 익숙한 인물이다. <하이랜더>에서 빅터 크루거를, <브라이드>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나온 사람이 바로 그다. 그의 굵직한 목소리는 니켈로디온의 히트 애니메이션 시리즈 <네모바지 스폰지밥>에서 언제나 들을 수 있다. 주인공 스폰지밥의 탐욕스러운 고용주인 집게 사장의 목소리 연기를 하는 사람이 바로 브라운이다.눈먼 독심술사 러즈 교수를 연기한 패트릭 보쇼는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옥스퍼드 학자 출신이다. 에릭 로메르의 두 번째 모럴 이야기인 <쉬잔느의 경력>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빔 벤더스, 디안느 퀴리, 안제이 즈왑스키와 같은 유럽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했다. 90년대 이후 그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는데, 장르 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역할은 <프레텐더> 시리즈의 악역 시드니이다.식물인간 어머니 아폴로니아와 텔레파시로 연결되어 있는 카드 점쟁이인 소피를 연기한 클리아 듀발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디 영화계의 젊은 연기자들 중 한 명이다. 국내에서는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패컬티>, 존 카펜터의 <화성의 유령들>, 제임스 맨골드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장르 영화들이나 역시 맨골드의 <처음 만나는 자유>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의 조연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 Thirteen Conversations About One Thing >이나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인 걸>, < The Laramie Project >와 같은 인디 영화작품들의 출연작들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 듀발은 사라 미셸 겔러가 주연한 <주온>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판에 출연했다.카니발의 리더 샘슨을 연기한 마이클 J. 앤더슨은 전설적인 컬트 시리즈 <트윈 픽스> 시리즈를 통해 데이빗 린치의 비틀린 미의식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현재 그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왜소증 배우이기도 하다. <트윈 픽스> 이후 그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크리스틴 크룩 주연의 <백설공주>, 소프 오페라 시리즈인 <포트 찰스>에 출연했다.뱀 놀리는 댄서인 루디를 연기한 아드리안느 바르보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72년에 시트콤 < Maude >로 텔레비전에 데뷔한 바르보는 79년에 결혼한 두 번째 남편인 존 카펜터의 영화인 <안개>와 <뉴욕 탈출> 조지 로메로의 <크립쇼>와 같은 장르 호러물에 주로 출연했다.크로우 목사의 누나 아이리스를 연기한 에이미 매디건은 배우 에드 해리스의 아내이다. 영화로는 남편과 공연한 <마음의 고향>, <폴록> 그리고 <꿈의 구장>, <다크 하프>와 같은 영화들이 있다..존 새비지는 <헤어>, <디어 헌터>, <살바도르>와 같은 힘있는 7,80년대의 미국 영화로 영화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르 팬들에게 가장 기억될만한 작품은 그가 도널드 라이데커로 출연했던 제임스 카메론의 텔레비전 시리즈 <다크 앤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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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데이빗 린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 할리우드 초현실주의 거장인 데이빗 린치가 <트윈 픽스>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 그는 미국 텔레비전 세계의 새 영역을 창조했다. 그 세계는 매력적이고 불가해한 사건들로 가득하지만 결코 분명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은 곳이었고 시청자들은 결말과 진상보다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체험 자체를 즐겨야만 했다.
<트윈 픽스> 이후 수많은 시리즈들이 그 뒤를 이었다. 아마 린치의 가장 성공적인 직계후손은 크리스 카터일 것이다. 그가 90년대에 내놓은 두 편의 시리즈 <엑스 파일>과 <밀레니엄>은 음모론과 종말론의 골격으로 쌓아올린 불가해의 미로였다. 라스 폰 트리어가 덴마크의 컴컴한 병원복도들로 창조한 <킹덤> 시리즈의 세계도 린치의 영향에서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계는 결코 운영하기 쉬운 곳이 아니었다. 결말이 분명한 영화와는 달리 이 세계의 시리즈들은 살아남기 위해 상어처럼 헤엄치며 결코 진상에 도달하지 말아야 했다. 린치는 <트윈 픽스>의 결말을 거의 방치했다. 카터는 자신의 세계에 지나치게 매혹된 나머지 <엑스 파일>의 후반 시즌에 그 불가해함의 매력을 거의 완벽하게 날려버렸다. 그 최종 결과는 근사하게 시작된 수수께끼에 대한 졸렬하고 시시한 해답이었다. <킹덤> 시리즈는 해답을 제시하기도 전에 중단되었다. 과연 폰 트리어가 시리즈를 완성할 생각이나 있는지도 모르겠고. 주연 배우 한 명이 죽어버렸고 시간도 꽤 흘렀으니 3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린치 역시 신작 시리즈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상당한 애를 먹었다. 결국 그는 시리즈를 포기하고 파일럿 영화를 재편집해 추가장면들을 넣어 극장용 영화로 만들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매혹적인 영화였지만 가능할 수도 있었던 시리즈의 잠재적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그냥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린치는 갑갑한 공중파 방송들만 건드리고 HBO와 같은 케이블은 시도해보지 않았는지? (또는 왜 린치의 기획이 케이블에서는 먹히지 않았는지?) 오늘 이야기할 HBO 시리즈 <카니발>이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곳이라면 <멀홀랜드 드라이브> 역시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일단 <카니발>의 설정을 간단히 정리해보기로 하자. 시리즈의 시대 배경은 대공황시대였던 1934년의 미국이다. 어머니를 잃고 살던 집도 은행에 빼앗긴 주인공 벤 호킨스는 우연히 만난 카니발 패거리들에 섞여 미국 전역을 누비게 된다. 늘 트레일러 안에 박혀 있고 리더인 샘슨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매니지먼트라는 인물에 의해 통제되는 카니발은 속임수와 사기로 들끓는 곳이지만 그 거짓 경이 속에 진짜 마법이 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그 카니발의 멤버였던 헨리 스커더라는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벤은 그의 뒤를 추적하다 자신이 무언가 거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시리즈에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 또 다른 스토리 라인이 있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의 감리교 목사인 저스틴 크로우이다. 처음엔 그는 마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을에 떠돌이 노동자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려는 열성적인 목사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일련의 신비스러운 경험을 겪은 그는 자기에게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거대한 힘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시즌에서 벤과 크로우 목사는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지만 시리즈는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이들이 앞으로 있을 선과 악의 대결에서 만날 것이라는 암시를 계속 뿌린다.
<카니발>은 일종의 예술적 잡탕찌개와 같다. 이 시리즈가 다루는 초현실적인 세계는 HP 러브크래프트와 스티븐 킹의 영향에 듬뿍 절어있다. 유랑 카니발 세계에 대한 미국적인 매혹은 레이 브래드베리의 단편들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을 그리는 시점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텔레비전 시리즈라는 형식을 통해 미스터리의 미로를 쌓아올리는 수법은 부인할 수 없는 데이빗 린치의 방식이다. 유랑 카니발의 난쟁이 리더인 샘슨을 연기하는 마이클 J 앤더슨 역시 린치의 <트윈 픽스>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요약정리 한다면 이 시리즈의 크리에이터인 다니엘 노프는 일단 남들에게서 물려받은 찌꺼기들을 주워 모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만의 스토리와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인 것이다. <카니발>의 1시즌은 그 때문에 상당히 덜컹거린다. 적어도 전반부는 그렇다. 환상을 구축하는 방식은 거장인 데이빗 린치를 서툴게 모방한 티가 역력하고 적당히 암시를 풀어 기대와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도 그냥 뻣뻣하다. 이런 뻣뻣함이 극복되는 건 시리즈가 그 자체의 스토리를 얻기 시작하고 그에 기대어 스타일이 굳어지는 ‘바빌론’ 에피소드부터이다. 그러나 그 뒤에도 이 시리즈가 아주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카니발>의 예술적 성취는 아직까지 비교적 평이하게 얻을 수 있는 기성품 예술적 도구들을 재능 있는 인력들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구축했다는 데 있는 듯하다.
<카니발>을 특징짓는 것은 그 기독교적인 세계관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천사의 손길>처럼 노골적인 기독교 텔레비전 시리즈라는 건 아니다. 시리즈는 종종 지옥과 종말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툭하면 성경을 인용하며 수상쩍을 정도로 그와 유사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긴 하지만 그만큼이나 자주 근본주의 기독교의 편협함과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기독교는 늘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고 해도 메시아에 대한 믿음, 동정녀 탄생, 죽은 자의 부활, 세례요한, 바빌론의 창녀들과 같은 성경의 요소들은 조금씩 변형되어 <카니발>의 우주에 끊임없이 찾아온다.
어떻게 보면 <카니발>은 오컬트 신봉자의 눈을 통해 본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설정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출발하지만 정작 기술되는 이야기는 마니교나 조로아스터교와 같은 이교도들의 세계관에 더 기울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구도 자체가 그렇다. 심지어 이 시리즈에서는 과연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에 대한 확신도 분명히 가질 수 없다. 우리가 벤 호킨스에 동조하는 이유는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정의와 신에 대한 열정에 불타는 신심 깊은 목사 저스틴 크로우가 악마여야 한다는 논리는 또 뭔가?
다니엘 노프의 첫 번째 성취는 데이빗 린치식 미로를 선악 구도의 이야기에 도입했다는 데 있다. 카니발의 미로는 도덕적인 미로이다. 어느 누구도 분명히 자신이 옳은 편에 서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이 섬기는 대상 (여기서는 수수께끼의 매니지먼트가 그 역할을 한다)이 신인지 악마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확신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걸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카니발>의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의 존재와 행동에 대한 공포이다. 기독교 세계관과는 점점 멀어진다. 신심 깊은 신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운명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다고 믿을테니. <카니발>은 반대로 운명이 그렇다면 당사자가 아무리 저항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은근히 미국 수퍼 히어로 코믹북과 비슷해진다. <카니발>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시리즈는 성경보다는 <엑스 멘>이나 <수퍼맨>에 더 가까워진다. 벤과 크로우는 모두 인간을 넘어서는 엄청난 능력을 얻게 된 초인들이다. 대부분의 엄청난 힘들이 그런 것처럼 이들의 힘에는 늘 부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특히 벤의 경우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 소녀의 다리를 고치려면 주변의 곡물들이 죽고 친구의 팔을 고치면 강의 물고기들이 죽어 떠오른다. 벤은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사용할 것인가? 이는 모든 미국 수퍼 히어로 코믹북의 중요한 주제이다. 설정이 주인공의 자유의지를 제한하긴 하지만 이 시리즈 역시 그 주제를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와 수퍼 히어로 코믹북. 이 두 가지 주제 덕택에 <카니발>이라는 시리즈는 굉장히 미국적인 작품이 된다. 그냥 미국적인 작품인 것이 아니라 9/11 사태 이후의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썩 그럴싸한 비판이 되어주는 것이다. <카니발>은 지옥과 종말의 공포에 휘말린 사람들의 광신적 믿음과 그에 대한 회의에 대한 이야기이며,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진 존재가 자신의 행동에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의 주제는 모두 강한 현재성을 띤다.
카니발과 개신교 교회라는 비교적 상반되어 보이는 두 세계는 이런 회의와 고민에 적절한 힘을 실어준다. 한마디로 두 세계 사이에는 어떤 질적 수준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프는 시치미를 뚝 떼고 종종 이 두 세계를 섞어놓는다. 우리의 선량한 목사 양반은 신으로부터 내려온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협박과 사기, 마법을 일삼는다. 가짜 기적을 일삼는 부흥회는 보다 솔직한 사기꾼들인 카니발 사람들에 의해 모방되는데, 놀랍게도 그곳은 진짜 기적이 행해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선의는 드물고 악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기괴함과 열광은 언제나 찬탄의 대상이 된다. 시리즈가 회를 거듭할수록 카니발의 종교적 색채는 점점 짙어지고 결국 진정한 종교적 희열과 고통과 열광의 무대가 된다. 그러는 동안 제도권 교회가 꼼꼼하게 쌓아올린 선과 악, 기독교와 이교의 벽은 붕괴된다. 그 붕괴과정 중 만들어지는 불쾌한 미로는 <카니발>이라는 시리즈가 제공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카니발>은 지금 아직 미완성인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1시즌이 방영되었고 미국에서는 2시즌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이 시리즈가 선과 악의 전쟁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친다면, 1시즌은 선전포고까지 다루었다고 보면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야기는 막 분위기를 잡는 수준에서 끝난다.
<카니발>이 과연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니엘 노프가 처음 이 시리즈를 기획했을 때 6시즌 정도의 길이를 생각했다고 하는데, 지금 사정을 보면 그 정도 길이까지 이어지지는 못할 것 같다. 과연 3시즌이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정말로 2시즌으로 끝난다면 <카니발>은 바람만 열심히 잡아놓고 끝난 시리즈로 남을지도 모른다.
시리즈가 원래 목표로 삼았던 6시즌까지 도달한다면? 그 결과 역시 미지수이다. 앞에서 말했듯, 이런 시리즈의 힘과 매력은 불가해의 세계를 탐험하는 중간의 여정에 있기 때문이다. 노프가 과연 이 모호한 세계에 걸맞는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데이빗 린치, 크리스 카터, 라스 폰 트리어와 같은 대단한 인물들도 못해냈던 일이다. 노프가 항해을 무사히 마친다면 그건 선배들을 넘어서는 굉장한 성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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