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TV 시리즈 DVD 특집 (3) - 블랙코미디의 진수 <식스 핏 언더>
2005-03-26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식스 핏 언더>라는 드라마를 소개하기에 앞서, 이 생소하기 짝이 없는 제목의 의미부터 밝히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왜냐하면 제목 자체에 작품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스 핏 언더(Six Feet Under)’는 직역하면 ‘6피트 밑’라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관을 땅 속 6피트 깊이로 묻는 것을 나타내는데, 결국 ‘죽은 사람’을 상징하는 표현이 된다(열렬한 메탈 팬들이라면 유명한 데스 메탈 밴드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즉, <식스 핏 언더>는 죽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주인공이 유령이나 좀비인 것은 아니다(물론 유령이 나오기는 하지만, 공포영화적인 감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표현된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죽은 사람을 통해 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된 등장인물은 대를 이어 장의사를 해 오고 있는 피셔 가족. 매 회마다 도입부에서 누군가가 죽게 되고, 그들의 장례를 피셔 가족이 맡게 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공교롭게도 첫 회에서 죽는 사람은 피셔 가족의 수장인 아버지 나다니엘. 그는 집을 나가 자수성가한 맏아들 네이트를 데리러 공항으로 향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숨진다.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진 피셔 가족은 그동안 장의사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모른 채 살아왔던 네이트와 함께 자신들의 앞길을 개척해 가야 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새로운 현실에 맞서며 계속적인 변화를 겪는 피셔 가족의 이야기와 매 회마다 바뀌는 죽은 자의 주변 이야기를 병치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에 <아메리칸 뷰티>를 통해 충분히 솜씨를 보여주었던 ‘앨런 볼 월드’의 연장으로서, <식스 핏 언더>는 포복절도의 블랙 유머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생활을 낱낱이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소재 때문에 어딘지 음습하고 기분 나쁠 것으로 섣불리 상상할 법한 드라마의 분위기는 오히려 매 회마다 반드시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하는 코미디에 가깝다. 하지만 내용상 장례 절차가 중요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시체의 처리나 복원과 관련된 묘사라든가 일반 TV 방송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거침없는 성 묘사(여기에는 동성애도 포함되어 있다), 마약 흡입, 신체 절단 등 웬만한 성인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도 속출한다.

일견 완벽해 보이는 미국 중산층 가족의 허위를 파헤쳤던 <아메리칸 뷰티>와 마찬가지로, <식스 핏 언더> 역시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은 삶을 갑자기 빼앗긴 죽은 자들과 남겨진 사람들을 통해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코미디와 블랙 유머, 삶과 죽음, 현실과 판타지라는 양면을 동시에 다루는 <식스 핏 언더>는 이러한 참신한 설정과 함께 확고한 개성을 확립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듯 소재와 그 표현수위만으로도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는 <식스 핏 언더>는 지난 1999년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앨런 볼이 창안한 TV 시리즈다. 2001년 6월 HBO 채널에서 첫 방영된 이후 현재 시즌 4까지 완료된 상태이며, 올해 시즌 5로 종영이 예정되어 있다.

독특한 소재와 참신한 구성, 탄탄한 연기로 방영되자마자 전 미국의 안방극장을 들끓게 한 이 작품은 2002년 골든 글로브 최우수 TV 시리즈상 및 여우조연상, 2002년 에미상 6개 부문 석권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제작자인 앨런 볼은 파일럿(첫 회)을 비롯한 몇몇 에피소드를 직접 감독하고 각본을 쓰기도 했으며, 배우 캐시 베이츠도 에피소드 2편의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그녀는 직접 출연도 하였다). 이외에도 <아메리칸 뷰티>에서 볼과 인연을 맺었던 작곡가 토마스 뉴먼이 메인 타이틀곡을, 스타일리쉬한 비주얼로 <식스 핏 언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가 된 오프닝 타이틀을 시각효과 팀인 디지털키친이 맡는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들이 참여한 고 퀄리티의 드라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카니발> 등 항상 영화 못잖은 충실한 만듦새의 TV 시리즈를 선보여 왔던 HBO의 작품이니만큼 재미와 감동은 확실히 보장될 것이다.

<식스 핏 언더> 출연진 소개

피터 크라우즈 (네이트 피셔 역)
아버지의 죽음으로 얼떨결에 가업을 물려받은 피셔 가의 맏아들. 집을 나가 제멋대로 생활하던 그는 아버지가 일궈놓은 장의사도 팔아 치우려 든다. 그러나 점차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며, 사업을 유지하기로 결심한다.

네이트 역의 배우 피터 크라우즈는 1965년 8월 12일생으로, 미네소타주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10대를 운동선수로 보냈으나, 장대높이뛰기 사고로 부상을 입은 뒤 학교 연극부에서 연극을 시작하였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피터의 구스타버스 알도퍼스 칼리지에서 의과대 예비생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으나 2학년 때부터 연극에 심취, 영문학 학위를 얻고 졸업했다. 이후 뉴욕대학에서 연극에 대한 열정을 쏟으면서 <맥베스>, <바냐 아저씨>, <무기와 사람> 등 무대에서 주연을 맡았다. 졸업 후 약 2개월 뒤, 캐롤 버넷의 인기 버라이어티 쇼 <캐롤 앤드 컴퍼니>에 고정출연하면서 TV에 데뷔했고, 이후 <비벌리힐즈의 아이들>, <엘렌> <파티 오브 파이브> <사인펠드>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후 인기 시리즈 <시빌>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높은 인기를 얻은 시트콤 <스포츠 나이트>에서 케이시 맥콜 역으로 출연했다. 또한 자신의 연기의 뿌리인 연극무대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면서 LA의 몇몇 극단에서 출연 및 연출을 맡았다. 2002년과 2003년에는 골든 글로브 및 에미상에서 TV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이클 C. 홀 (데이비드 피셔 역)
20대에 이미 가업에 합류한 둘째 아들 데이비드는 과묵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 11년 동안 장의사 일을 해온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엔 형을 도와 장의사 일을 계속하게 된다. 동성연애자로, LA경찰 키스 찰스와 연인 관계이다.

1971년 2월 1일 노스 캐롤라이나주 랄리에서 태어난 마이클 C. 홀은 우수한 무대배우로, 10여개 이상의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주요 출연작으로는 <맥베스>, 뉴욕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의 <심벨라인> <아테네의 티몬> <헨리 5세> <잉글리쉬 티처스> <예수의 시신> 같은 작품들이 있다. 또한 LA의 마크 테이퍼 포럼의 <스카이라이트>에도 출연했다. <식스 핏 언더>는 그의 첫 TV 진출작이며, 영화 <페이첵>에도 출연했다.

프랜시스 콘로이 (루스 피셔 역)
19세의 나이에 피셔가로 시집온 여인. 두 아들과 딸을 키워내는데 평생을 바친 그녀는 남편 몰래 2년 동안 바람을 피운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꽃꽂이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간다.

베테랑 배우 프랜시스 콘로이는 1953년 11월 13일생이며, 조지아주 먼로 출신. 전설적인 극작가 아서 밀러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그녀는 무대, TV, 영화에서 보여준 걸출한 연기로 정평이 난 배우다. 디킨슨 칼리지에서 수학한 뒤 줄리아드 스쿨 연극과에서 4년을 배웠다. 이후, 액팅 컴퍼니의 투어에 2년간 참가했다. 다수의 브로드웨이,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섰으며, 그 중에는 뉴욕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및 링컨 센터의 공연도 포함되어 있다. 주요 출연작으로는 <에비에이터> <캣우먼> <크루서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여인의 향기> <빌리 베스케이트> <범죄와 비행> <로켓 지브랄타> <폴링 인 러브> <맨하탄> 등이 있다.

로렌 앰브로즈 (클레어 피셔 역)
반항적인 성격의 막내 딸. 어린 시절 시체만 보고 자란 탓에 괴짜 같은 성격을 지녔다. 다른 틴에이저들처럼 학교의 부조리한 측면을 증오하고, 자신의 앞날에 대해 불안감을 지니고 있다.

1978년 2월 20일 코네티컷주 뉴 헤이븐 출생인 앰브로즈는 고향에서 마그넷 스쿨(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모은 학교)을 졸업하기까지 여러 학교를 전전했다. 예술문교 센터 및 여름기간 동안 열리는 매사추세츠주의 탱글우드 뮤직 센터를 다녔다. 1997년에 프랭크 오즈의 코미디 영화 <인 앤 아웃>에서 케빈 클라인이 분한 영어교사의 학생인 비키 레이번 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듬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의 드니즈 역으로 영화 출연을 이어갔다. 이후에도 주연을 맡은 독립 영화 <스위밍>과 유머 감각과 음악적 재능을 동시에 피력한 <사이코 비치 파티> 등에서 매력적인 연기로 그 재능을 발휘했다.

리차드 젠킨스 (나다니엘 피셔 역)
'피셔 장의사'의 창립자. 버스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이후 그의 영혼은 가족 주위를 맴돌며, 그들에게 충고와 위안을 해준다. 1953년 12월 2일 일리노이주 디카브 출신으로, 60여편의 작품에 출연한 노장 배우다.

앨런 볼 (제작, 각본, 감독)
1957년 조지아주 애틀란타 출신. <식스 핏 언더>의 창안자 앨런 볼은 샘 멘데즈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시나리오를 통해 일약 일급 각본가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는 <식스 핏 언더>의 파일럿 에피소드를 연출함으로써 감독으로도 데뷔하였으며,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아 에미상과 감독 협회상(DGA 어워드)을 수상하였다. 볼은 원래 TV계에서 발굴된 인재로, <시빌>, <그레이스 언더 파이어> 등의 시리즈에서 작가로 활동해 왔다. 할리우드로 오기 전에는 뉴욕에서 희극작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대표작으로는 1991년 초연된 와 1993년의 <똑같은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여자들> 등이 있다.

<식스 핏 언더>의 재미있는 뒷 이야기

시즌 1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인 "An Open Book"의 극중, 게이 커플인 데이비드와 키스가 식사를 하면서 보는 TV 프로그램은 <식스 핏 언더>와 함께 HBO에서 방영되었던 <오즈(Oz)>로, 해당 에피소드의 제목은 “A Cock And Balls Story"다. cock은 영어로 ‘남성의 성기’를, balls는 ‘고환’을 의미한다.

역시 "An Open Book" 에피소드 중에서 루스와 클레어, 그리고 루스의 사촌 한나와 그의 딸 지니가 함께 식사하면서 보는 TV 프로그램은, The WB 채널에서 방영중인 <길모어 걸스>다. 이 작품은 홀어머니와 딸의 생활을 그린 내용을 다루고 있다.

피셔 가족이 사는 집의 외관으로 쓰인 곳은 실제로는 LA의 2302 W. 25번가에 위치한 필리핀 역사학회 건물이다.

파일럿(첫 회)에서 나다니엘의 영구차가 버스와 충돌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은 롱비치에 위치한 파인 애비뉴와 6번가의 교차점이다. 설정상 극중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였지만, 실제로는 8월 한 여름에 촬영된 장면이다.

2002년 에미상 최우수 메인타이틀 디자인상(Outstanding Main Title Design)을 수상한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제작한 곳은 디지털키친(http://www.d-kitchen.com/)이다. 디지털키친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실제로 방영된 것과 약간 다른 버전의 오프닝 타이틀을 감상할 수 있다.

네이트 역의 피터 크라우즈는 원래 데이비드 역으로 오디션을 보았고 배역 자체도 마음에 들어했으나, 네이트 역의 배우를 캐스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한 앨런 볼의 요청으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볼은 특히 크라우즈와 브렌다 역의 레이첼 그리피스와의 앙상블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HBO는 첫 회가 방영된 지 1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시즌 2의 제작을 요청했다고 한다.

오프닝 크레딧을 보면, 관의 손잡이를 쥔 사람의 손 클로즈업이 있다. 원래는 손가락에 해골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디지털키친은 이것이 극의 미묘한 분위기를 해치는 지나치게 직설적인 조크라고 판단, CG를 통해 반지를 지웠다.

앨런 볼이 <아메리칸 뷰티>로 유명해지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TV 시트콤 등에서 각본가로 활동하던 볼은 <아메리칸 뷰티>의 각본으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던 도중 스필버그가 운영하는 드림웍스의 문을 두드린다. 여러 영화사들이 그러했듯 드림웍스의 제작자들 역시 그의 각본에 탐을 냈다. 만족스러운 미팅을 마치고 제작자들이 주차장까지 나와 볼을 배웅하던 도중, 때마침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나가고 있었다.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보스에게 앨런 볼을 소개했다. 속으로는 스필버그가 제발 그의 각본을 읽었기를 바라면서. 다행히도 스필버그는 “아, 그 훌륭하신 각본가시군요. 앞으로 잘 해봅시다”라며 악수를 청했다고. 이 시대 가장 뛰어난 감독의 칭찬을 받고 감격한 볼은 그 일을 계기로 드림웍스와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일이 없었더라면 <식스 핏 언더>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거나, 설사 나왔더라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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