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TV 시리즈 DVD 특집 (4) - 슈퍼맨의 새로운 신화를 쓰다 <스몰빌>
2005-03-26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영상물의 세계에서 범람하는 속편들은 이미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어떤 작품이 웬만큼만 장사가 되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속편은 나오며, 아예 속편 제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영화도 일반화되었다. 속편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역시 가장 안전한 장사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속편이 전편을 뛰어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때문에 ‘소재 고갈’이라는 간단한 한 마디로 평가절하되는 속편들이 많지만, 또 그 만큼 많은 관객이나 시청자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우나 이야기, 세계관을 더 보고 싶은 욕망에 기꺼이 승복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이후 자주 볼 수 있게 된 ‘전편(프리퀄 ; prequel / 물론,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이 전편의 원조격인 작품은 결코 아니다)’이라는 개념은 사실 속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동전의 앞뒤 차이 정도에 불과한 변주다. 그런데 전편은 대부분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을 셀링 포인트로 내세운 속편과는 달리 ‘정해진’ 결말을 향해 전진한다는 점이 오히려 매력이다. 때문에 90년대 이후에 접어들면 영화는 물론 TV 시리즈에서도 전편의 개념이 종종 활용되어오고 있다. <스타트렉>의 오리지널 시리즈 이전의 사건들을 다룬 <엔터프라이즈>가 그렇고, 오늘의 주제인 <스몰빌> 역시 (슈퍼맨의) 전편에 해당한다.

그러나 <스몰빌>은 일반적인 전편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띄는 작품이다. 앞서 예를 든 <엔터프라이즈>가 속한 <스타트렉> 세계관의 경우, 오리지널부터 약 30년간 TV 시리즈와 극장판 영화가 이어져 오면서 연대기적으로 정리가 가능한 명확한 세계관이 성립되었다. 이것은 적어도 요즘의 관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전편과 속편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스타워즈> 세계관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스몰빌>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맨과 DC 코믹스의 세계관은 처음부터 만화책으로 시작한 것이고, 70년에 육박하는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원래의 세계관이 리셋되거나 별도의 또 다른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등 일직선이 아닌 계보를 그려 왔으며, 기본적으로 영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스타트렉>과는 달리 현실적인 조건에서 훨씬 자유도가 높은 출판 매체를 통해 다양한 시도가 행해졌다. 물론,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 역시 만화, 게임, 소설 등의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발표된 수많은 외전들이 존재하며, 기본 설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져 온 것은 마찬가지다.

<스몰빌>이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다수의 버전이 존재하는 슈퍼맨의 세계관을 전편이라는 설정을 빌려 새롭게 창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슈퍼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그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슈퍼맨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가 고향 크립톤 행성을 떠나 지구에 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천루가 우뚝 솟은 메트로폴리스에서 진정한 지구의 영웅으로서 자리매김할 때까지 어떤 사건들을 거쳐 왔는가에 대해서는, 특히 원작 코믹스의 소개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스몰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슈퍼맨의 과거를 새롭게 재창조하여 21세기라는 현재에 발을 디딘 슈퍼맨 상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90년대 이후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나타난, 보다 복잡한 내면 묘사와 캐릭터의 다층적인 매력이라는 요소를 한껏 강조하여 보여주는 트렌드가 하나의 완성에 가깝게 그려진 경우다. 팀 버튼의 <배트맨>이 히어로의 내면에 보다 집중한 영화의 전범을 확립했고,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에서 빨갛고 노란 레오타드 없이도 얼마든지 황당하지 않고 멋진 히어로의 비주얼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하자, 현재의 히어로 영화는 내면과 외면 모두를 현실이라는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디딜 수 있게 한 것은 물론, 그들의 초인적인 능력도 더욱 세련되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스몰빌>은 히어로의 겉과 안을 그리는 가장 최근의 방식을 편리하고 적당히 도입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공 과정이 대단히 능숙하고 유연하다는 점에서, 단순히 창조적인 측면에 대한 아쉬움을 강조해야 할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적어도 <스몰빌>은 21세기의 슈퍼맨이 어떨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비교적 명확한 형태로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몰빌>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세심하게 배려된 캐릭터들 간의 균형에 있다. 아무래도 시각 효과나 액션에 치중하기 어려운 TV 시리즈라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화롭게 캐스팅된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스몰빌>의 캐릭터들은 생생한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극을 이끄는 가장 큰 축은 뭐니뭐니해도 ‘클락 켄트가 슈퍼맨으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아직은 날 수 있는 능력을 비롯하여 히어로로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 클락이(그 특유의 파랗고 빨간 복장은 물론이고) 각종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간다는 내용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축은 클락과 렉스 루터의 관계로, 원래는 슈퍼맨이 된 클락이 메트로폴리스에서 만나게 되는 악당을 스몰빌 시절에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도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는 흥미로운 플롯의 변화를 통해 그린 것이다. 특히 훗날 적으로 변하는 이들의 관계가 과연 어떻게 묘사될 것인지는 인격의 어두운 부분을 향해 점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렉스의 변모 과정과 더불어 시청자들의 흥미를 계속 이끄는 요인이다. 진정한 우정과 선의, 배반과 사악함이 공존하는 렉스와, 순수한 선을 대표하면서도 외계인이자 이방인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진 클락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적용할 수 없는 미묘한 캐릭터를 구성한다.

또 하나의 축은, 아마도 <스몰빌>을 젊은 층 시청자들에게 어필시킨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은데, 클락과 라나 사이의 아슬아슬한 로맨스(?)다. 첫 사랑인 라나에 대한 감정에 고민하면서도 자신의 비밀을 밝힐 수 없는 갈등을 가진 클락.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클락과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없는 라나의 딜레마. 말 그대로 ‘사랑의 줄다리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관계는 여성 시청자들도 끌어당기는데 성공하고 있다. 문제라면 이것이 3시즌(60편이 넘는다)이나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고, 시즌 4부터는 클락의 미래의 연인인 로이스 레인이 등장하기 때문에 약간 맥이 빠져버린다는 점.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여전히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하는 부분이자, <스몰빌>을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약간 마니아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스몰빌>에는 과거 <슈퍼맨> 영화판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종종 얼굴을 비추어 올드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이미 <슈퍼맨 III>에서 라나 랭을 연기했던 아네트 오툴이 클락의 어머니인 마사 켄트 역으로 캐스팅되었을 때부터 팬들의 화제를 모았으며, 시즌 2부터는 ‘영원한 슈퍼맨’ 고(故) 크리스토퍼 리브가 비중 있는 배역의 게스트로 출연, 신세대와 구세대 슈퍼맨의 감동적인 만남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슈퍼맨의 아버지 조렐 역에는 <슈퍼맨 II>의 악역 조드 장군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테렌스 스탬프가 목소리를 빌려주었으며, 아직 DVD로 출시되지 않은 시즌 4에는 로이스 레인 역을 맡았던 마고 키더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스몰빌>은 슈퍼맨이라는 히어로를 알고 있는 팬은 물론, 히어로 영화에 생소한 시청자들도 누구든 즐길 수 있는 갖가지 흥밋거리가 가득한 작품이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슈퍼 히어로 원작 영화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동시대에 맞는 감각으로 덧칠한 <스몰빌>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캐릭터 속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스몰빌> 출연진 소개

톰 웰링 (클락 켄트 역)
<스몰빌>의 클락 켄트는 아직 슈퍼맨으로 각성하지 않은 상태다. 겉으로는 심지가 굳고 순박한 지구의 농촌 청년이라는 이미지인데, 동시에 그는 또래의 지구 청소년들이 겪는 사춘기 전후의 상황을 자신의 초인적인 힘에 대한 내면적 갈등으로 표출하게 된다. 보통 이러한 갈등을 가진 캐릭터는 심각하게 얼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아 누구에게나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건장한 체구에 아이와도 같은 천진함이 느껴지는 톰 웰링의 마스크는 이러한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를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게끔 만든다.

웰링은 1977년 4월 26일생으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CBS의 TV 시리즈 <판사 에이미(Judging Amy)>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스몰빌>로 확실한 스타덤에 올랐으며, 최근 존 카펜터 감독의 1980년도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한 <안개>(루퍼트 웨인라이트 감독)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유망주다.

크리스틴 크룩 (라나 랭 역)
영화판 <슈퍼맨 III>에서 묘사된 라나 랭은 2편에서 클락=슈퍼맨의 연인이 되었다가 그 기억을 모두 잃어버려, 3편에서는 비중이 대폭 줄어버린 로이스 레인을 잠시 대신한 역할에 불과했다. 즉, <슈퍼맨 III>에서의 라나는 관객들로 하여금 ‘클락에게 로이스 말고도 만났던 사람이 또 있었구나’ 라는 느낌 이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스몰빌>에서의 라나는 당당한 여주인공이 되어 클락의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자 복잡한 과거를 가진, 유성우와 함께 지구에 내려온 클락과는 운명적으로 이어진 캐릭터로 비중이 높아졌다.

이 새로운 라나를 연기한 크리스틴 크룩은 1982년 12월 30일생으로, 캐나다 뱅쿠버에서 태어났다.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독특한 마스크와 이미지를 지닌 그녀는, 금방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지만 볼수록 인상에 남는 이국적인 느낌이 매력적이다. <스몰빌> 외에 CBS의 TV 시리즈 <에지몬드>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 출연작은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2004년 12월 Sci-Fi 채널에서 방영한 미니시리즈인 <어스시의 전설>이다. 여담이지만, <어스시의 전설>의 주연인 숀 애쉬모어는 <스몰빌>에서 시즌 1과 3에 에릭 서머즈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판 <엑스맨>에서 바비 드레이크/아이스맨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마이클 로젠바움 (렉스 루터 역)
1972년 7월 11일생. 롱아일랜드주 오션사이드 출신. 고교 시절부터 학교 연극 무대에 서는 등 일찌감치 연기에 뜻을 두었으며, 경영학을 전공했던 대학 시절에도 서클 활동을 통해 계속 연기를 해 왔다. 출연작 가운데 유난히 DC 코믹스 원작 작품이 많은데, <스몰빌>의 렉스 루터외에도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배트맨 비욘드>에서는 악역 굴(Ghoul), 슈퍼맨이 등장하는 <저스티스 리그>에서는 플래쉬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이외에도 영화 <미드나잇 가든>, <캠퍼스 레전드> 등에도 출연했으며, 최근작은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공포영화 <커스트>와 가족 영화 <레이싱 스트라이프스>.

앨리슨 맥 (클로이 설리반 역)
1982년 7월 29일생. 독일의 프레츠에서 태어나 2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4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아역 배우 출신으로 <제7의 천국>, <케이트 브래셔>, <이성>, <힐러와 딜러> 등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동해 왔다. TheWB 채널의 아동용 시리즈 <나이트메어 룸>에서는 <스몰빌>에서 공연한 샘 존스 3세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존 슈나이더 (조나단 켄트 역)
1954년 4월 8일생. 뉴욕주 마운트 키스코 출신. 1975년 CBS에서 방영된 인기 시리즈 <해저드의 듀크 가>에서 보 듀크 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컨트리 가수로도 활동한 바 있으며, <닥터 퀸>을 비롯한 많은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아네트 오툴 (마사 켄트 역)
1954년 4월 1일생. 텍사스주 휴스턴 출신. 이미 슈퍼맨의 팬들에게는 익숙한 얼굴로, 다름아닌 영화판 <슈퍼맨 III>에서 라나 랭 역을 맡았던 바로 그 배우다. <48시간>, <캣 피플> 등의 영화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존 글로버 (라이오넬 루터 역)
1944년 8월 7일생. 메릴랜드주 샐리스베리 출신. 영화, TV, 연극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해 온 베테랑 배우. 마스크와 이미지 때문인지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스몰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백야>, <스크루지>, <그렘린 2>, <로보캅 2>, <매드니스>, <배트맨 & 로빈>, <페이백> 등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주요 TV 시리즈 작품으로는 <마이애미의 두 형사>, <브림스톤> 등이 있다. <배트맨>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리들러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시즌 1에서는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시즌 2부터 비중이 늘어 본격적인 레귤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샘 존스 3세 (피트 로스 역 / 시즌 1~3)
1983년 4월 29일생.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출신. <뉴욕경찰 24시>, , <보스턴 저스티스> 등에 게스트 출연한 바 있으며, 데이비드 고이어의 감독 데뷔작 <지그재그>에서의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즌 3에서 퇴장하지만, 향후 재등장이 유력시된다.

크리스토퍼 리브 (버질 스완 역 / 시즌 2, 3)
1952년 9월 25일생. 뉴욕주 뉴욕 출신. 영화 <슈퍼맨>을 통해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슈퍼 히어로상을 확립한 배우. 시즌 2에 게스트 출연하여 신구 슈퍼맨의 대면을 연출, 팬들을 감동시켰다. 1995년 불의의 낙마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재활의지로 사회 활동과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이어온 것은 유명하다. 2004년 10월 10일 심장질환으로 안타깝게 별세함으로써, <스몰빌> 시즌 3에 출연한 것이 배우로서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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