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상한 동화나라의 팀 버튼 [2]
2000-01-25
글 : 김혜리

임무 완수하는 영웅, 팀 버튼답지 않은 캐릭터

<유령수업>

한편 <슬리피 할로우>는 외골수 팀 버튼의 영화로서는 놀랄 만큼 개방적이다. 미스테리의 얼개를 입은 앤드루 케빈 워커의 각본은 그의 어떤 전작보다 강한 스토리에 대한 집착을 영화에 심어놓았다. 썩어 부푼 시체, 잘린 머리를 채운 자루, 구더기 끓는 주검 같은 역한 이미지들도 <쎄븐>의 작가였던 그의 취향이다. 품위있는 위트가 살짝 발라진 대사에서는 각본을 가다듬은 톰 스토파드(<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지문이 묻어난다. 크레인 역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팀 버튼 영화의 히어로다. 크레인은 팀 버튼이 붙잡고늘어져 온, 정상성의 세계에 몸을 밀어넣으려다 거절당하는 아웃사이더 캐릭터와 사뭇 다르다. 누구 못잖은 정신적 외상도 있고 컴플렉스도 깊은 인간이긴 하지만, 걸핏하면 졸도하고 큰 소리라도 날라치면 방금 구출한 여자 뒤에 숨는 심약한 남자지만, 어찌됐건 크레인은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치는 일 없이 기어코 직무를 마치는 ‘영웅’이다. 그에겐 심지어 <인디애나 존스> 풍의 액션 클라이맥스를 폭발시키는 기회까지 주어진다. 요컨대 <슬리피 할로우>는 순도 100%의 팀 버튼적 상상력을 고대한 관객이라면 실망을 감수해야 할,감히 ‘관습적’ 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영화가 됐다.

그럼에도 <슬리피 할로우>가 90년대가 낳은 시각적으로 가장 뇌쇄적인 영화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죽음의 나무에서 부르델의 청동상처럼 위풍당당한 목없는 호스맨이 흑마를 타고 뛰쳐나오는 장면은 어떤 수사도 초라하게 하는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해머 호러, 시대 의상극이라는 유럽 영화의 전통과 다른 아티스트들의 영감으로 둘러싸인 슬리피 할로우의 움푹한 분지에서 팀 버튼은 잠시 엉켰던 스텝을 풀고 말 편자를 갈아끼우며 한숨을 돌린 것처럼 보인다. 1월19일 현재 9천 5백만 달러 수입을 올린 <슬리피 할로우>로 어느 정도 스튜디오의 신용을 만회한 팀 버튼의 차기작은 <X: 엑스레이 눈을 가진 사나이>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의 영화와 조니 뎁과 함께 만들 것이라는 전기물이라고 한다.

그의 말발굽 소리에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기한 노릇이다. 아무리 이상한 이야기도 팀 버튼이 쓰고 그리면 어느새 그저 그런가보다 수긍하는 자신을 객석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는 분명 우리의 신경이 감당할 수 있는 이미지의 지평을 확장하는 귀한 감독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풍차의 날개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팀 버튼의 마력은 그의 낯선 영화 <슬리피 할로우>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비이성적인 사랑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이성의 감독을 받는 열정은 스스로를 세계에 적응시키는 것으로 끝을 보지만 불합리한 열정은 세상이 자기를 따라오도록 유혹하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꿈이 곧 우리의 악몽임에도 불구하고, 매듭 풀린 갑옷에 헝클어진 머리를 흩날리는 기사 팀 버튼의 말발굽 소리가 다가올 때마다 우리의 심장이 대책없이 두근거리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친구없이도 가지고 놀 영화가 참 많았다

디스 보이즈 라이프:팀 버튼의 소년 시절

영화를 통해 핵겨울 같은 정서적 풍경을 보여주는 팀 버튼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햇볕 쨍쨍한 캘리포니아의 버뱅크에서 나고 자랐다. 뚜렷한 계절도 없고 대기의 촉감마저 일년 내내 똑같은 버뱅크는 소년 팀에게 죽도록 지루한 곳이었다. 늘 상냥한 가면을 쓰고 있는 이웃 사람에게서도 그는 위선을 냄새맡았다. 팀 버튼은 동네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미니어처 골프장의 풍차를 바라보며 암울한 중세 민담의 세계를 그려보는 특이한 아이였다.

마크 살리스버리가 간추리고 조니 뎁이 서문을 붙인 책 <버튼이 말하는 버튼(Burton on Burton)>에 따르면 팀 버튼의 가정은 청교도적이고 딱딱한 전형적인 미국의 50년대 핵가족이었다. 팀 버튼은 군인 인형의 머리를 떼내거나, 옆집 아이에게 외계인이 공습했다고 거짓말로 겁주는 장난을 즐겼다. 잔디에 누워 인근 공항에서 떠오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공상하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팀의 주요한 도피처는 텔레비전 앞과 극장 객석이었다. 그림자 놀이 램프에 넋을 놓는 <슬리피 할로우> 속의 한 꼬마처럼, 팀 버튼은 빛과 그림자에 매료됐고 질색하는 책 대신 괴물 영화를 머리맡 동화로 삼으며 자랐다. 학교에서 그는 사람과 사물 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학생이었고, 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기 위해 열심이었다. 특별히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진득히 사귀는 친구도 없었다. “친구가 없어도 세상에는 가지고 놀 이상한 영화가 참 많았다”는 것이 본인의 설명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뒤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팀은 방세를 내기 위해 방과 후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인간의 추하고 불친절한 본성에 대해 한두가지 배웠다. “음식과 함께 놓고 보니 인간의 추한 면이 더 잘 보였다”고 그는 회상한다. 어렸을 때 이미 낙서와 스케치만이 자기를 집중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한 팀 버튼의 예술적 재능은 고등학교 무렵 숨길 수 없는 것이 됐다. 아티스트로서 그가 사회의 첫 인정(?)을 받은 것은 공교롭게도 쓰레기를 통해서다. 고교 시절 버뱅크 시 오물 처리 포스터 디자인 공모에서 일등상을 받은 버튼의 작품은 그 지역을 도는 쓰레기 트럭 옆구리에 두달간 붙어 있었다. 이웃집 창에 크리스마스와 할로윈 장식을 그려주는 일은 10대 소년 버튼에게 중요한 아르바이트였다. 할로윈 호박, 눈오는 풍경, 거미, 해골 등이 그의 주요 소재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졸업 뒤 칼아츠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팀 버튼은 곧 유리창에서 필름으로 캔버스를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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