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2] -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2001-08-03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이혜정
하드보일드, 일그러진 세상에 대한 반격

“5년 전 어느날 불현듯 영감을 얻어 하루 만에 시나리오를 썼다. 바로 이것이 아니겠냐며 영화사에 보여줬더니 분위기 썰렁하더라. 5년간 덮어뒀다가 이제 한국영화가 좀더 다양한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 <복수는 나의 것> 제작발표회가 열린 7월24일, 박찬욱 감독은 농담 반 진담 반 이번 영화가 나온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놀라운 성공 이후 박찬욱 감독의 행보는 많은 영화인의 관심사였다. 단숨에 흥행감독으로 떠오른 그에게 돈다발을 싸들고 찾아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것은 5년 전 직접 시나리오를 쓴 <복수는 나의 것>. 어쩔 수 없이 유괴라는 범죄를 택한 남녀가 전반부를, 딸의 시신을 발견하고 복수를 결심하는 아버지의 추적이 후반부를 차지하는 독특한 이야기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를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그리겠다”고 밝혔다. 대시엘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등 미국작가들이 쓴 범죄소설에서 유래하는 하드보일드는 1940년대 필름누아르 영화들의 모태였다. 그가 <복수는 나의 것>을 필름누아르가 아니라 하드보일드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둠이 지배하는 필름누아르의 시각스타일보다 하드보일드의 건조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표현방식에 끌린다. 가난의 고통이나 실종된 아이를 찾으려는 부정 등 감상이 넘쳐나는 소재지만 그렇게 가면 새로운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주 건조하고 비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져도 충분히 가슴아프게 느낄 이야기이기에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 코믹함이 넘치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전혀 다른 스타일을 예상할 수 있다. 아마 가장 큰 변신으로 느껴질 부분은 송강호가 맡은 배역. 그는 유괴된 딸이 죽은 뒤 유괴범들에게 냉혹한 복수를 시도하는 작은 공장의 사장 동진으로 나온다. 박찬욱 감독은 송강호의 얼굴에서 “리 마빈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드러나는 냉철함과 크리스토퍼 워컨의 조각 같은 외모가 전달하는 차가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코미디 연기로 워낙 깊은 인상을 남긴 터라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일 수 있지만 <초록물고기>의 송강호를 떠올려보면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보여줄 그의 연기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괴범을 맡은 남녀는 신하균과 배두나. 신하균은 귀머거리, 벙어리인 착하디 착한 젊은이로, 배두나는 관념적인 급진주의자로 나온다. 박찬욱 감독은 ‘착한 유괴’라는 표현으로 둘의 행동을 설명한다. “그들은 유괴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도나 살인처럼 누군가를 해치는 게 아닌, 돈많은 사람에게 흔적도 남지 않을 약간의 돈을 뜯어내는 것뿐이라고. 유괴가 극악한 범죄로 낙인찍힌 데는 나쁜 유괴만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공한 유괴라면 경찰 몰래 돈을 주고 인질이 풀려나서 아무 일 없던 듯 잘사는 것이다. 그럴 경우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에 착한 유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배두나가 맡은 영미의 생각이다.” 영화가 그리는 건 이처럼 얼핏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조리한 세상이다. “호의를 갖고 잘해보려 했는데, 정말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왜 뜻대로 안 풀리는가?” <공동경비구역 JSA>가 보여준 ‘분단’이라는 뚜렷한 이유 대신 <복수는 나의 것>은 좀더 근본적인 물음에 접근하는 영화다.

연출의 변

“이미지나 소리나 대사나 표정이나 모든 면에서 과잉된 영화가 많았다. 검소하고 금욕적인 영화를 보고 싶었고 하드보일드는 그런 의미이다.”

이런 영화

류(신하균)는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선천적인 농아다. 병든 누나를 위해 신장을 이식해주려 하지만 류의 신장이 누나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진단이 내린다. 류는 누나를 간호하느라 결근한 일로 공장에서 해고당한다. 설상가상으로 퇴직금으로 받은 돈 1천만원마저 장기밀매사기단에 속아 날려버린다. 그때 병원에서 누나에게 적합한 신장을 찾아냈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류의 여자친구 영미(배두나)가 돈많은 사람의 아이를 유괴하자고 제안한다. 혼자 월북을 시도한 경력이 있는 과격한 사상의 소유자 영미는 류처럼 착한 청년이 고통을 겪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다. 그녀는 착한 유괴는 죄가 아니라며 류를 설득한다. 류와 영미의 목표가 된 것은 동진(송강호)의 어린 딸 유선. 기술자로 시작해 공장 사장으로 자수성가한 동진은 가정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이혼당한 상태. 그에게 남은 것은 딸 유선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날 유선이 유괴된다. 동진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유괴범이 원하는 돈을 준비한다. 다음날 익사체로 발견된 유선. 싸늘한 아이의 시체를 부여잡고 동진은 복수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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