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11] - 장규성 감독의 <재밌는 영화>
2001-08-03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패러디의 속도전을 즐겨라!

고작해야 ‘3급비밀’인데, 왜 그리도 쉬쉬했던 걸까. <재밌는 영화>는 ‘한국영화 패러디’라는 기치하에 제작되는 작품.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다, 몇몇 영화사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탓에, 이라는 시나리오는 지난 6월 <재밌는 영화>라는 이름표를 받아들기까지 꼭꼭 숨어 있어야 했다. 이미 지난해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으니, “나 놀아요”라면서 반년 동안 시치미 뗐을 장규성(31) 감독의 입은 얼마나 근질거렸을까. 하지만 본격적인 제작 일정을 앞둔 지금이라고 해서 봉해진 입 주위의 실밥을 맘놓고 뜯을 형편은 아니다. 미리 김빼는 것이야말로 자멸의 지름길이라는 장 감독은 “어차피 말로 풀어봤자 재미도 없을 것”이라고 변명한다.

아이디어는 스포츠신문 영화담당 기자출신인 안영준씨로부터 나왔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흥행선을 타는 걸 보면서, 이제는 “한국영화도 패러디할 만큼 컸구나” 생각했다는 것. 한지승 감독과 영화사 시선을 만든 뒤, 평소 친분이 있던 좋은영화 김미희 대표에게 의사를 타진, 공동제작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시나리오 초고는 디지털영화 <너무 많이 본 사나이>를 연출했던 손재곤 감독이 썼고, 김상진 감독 아래서 오랫동안 조감독으로 작업해왔던 장규성 감독이 연출자로 낙점을 받아 합류하면서 올 6월, 최종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일단 골조가 완성됐다지만, <재밌는 영화>의 외관을 짐작하기란 불가능하다. 현장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재빨리 바꿔야 하기 때문. 지금도 1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스탭 회의에서 장 감독은 매번 “말 안 되고, 황당한 아이디어”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 하찮은 소품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세트 안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사각 액자에는 시원한 파도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익사 직전의 허우적거리는 사람도 담겨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편집이나 음악 역시 “비트는 것만이 정공법”이라는 원칙을 철저히 고수한다. “인물들 감정 밟아주다보면 날샌다”며 철저하게 순간 상황의 속도전을 즐길 것이라고 말하지만, 장 감독은 영화 문법 자체도 꼬아볼 생각이다. “총격전은 항상 짧은 컷으로 숨쉴 틈 없이 몰아가잖아요. 웃음이 생겨날 리 없죠. 반대로 <서편제>처럼 롱테이크로 쭉 가면 상황이 달라질 걸요.” 사실은 영화 속 인물들도 한국영화의 캐릭터들을 조합해서 만들 생각이었으나,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포기했다. 대신 멀쩡한 인물들을 배치시키되, 주변상황을 망가뜨려놓는 전법으로 폭소의 뇌관을 심는다. 장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는 없지만,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와 같은 ‘빅3’는 물론이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넘버3> <주유소 습격사건> 등이 현재 블랙리스트 상위에 올라 있다고.

장규성 감독은 스스로 <재밌는 영화>와의 인연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고 믿는다. 호러나 스릴러보다 코미디영화만을 편식해온 데다, 지금까지 세번을 돈내고 극장가서 본 유일한 영화가 <총알탄 사나이>였다. 충무로 연출부 시절, 그런 기억을 조감독 형에게 풀어놓으며 “우리도 한번 만들어볼까 했다”가 ‘미친 X’ 소리 들은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면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웃는다. 현재 프로덕션 디자인 시안을 최종적으로 점검중이라는 그는 35억원의 제작비 중 상당 부분이 세트 등을 공들여 만들 미술분야에 들어갈 거라고 전한다. 현재 무라카미 역에 김수로, 상미 역에 김정은이 캐스팅됐고, 남은 두 남자 황보와 갑두의 캐스팅이 마무리되는 대로 <흑수선>을 찍고 돌아온 스탭들과 함께 9월 초쯤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연출의 변

“패러디의 쾌감이요? 간단해요. 반골정신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죠. 당연스럽게 느껴지는 거 비트는 재미는 안 해본 사람이면 모르죠.”

이런 영화

남북정상회담으로 해빙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영문모를 살인사건들이 꼬리를 문다. ‘독도지킴이’ 사이트 운영자 김상철과 평소 일본의 우경화를 강경하게 비난해왔던 김중호 의원 등이 연달아 죽음을 당하는 것. KP요원 황보와 갑두는 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자, 자국의 세력 축소를 걱정하는 일본의 극우세력 천군파가 암살요원 하나코를 앞세워 벌인 일임을 눈치채지만, 정작 그녀의 행방은 묘연하다. 한편, 천군파는 남북정상의 서울회담이 열리고 일본 천황이 이 행사에 공식초청됐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무라카미를 한국에 침투시킨다. 국내로 잠입한 무라카미는 PPX라는 액체폭탄을 탈취한 뒤 고궁에 설치하고 KP조직에게 연락해 자신들의 존재와 위험상황을 알리지만, 예기치 못한 일로 엉뚱한 곳에서 대폭발이 일어난다. 폭발현장을 찾은 KP조직은 이미 무라카미 일행이 행사장으로 떠났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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