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론이라는 가설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하나가 아니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사는 또다른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 A라는 세계에서 펀드매니저로 살고 있더라도 B세계에서는 골프선수일 수 있다는. 다소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내막을 알고보면 단순하다. 우연한 사고로 다른 차원의 우주에 떨어진 주인공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만난다. 그러나 자신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이곳의 사랑은 끝나려 한다. 주인공은 이 모든 장벽을 헤치고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뒤바뀐 성 역할에서 안타까운 사랑을 만들어낸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은 뛰어넘을 수 없을 듯한 장애물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표현하려는 영화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그녀와의 사랑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만도 하다.
신생영화사인 에이원시네마에서 준비중인 은 프로듀서 이군선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3년 전 구상해서 여러 차례 시나리오 수정작업을 거친 이 박용운 감독의 손에 들어온 건 지난해 초. 그는 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요소를 발견했다. “재기로, 가벼운 농담으로 풀면 재미있을 거 같았다. 할리우드 스타일로 움직이는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런 요소들도 있고 조연들을 살려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주축이 멜로드라마지만 어떤 남자가 예기치 못한 다른 삶을 통해 자기 인생을 회복하는 이야기라는 점도 강조한다. 주인공은 자기가 경험한 적 없던 시공간에서 지나온 날을 돌아보고 망가진 부분을 회복할 에너지를 얻게 된다. 박용운 감독이 수정한 시나리오가 나온 뒤 작업은 급진전됐고 안재욱이 주인공 승완으로 캐스팅됐다. 펀드매니저와 세계적 골프선수라는 두 얼굴을 가볍고 흥미롭게 표현하기에 적당한 톤을 가진 연기자라는 게 감독의 설명. 본격적인 코미디는 아니지만 에는 상당량의 유머도 들어 있다. 이곳에서 별볼일 없던 사람들이 저곳에서 놀라운 성공과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하며 불가능해보이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감독은 “한순간 선택이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태양은 외로워>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했다는 박용운 감독은 <파이란>의 송해성, <하루>의 한지승 등과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녔다. 졸업한 뒤 5년여간 충무로와 다른 영화를 모색하던 그는 <리허설> 조감독을 거쳐 데뷔 준비에 들어갔다. 안토니오니에게 감화받은 연출자로서 은 좀 의아한 선택이 아닌가라는 의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가벼운 영화, 기획영화를 한다는 건 선도 악도 아니다. 수단과 방법이 왜곡된 게 아닌 수준에서 영화적 완성도에 신경쓰고 싶다.” 안토니오니에 비하면 소박한 목표지만 완성도 있는 기획영화도 쉽지 않다는 걸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연출의 변
“자기 인생을 회복하는 남자의 이야기와 멜로드라마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주인공이 처한 난처한 상황을 가볍지만 재치있게 풀어갈 생각이다.”
이런 영화
펀드매니저 승완은 어느날 세계적인 골프선수로 돌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우연한 차사고를 겪은 뒤 깨어나보니 자기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있는 것이다. 미혼이던 그에게 지영이라는 아내가 있고 죽었던 아버지도 아직 살아계신다. 그가 살고 있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똑같은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것. 펀드매니저 승완은 이곳에 살던 골프선수 승완이 자신과 엇갈렸다는 걸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골프선수 승완의 삶을 대신한다. 세계적인 선수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골프선수 승완은 지금 이곳에서 위기에 놓여 있다. 아내를 버리고 여배우와 시드니로 떠났던 것. 그가 돌아왔다고 오인한 기자들이 몰려들지만 펀드매니저 승완은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어안이 벙벙하다.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던 지영은 달라진 승완의 모습을 좋아하고 펀드매니저 승완 역시 지영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승완이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고 그간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설명할 길도 없다. 과연 차원이 다른 세상에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