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8] - 신승수 감독의 <아프리카>
2001-08-03
글 : 박은영
사진 : 오계옥
총들고, 세상 밖으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현지 로케로 촬영하는 영화가 아니다. 제목 ‘아프리카’도 ‘AFRICA’가 아니라 ‘A.F.R.I.K.A.’다. 이는 ‘Adoring Four Revolutionary Idols with Korean Association: 네명의 혁명적인 우상을 지지하는 모임’의 약자다. 20대 초입의 네 처녀가 있다. 대한민국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님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이들. 여행길에서 우연히 권총 두 자루를 손에 넣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들은 곧 거침없이 일탈한다. ‘AFRIKA’는 그들의 행각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네티즌들이 조직한 팬클럽의 이름이다. 권총 두 자루가 제공한 ‘권력과 자유’를 발판으로 일상에서 꿈꾸지 못했던 ‘신비의 대륙’에 가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승수 감독은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토대로 <아프리카>의 시나리오를 썼다. “여고생 넷이서 한달간 돈도 없이 총만 들고 다니며 여행한 일화가 미국을 발칵 뒤집어놨다. 거침없고 노련한 그들의 범죄행각이 CCTV에 잡혀 보도되기도 했는데, ‘마피아도 경악한 수법’이라고들 했다. 이런 소재를 영화에 도입해보면 어떨까, 구미가 당겼다.“

억눌린 여성들이 길 위에서 해방구를 찾는다는 내용의 로드무비라는 점은 얼핏 <델마와 루이스>나 <밴디드 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신승수 감독은 “총기가 금지된 나라에서 어린 여자들이 총을 갖게 된 상황이 중심”이라며, 인물과 상황 그리고 분위기의 차이를 지적한다. 엑스트라들이 검사와 형사 행세를 하며 이 사회 부정부패를 들췄던 <엑스트라>와 시골에 갓 부임한 경찰이 토착 비리세력과 맞선 <얼굴> 등 전작들에서 유난히 총기를 자주 등장시켰던 신승수 감독은 <아프리카>에서도 총기를 ‘권력’의 상징물로 내세운다. “권력은 총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총은 힘없고 억눌린 여성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이들의 일탈에 점점 가속이 붙기는 하지만, 총기를 휘두르며 벌이는 범죄행각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총기로 힘을 행사하는 여자들의 심리와 감정, 그리고 여자들의 우정과 연대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로드무비의 틀에 액션요소를 가미해 통쾌한 맛을 더하고, 멜로와 코미디를 섞은 ‘퓨전장르’로, 출발점부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이전에는 가벼운 코미디물에도 묵직한 주제를 싣곤 했지만, 이번에는 ‘권력과 지배질서’의 메시지 전달보다는 ‘즐겁고 통쾌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아프리카>에는 생기발랄한 네 배우가 모여 있다. 이요원이 홀어머니의 재혼을 앞두고 세상만사에 화가 나 있는 트러블메이커 요원으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김선민이 스타를 꿈꾸는 배우지망생으로 출연해, 탈 많은 여행을 주도한다. <눈물>의 조은지가 성형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영미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이영진이 자신의 인생을 흠집낸 남자에게 복수하려는 양품점 주인 진아로 합류한다. 나름대로 진지하고 냉철하지만, 네 여자에게 늘 한방 먹는 권총 주인(성지루, 이재락)이 빚는 코믹한 상황들이 극에 윤기를 보탠다. 8월 초 크랭크인 준비에 여념이 없는 신승수 감독은 젊고 감각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대한 부담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도 한때 20대였고 신세대였다. 그때 그 심정을 왜 모르겠나. 그들의 심리와 감정, 이데아를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애쓸 것이다.” 야심찬 중견감독이 건져올릴 싱싱한 청춘보고서는 오는 10월 공개된다.

연출의 변

“여성관객에게 대리만족의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남성v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느껴온 불만과 억눌린 감정들이 터지길 바란다.”

이런 영화

권투가 취미일 정도로 터프한데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쫓겨난 요원(이요원), 스타를 꿈꾸지만 재능과 조건 미달인 현실을 깨달은 배우지망생 민선(김민선)은 기분 전환차 함께 바다 여행을 계획한다. 이들은 빌린 차 안에서 우연히 권총 두 자루를 발견한다. 양아치 영배가 민선의 환심을 사기 위해 훔쳐다준 차 속에 강력계 형사(성지루)와 조직 중간보스(이재락)가 도박판에서 판돈 대신 맡긴 권총이 보관돼 있었던 것. 요원과 민선은 두 자루의 권총에 불안해하면서도 매혹을 느끼고, 손에 쥐고 휘두를 용기를 얻는다. 외모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다방 아가씨 영미(조은지),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옛 남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가는 양품점 아가씨 진아(이영진)가 동행하게 되고, 권총의 힘을 한껏 누리며 좌충우돌 모험을 벌여나간다. 사사건건 부딪히던 이들은 몇번의 위기상황을 거치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우정을 다진다. 이들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전국에 모방범죄가 성행하고, 인터넷에는 ‘아프리카’라는 팬클럽까지 생겨난다. 이들을 4인조 여갱단으로 오해한 군경, 그리고 권총을 잃어버린 강력계 형사의 집요한 추적은 계속되고 포위망은 점차 좁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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