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4] -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2001-08-03
글 : 문석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웨딩마치에 발걸기

싸이더스가 제작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마누라 죽이기>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오는 엄정화도, 영화 데뷔를 하는 감우성도, 지난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만교의 원작소설도 아닌 감독 유하다. 1993년 초 개봉한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이후 10년에 가까이 절치부심해온 감독이 만들 신작의 모양새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 궁금증은 당시에 비해 급격히 나아진 제작환경 속에서 비로소 드러날 감독의 영화적 역량에 머물지 않고 <무림일기> 등의 시작(詩作)에서 보여줬던 날카롭게 후려치는 검객의 풍모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발표한 <천일馬화>라는 시집 제목처럼 “그동안 경마장이나 다니며 살았다”는 그는 한동안 영화에 대한 생각을 버린 채 지냈지만, “첫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한편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음도 숨기지 않는다. 지난해 8월쯤 시나리오를 마무리지었으나 여자주연 캐스팅문제로 제작이 1년 가까이 연기되다보니, 오히려 차분하고 꼼꼼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며 자신감도 슬쩍 내비친다.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이 영화는 결혼이라는 것이 담고 있는 관습, 제도, 규범에 시비를 걸기 위한 것이다. 유하 감독은 “일부일처제가 지배한다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성은 외도라든가 별 짓을 다 하는데 여성은 ‘일부종사’라는 이데올로기에 묶여 있다. 그런데 원작소설은 여자가 ‘두집 살림’을 하는 등 내용에서 ‘불온함’이 느껴져 마음에 들었다. 즉 현실의 결혼이라는 시스템이 갖고 있는 허위의식을 폭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 작품을 맡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그래서, 장르적으로 분류하자면 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일반 멜로드라마의 반대편에 놓이게 될 거라고 얘기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 영화는 “사실주의적 초상화를 지향하는”, “홍상수 영화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중간쯤에 자리하는 작품”이다. 영화에 섹스신이 등장하긴 하지만, 두 남녀의 교감이라는 측면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섹스장면 자체보다는 “섹스가 끝난 직후의 스산하고 허탈한 느낌”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남녀주인공은 섹스가 끝난 뒤 진담은 거의 하지 않고 끝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데, 그 농담도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냉소적인 블랙 유머에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눈물을 유도하기보다는 쓸쓸한 느낌을 전달하는 데 힘을 기울일 생각. 또 “일반인의 통념인 ‘애정 먼저, 육체적 관계 나중’이 아니라 <포르노그래픽 어페어>에서처럼 그 반대의 이야기가 담겨질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 작품을 통해 7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 엄정화는 <바람부는 날이면…>을 통해 충무로 데뷔한 탓에 유하 감독과는 각별한 사이. 그녀가 맡을 연희라는 캐릭터는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면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순응하고, 이를 이용할 줄 아는 현실적인 여성. 사실 엄정화는 가수, 섹시스타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캐스팅하는 데 부담은 있었지만, 웬만한 배우들보다 연기를 잘한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전격 기용했다. 준영역의 감우성 역시 유하 감독이 처음 원작을 시나리오로 옮길 때부터 염두에 뒀던 인물이라서 제작진은 만족스러운 상태다. 이 영화의 화자이기도 한 준영은 ‘먹물근성’이 강한, 다소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 회색지대에서 부유하는 남성의 이미지가 그에게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 스타일을 강하게 가져가기보다는 배우들의 다큐멘터리적인 연기를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담는 것이 관건”이라는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9월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연출의 변

거의 10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만큼 부담은 간다. 그동안 충무로의 환경도 많이 바뀌어 왜 진작 영화를 안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 ‘입봉’한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결혼이라는 획일적인 제도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필요한 만큼, 결혼을 고민하는 20대 미혼남녀도 많이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

이런 영화

집안에서 결혼을 재촉하는 30대 초반의 준영은 친구 규진의 소개로 연희를 만난다. 어두운 거리를 헤매던 둘은 결혼제도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 밤을 격렬한 섹스로 마무리짓는다. 준영과 연희는 만남은 계속하지만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는 동안 준영은 제자인 세은과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규진이 신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유부녀 지영과 바람을 피운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생각하는 연희를 바라보게 된다. 결혼 생각을 굳히고 나서도 연희는 준영과 백화점을 돌며 쇼핑도 하고 ‘신혼여행’도 함께 떠난다. 결혼한 뒤에는 준영의 집을 들락거리며 준영과 ‘주말부부’로 지낸다. 이들의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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